[김길웅의 借古述今] 174. 갑인년에 콩 볶아 먹었던 소리한다

 * 갭인년 : 갑인년(甲寅年), 십갑자의 하나, 여기서는 옛날의 어느 시기를 뜻함
 * 보까 : 볶아

말이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의사소통을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극한적인 상황에서는 눈짓, 손짓, 발짓 같은 ‘몸의 언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보디 랭규지(body language)로 신체언어란 뜻이다. 오죽 절실했으면 이런 표현 방법을 사용했을지 실감하고도 남는 일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인들도 말의 중요성과 그 소중함 그리고 말을 하는 태도나 자세, 금도(禁盜)에 대해 늘 강조해 왔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은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작자 미상)

말을 소재로 설득력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한자어 하나 섞이지 않고 순우리말로 물 흐르듯이 풀어 낸 시조다. 이렇게 노래 형식을 빌려가면서 넌지시 경계했다. 실로 생활 속의 값진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말을 나불나불 내뱉기는 쉽다. 그 말을 해서 좋은 것인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따져 보지도 않고 분별없이 쏟아내기 일쑤다. 무의식중에 한 말이 화근이 돼 돌아오지 말란 법이 왜 없겠는가. 말에 따라서는 가슴 칠 일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절대 주워 담지 못한다.

우리 제주 선인들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사시장철 밭일에 매어 살면서도, 삶의 이치며 사람으로 바르게 살아가야 할 정도(正道)를 내놓아 아랫사람의 살 도리를 일깨웠음을 익히 알고 있다. 이야말로 몸소 겪은 바를 통해 체득한 경험칙이라 어느 하나 소홀해선 안된다.

‘갑인년에 콩 보까 먹은 소리 ᄒᆞᆫ다’ 또한 이와 궤(軌)를 같이 하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볼 일이다. 여기서 ‘갑인년’이라 함은 특정의 어느 시기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냥 막연히 어느 해란 뜻으로 ‘언제 볶아 먹은 콩 얘기를 하고 앉았느냐’ 함이다. 부질없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말하려 한 것이다. 그러니까 막연하게 떠올리는 과거다. 무슨 할 말이 없기에 가당치 않은 얘기를 하고 있느냐고 채근한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지사를 끄집어 내 공팔 칠하고 하고 있으니, 제발 주제파악 좀 하라는 캎같이 따끔한 지적이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깨놓고 들이대어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어떤 일을 논의할 때, 지난날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아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니 자리를 같이 한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왜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아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니, ‘갭인년에 콩 보까 먹은 소리’는 한마디로 득 될 것이 없는 허황하기 짝이 없는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 나무람을 당할 만도하다.
  
할 말, 해야 할 말도 다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인가. 상대에게 미칠 영향은 어떤 것인지를 숙고한 뒤에 사리판단에 따라서 해야 하는 것이 말임을 곱씹어 보게 하지 않는가.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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