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법정의기록] (1)피고인 349명 중 14명 72년만에 첫 심문...피고인 사망 입증-제3자 구술 증명력 쟁점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8일 오전 10시30분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을 상대로 재심 청구에 따른 첫 심문 기일이 열리자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8일 오전 10시30분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을 상대로 재심 청구에 따른 첫 심문 기일이 열리자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4.3의 소용돌이 속에서 행방도 모른 채 사라져간 희생자들의 재심을 위한 역사적인 첫 법원 심문 절차가 열렸다. 1948년 불법적 군법회의 이후 72년 만의 일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8일 오전 11시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한 故 김병천씨 등 행불인 수형자 14명에 대한 첫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현장에는 故 김병천씨의 아들인 김광우 제주4.3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 등 피고인을 대신해 재심청구인 13명이 참석했다. 故 임동야씨의 아들 임신길씨는 건강 문제로 불참했다.

심문기일이 정해지지 않은 재심청구인 등 행불인 유족 약 100여명도 역사적 현장을 보기 위해 직접 법원을 찾으면서 법정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방청객으로 가득 찼다.

법정 앞에서 만난 임춘화(75.여) 할머니는 1948년 4.3사건으로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가 1955년까지 수형인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재심을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임 할머니는 “내가 구덕(바구니)에 있을 때 아버지가 군경에 잡혀갔다. 죽은 줄 알고 살아왔다”며 “나는 겨우 살아남았지만 아버지가 빨갱이로 내몰려 관덕정 보안대에서 조사까지 받았다”고 털어놨다.  

심문 절차가 시작되자 피고인들의 생존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생존수형인과 달리 행불인수형자는 피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재심청구자가 유족인 것도 이 때문이다.

행불인수형자 故임청야씨의 딸인 임춘자 할머니가 8일 오전 10시30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행불인수형자 첫 심문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조속한 재판 진행을 법원에 촉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행불인수형자 故임청야씨의 딸인 임춘자 할머니가 8일 오전 10시30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행불인수형자 첫 심문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조속한 재판 진행을 법원에 촉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행불인수형자는 4.3사건이 불거진 이후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끌려간 후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이다. 대부분 제주로 돌아오지 못하고 연락이 끊겼다.

유족들은 이들이 모두 숨진 것으로 보고 1970년를 전후해 사망신고를 하고 제사까지 치르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사망했는지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다. 재판부도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생존하더라도 대부분 나이가 100세 내외여서 생존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절차상 생존여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이를 입증할 의견서를 변호인측에 주문했다.

수형인명부와 호적상 이름이 불일치하는 경우와 70여년 전 명확하지도 않은 공소사실을 반박할 당시 구술증거에 대한 증명력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과거에는 실제 이름과 호적상 성명이 다르거나 형식적 군법회의 과정에서 오기로 인해 피고인들이 이름 또는 한자 표기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변호인은 피고인들이 동일임을 입증할 수 있는 과거 호적상 주소와 수형인명부상 주소지를 비교하는 등 관련 문서를 재판부에 별도 제출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증거조사에 대해서는 당시 나이가 어렸던 자손들의 진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4.3진상조사보고서와 다른 생존자들의 진술을 통해 당시 불법체포와 구금활동을 입증하기로 했다.

재판부와 변호인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300여명에 이르는 재심청구인 진술 중 직접적 경험과 사실관계가 비교적 명확한 피고인 사건에 대해 심문을 선별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8일 오전 10시30분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을 상대로 재심 청구에 따른 첫 심문 기일이 열리자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8일 오전 10시30분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을 상대로 재심 청구에 따른 첫 심문 기일이 열리자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이 경우 특정 재심청구인에 대한 심문 절차가 우선적으로 진행되고 나머지는 서류를 통해 재판부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심문 일정도 크게 단축될 전망이다.

재판부는 “4.3은 워낙 불행한 사건이다. 재판부도 많이 고민할 것이다. (검찰과 변호인도)도움을 달라”며 “추후 심문 기일을 정하지 않고 추후 의견서를 토대로 날을 잡겠다”고 말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는 앞선 2019년 6월3일 법원에 행불인수형자 10명에 대한 첫 재심을 청구했다. 올해 2월18일에는 행불인수형자 393명이 추가로 재심을 청구했다.

서류미비 등을 이유로 제외된 인원을 적용하면 실제 재심 대상자는 349명이다. 재심청구인은 342명이다. 이중 14명에 대한 재심 심문 절차가 우선 진행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재심이유) 제7호에는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된 때’를 재심 사유로 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수형인명부와 재심청구인의 구술을 토대로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여야 70년 전 불법적 재판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정식재판이 비로소 열린다.

김광우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지난 세월 많은 유족들이 원통함을 가슴에 안고 살아 왔다. 이미 나이가 들어 병들고 쇠약해졌다”며 “이제 시간이 얼마 만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재심청구인들이 살아 있을 때 결론이 날 수 있도록 재심 절차를 서둘러 달라”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 사법부의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김광우 제주4.3희생자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이 8일 오전 10시30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행불인수형자 첫 심문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조속한 재판 진행을 법원에 촉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김광우 제주4.3희생자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이 8일 오전 10시30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행불인수형자 첫 심문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조속한 재판 진행을 법원에 촉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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