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댁, 정지에書] (2) 옥돔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 총괄디렉터 제주음식연구가

밥이 보약이라 했습니다. 바람이 빚어낸 양식들로 일상의 밥상을 채워온 제주의 음식은 그야말로 보약들입니다. 제주 선인들은 화산섬 뜬 땅에서, 거친 바당에서 자연이 키워 낸 곡물과 해산물을 백록이 놀던 한라산과 설문대할망이 내린 선물로 여겼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진경 님은 제주 향토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입니다. 격주로 '제주댁, 정지에書'를 통해 제주음식에 깃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글]

얼마 전, 홈쇼핑에 송출할 갈치와 옥돔요리를 작업했었다. 갓 잡아 올려 막 도착한 싱싱한 옥돔과 요즘 귀해서 그 이름도 금갈치라 불린다는 갈치를 스타일링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서울에서 온 홈쇼핑 담당자분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옥돔은 어떻게 해서 먹어야 맛있나요?”

순간, ‘옥돔은 그냥 옥돔이니까 맛있는 거지 어떻게 해서 먹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제주 사람이 아닌 그분이 공감할만한 판타스틱 한 맛의 옥돔요리도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제주 전통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옥돔요리 한 두 개쯤은 들어 본 적 있겠지만, 제주 토박이들만 아는 옥돔의 맛, 그러니까 옥돔죽에 꿩마농을 쫑쫑 썰어 넣어 먹는 ‘코승함’과, 빙떡에 구운 옥돔 한 점 올려 먹는 그 ‘기맥힌’ 맛과, 싱싱한 당일바리 옥돔에 무만 넣어 끓인 그 뽀얀 국물 한 수저에서 오는 ‘배지근’함을 제주 토박이가 아닌 그분이 공감할 수 있을까?

“난 옥돔 그렇게 맛있는 줄 모르겠던데” 혼자 중얼거린 그분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마치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실연의 한마디를 통보받은 것처럼 가슴이 철렁 무너졌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사실 외지인에게 특별히 맛있는 옥돔요리를 소개해 주는 것이 늘 고민이긴 했다. 현재 제주 옥돔은 옥돔구이 말고는 특별히 맛있게 조리해서 먹는 밥반찬으로 딱히 알려진 것도 없고, 어르신들에게 여쭤봐도 죽이나 국, 회 말고는 특별한 요리법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하디 단순한 조리법을 가진 옥돔이 왜 제주에서 귀한 생선으로 대접을 받았던 걸까? 나는 여기에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기로 한다.

제주 동문시장 어물전에서 판매되는 옥돔. ⓒ제주의소리
제주 동문시장 어물전에서 이름 없이 판매되고 있는 옥돔. ⓒ제주의소리

왜 제주에선 옥돔을 옥돔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제주 동문재래시장에 가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시장 안 농협 맞은편 7번 문을 시작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어물전을 꽤 많이 만날 수 있는데 대부분 우리가 생각하는 그 생선, 그러니까 말린 옥돔을 거의 모든 어물전에서 판매한다. 하지만 소쿠리의 그것이 제주 사람들이 사랑하는 옥돔인지 아닌지는 소쿠리에서는 드러나 있지 않다. 물론 황돔, 벵에돔, 가자미, 조기, 벵꼬돔 등도 말려 소쿠리에 담아 판매하고 있지만 재미있는 점은 옥돔 외에 생선들은 소쿠리에 생선 이름을 적어 붙여 놓는데 유독 옥돔만큼은 이름을 따로 적어 두지 않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제주 동문재래시장 7번 문에서 1번 문까지, 즉 농협 맞은편 골목부터 동문로터리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그 긴 골목 시장의 어물전에 말린 옥돔 소쿠리에 ‘옥돔’이라는 명찰을 써 붙인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제주의 생선, 즉 옥돔이라고 생각했던 그 생선 소쿠리가 정말 옥돔인지는 한번 즈음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할망들이 어물전 상인에게 “생선 줍써”라고 하면 상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옥돔을 내어드린다(그게 소쿠리든 냉동실이든). 제주 사람들에게 생선이라고 할 만한 어종은 왜 옥돔뿐이었을까? 제주따이(제주아이)라면 할머니의 “생선 가졍오라”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생선 가져오라 했는데 고등어나 갈치를 가져간다면 당신은 제주따이가 아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에는 '옥두어(玉頭魚)'라는 이름으로 진상된 기록이 남아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에는 제주의 옥돔이 ‘옥두어’라는 이름으로 진상된 기록이 남아 있다. 제주 근해에서만 잡혔던 생선이고, 옥자가 붙었던 것을 보니 귀하게 여겼던 생선임은 분명하다. 제주에서는 옥돔을 보통 ‘생선’이라고 하는데 간혹 서귀포 지역에서는 ‘솔라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귀포에서는 ‘빙떡에 솔라니’라는 말이 있는데 구운 옥돔을 빙떡에 올려 먹으면 맛이 좋다는 뜻이다. 그러나 솔라니가 제주 전역에서 통용되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의외로 제주시 사람들은 솔라니라는 단어를 잘 모른다. 혹시, 제주시에서 좀 아는 체 하려고 “솔라니 줍써”라고 말하면 못 알아듣는 분들도 많으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귀해서 진상품으로 올려보냈던, 지위가 높은 생선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주에서 다른 생선들은 잡어로 취급당했던 것 같다. 임금만 먹어볼 수 있었던 귀한 생선이었던 옥돔을 할당량만큼 진상해야 했기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모든 신경을 옥돔으로 집중해야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생선은 잡어 정도로만 여겼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제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옥돔만을 생선이라고 불렀던 것은 아닐까?

옥돔은 어떤 것을 사고,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맛있을까?
이번에는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으로 가볼까 한다. 35여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켰다는 함평수산에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낮 12시부터 마을 할망들이 삼삼오오 몰려든다. 그리고 한켠에 마련된 의자를 하나씩 들고 주인도 없는 어물전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1시가 되니 어르신들 몇 분이 더 왔다. 그리곤 늘 하던 것처럼 의자를 하나씩 빼들고 와서 착석한다. 30분 정도가 지나니 주인도 없는 어물전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가 각자의 소쿠리를 하나씩 챙기고 비닐장갑도 손에 끼는 걸 보니 이제 곧 이벤트가 시작될 성 싶다.

함평수산으로 들어오는 골목길로 탑차가 하나씩 들어오면 갑자기 다들 미어캣처럼 벌떡 일어나 탑차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기다리고 있는 탑차가 아님이 확인되면 다시 자리에 앉는다. 꽤 여러 대의 탑차가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할머니들은 벌떡 일어나 그 탑차가 내가 기다리는 탑차인지 아닌지 확인하는데 이 모습은 흡사 마치 내 아이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팬클럽 소녀들 같다. 

ⓒ제주의소리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안 함평수산 전경. 마을 어른들이 원하는 옥돔을 가져가기 위해 소쿠리를 들고 장갑을 낀 채 삼삼오오 모여 기다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그래 맞다. BTS를 기다리는 소녀팬들과 다를 게 없다. 그렇게 3시가 좀 지나고 하얀색 탑차가 들어왔다. 벌떡 일어난 할망들은 갑자기 본인의 소쿠리를 들고 어물전 앞으로 다들 분주하게 달려든다. 나는 직감했다. “아 드디어 할망들의 BTS가 왔구나!” 

탑차에서 주인아줌마가 먼저 내리고 이어 내린 아들이 탑차 안으로 들어가 드디어 그것들을 가지고 내린다. 정말 내 팔뚝만 한 반짝이는 선홍빛 옥돔이 어물전 앞의 하얀 얼음 위로 촤르르 쏟아졌다. 그러자마자 할머니들의 난투극(?)이 시작된다. 옥돔을 한 마디라도 더 쟁취하려고 한바탕 소란이 난다. 그런데 어라? 몇몇 할머니는 뒤에서 바라보고만 있다. 

왜지? 이렇게 크고 좋은 옥돔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아들이 쏟아낸 첫 번째 옥돔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의아한 생각이 든 순간은 잠시, 아들이 다시 탑차로 들어가 두 번째 콘테나(컨테이너)를 쏟아냈다. 처음처럼 팔뚝만 한 크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싱싱하고 반짝이는 두 번째 크기의 옥돔, 다시 할머니들의 쟁탈전이 시작된다. 뒤에 보고 있던 몇몇 할머니 중 한 분의 할머니가 함께 그 쟁탈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역시나 몇 초도 되지 않아 이 쟁탈전은 끝이 난다. 

아들이 다시 탑차로 들어갔다. 오호라,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이 아닌 다섯 부류 정도로 크기를 나눠 순서대로 옥돔을 꺼내고 있고 할망들은 본인이 필요한 크기의 옥돔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BTS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이 옥돔의 세계에도 할망들이 좋아하는 내 픽이 있는 거였구나!

이 모습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며칠 후 나도 이 이벤트에 직접 참여해 보려고 서귀포로 넘어갔다. 어르신들에게 왜 다른 어물전에도 옥돔이 있는데 왜 하필 이 곳이냐고, 3시간 넘게 함께 기다리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왜 여기가 이렇게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냐고 여쭤봤다. 그렇더니 할망의 기가 막힌 대답이 이어졌다. “여기가 지대로 당일바리여서 그래”. 당일바리? 가장 신선한 옥돔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 사람들은 당일바리 생선에 꿈뻑 죽다시피 하는데, 혹시 당일바리와 하루바리의 차이를 안다면 당신은 이쪽 분야에서 고수라(?) 할 수 있다.

'당일바리' 옥돔을 가져가기 위해 3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리는 할망들. 신선한 옥돔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단다.  ⓒ이로이로

당일바리는 그날 아침에 조업해서 낮에 받을 수 있는, 즉 당일 받을 수 있는 생선을 이야기하고 하루바리는 전날 오후에 조업해서 다음날 아침에 받을 수 있는 물건을 뜻한다. 즉 경매장을 거쳐서 온 옥돔은 하루바리이고 배에서 경매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할망들의 손에 들어오는 생선을 당일바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경매를 통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상인들이 파는 값보다 kg당 오천원 정도나 저렴하고, 일단 내 눈으로 직접 갓 잡은 신선한 당일바리가 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반나절을 꼬박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본인이 원하는 크기의 옥돔을 기다리는 이유도 알려 주셨는데 제수용, 죽이나 탕용, 구이용 등 집집마다 그 쓰임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집 쓰임에 맞는 크기의 생선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란다. 크기가 크고 신선한 생선은 주로 조상제사나 신께 바치기 위한 용도로, 군내가 나기 전에 바로 내장을 제거하고 손질해서 반으로 갈라 말려 장만해둔다. 그리고 크기가 좀 작더라도 신선한 옥돔은 국이나 죽으로 끓여 보양식으로 먹는다. 손질한 옥돔을 두고두고 뒀다가 중요한 날에 구이, 죽, 탕으로 끓여 먹는데 누군가 아팠을 때, 출산했을 때, 귀한 의미가 있는 날 옥돔을 올렸다 한다. 이런 어르신들의 말씀이 아직 초보인 제주 새댁의 귀에 쏙쏙 박힌다. 옥돔은 육지의 잔칫상이나 생일상에 올리는 잡채나 갈비찜 같은 역할을 하는 음식이랄까? 여기에 할머니들의 맛있는 옥돔요리 팁까지. 지루할 틈이 없이 세 시간이 지나갈 만큼 할머니들과 함께 그녀들의 아이돌을 기다리는 재미는 쏠쏠했다.

특히 옥돔은 12월부터 3월에 제철이고 날이 더워지면 맛이 떨어지고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는 어른들이 오랜 세월을 통해 터득한 지혜이다. 또, 옥돔은 아픈 사람, 산모를 위한 보양식, 조상이나 신에게 제물로 올리는 귀한 음식임은 제주 할망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세상에, 할망들의 이야기를 듣고 옥돔을 바라보니, 이 선분홍 옥돔에 샛노란 줄무늬가 반짝이는데 너무 아름다워 황홀할 정도이다. 내가 늘 봤었던 옥돔이 이렇게 예뻤었나? 제주 할망들이 가히 예뻐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돌의 자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 할망들에게 옥돔은, 당일바리 생선이 가장 최고인, 할망들의 만의 아이돌, 몇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려도 그 기다림이 즐거운, 그녀들의 DTS(day time 생선-당일바리생선)이다. 

* 당일바리에 가장 가까운 표현은 ‘distribute today 생선’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day time 생선’으로 표시하였습니다.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 총괄디렉터, 제주음식연구가

김진경은?

20대에 찾아온 성인아토피 때문에 밀가루와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떡과 한과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결국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일도 그만두고 전통 병과점을 창업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제주전통음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현재 베지근연구소에서 제주음식 연구와 아카이빙, 제주로컬푸드 컨설팅, 레시피 개발과 쿠킹랩 등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현재 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밟으며 제주음식 공부에 열중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어멍의 마음으로 제주음식을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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