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서귀포시장 내정, 시대흐름 역행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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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비위가 발생할 때 마다 제주도는 엄단 방침을 밝히다가도 나중에는 솜방망이 징계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간 숱하게 쏟아진 대책이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처럼 더이상 신뢰를 못받는 이유다. ⓒ제주의소리

내성 탓일 수 있다. 아니면 촉이 무뎌졌거나. 언제부턴가 공무원 비위를 접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습성이 생겼다. 언론인으로서 쓰임새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고백한다.  

습성과 별개로, 공무원 비위 하면 일벌백계, 무관용 원칙, 제식구 감싸기, 솜방망이 처벌과 같은 낱말이 줄줄이 떠오른다. 마치 연관검색어처럼. 서슬이 퍼렇다가도 결국 썩은 호박도 못베는 칼날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리라. 

민선6기 제주도정 첫 해인 2014년 10월29일. 원희룡 지사가 각 부서에 특별 지시를 내렸다.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주문이었다. 도청 관계자의 전언이어서 그의 표정은 알 길이 없으나, 내용은 결연해 보였다. 강력한 복무 관리, 징계양정 강화, 엄중 처벌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그럴만 했다. 당시 제주도는 국정감사에서 호되게 당한 후였다. 음주운전·성매매·금품수수 등과 관련한 공무원 징계 자료가 공개돼 ‘공무원 범죄 삼다도’라는 말까지 들은 터였다. 개중에는 음주운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체 징계 공무원 중 60%를 차지했다.

이 때만 해도, 원 지사로서는 해묵은 적폐를 청산하는 단죄자의 심정이었을지 모르겠다. 징계가 내려진 대부분의 사안이 취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음주운전을 비롯한 공무원 비위는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두고두고 제주도의 청렴도, 대외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2017년 2월15일, 제주도가 고강도 감찰 계획을 발표한 것은 비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때도 제주도는 공직비위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다. 6대 비위로 공금횡령·유용, 음주운전 등을 적시했다. 특히 직무태만, 소극행정 공무원은 파면도 불사하겠다고 밝혀 공직사회를 바짝 긴장시켰다. 

박근혜 탄핵 직후인 2017년 3월10일, 원 지사가 공직기강을 잡는다며 ‘특별요청 사항’을 발령한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음주운전 등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13일 뒤, 이번에는 제주도 감사위원회가 나섰다. 비위, 품위 손상 공무원에 대한 패널티를 강화하는 내용의 평정규칙 개정 방침을 밝혀 제주도와 손발을 맞췄다. 공금횡령·유용, 음주운전, 도박, 성범죄, 금품향응 수수, 예산의 목적 외 사용 등 6대 비위가 또 거론됐다. 이 쯤되면 6대 비위는 공직사회에서 용서받기 힘든 죄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비위가 계속되는 건 솜털처럼 가벼운 방망이, 온정주의와 무관치 않다. 5년여 전 국감 당시 제주도를 당혹스럽게 했던 공무원 징계 자료를 보면 방망이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음주운전으로 2차례 이상 적발된 26명 전원이 정직 이하 징계를 받았다. 경징계 중에서도 수위가 가장 낮은 견책 처분을 받은 공무원도 2명이었다. 쏟아진 대책 이후엔 제식구 감싸기가 덜했을까. 

2017년 8월 음주운전 사실이 드러난 원 지사 측근 정무직 공무원에 대한 처리 과정은 일련의 공직기강 확립 대책을 무색케했다. 사표는 반려됐고, 원 지사는 그를 다른 부서로 전보 조치했다. 나중에 당사자는 혈중알코올농도가 기준치를 밑돈 것으로 나타나 가까스로 처벌은 면했지만, 숱하게 천명한 비위 엄단 방침은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이르렀고, 내로남불식 이중잣대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모든 게 그렇듯이, 공무원 비위에 대한 처분 기준도 시대 상황과 국민의 눈높이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비위 유형도 유형이지만, ‘언제였냐’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4.15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이 마련한 음주운전 관련 기준은 달라진 세태를 반영한다. 민주당은 ‘선거일 전 15년 이내 3회 이상, 최근 10년 이내 2회 이상 적발시’ 공천 부적격자로 분류하기로 했다. 또한 윤창호법(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된 2018년 12월18일 이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경우는 공천에서 원천 배제하기로 했다.

미래통합당은 ‘2003년 이후 총 3회 이상 위반하거나 뺑소니·무면허 운전 전력이 있는 경우’ 공천에서 원천 배제하기로 했다. 특히 윤창호법 시행 이후 음주운전 1회 이상 적발 시에도 공천을 하지 않기로 했다. 과도한(?) 소급을 경계하면서도 앞으로 음주운전자는 설 자리가 없음을 예고했다. 

가장 변화가 더디다는 정치권까지….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있다. 

원 지사가 불과 두 달 여 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전직 공무원을 차기 서귀포시장으로 내정해 시끄럽다. 민주당은 물론 시민단체, 공직 사회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에선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음주운전 자체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가 발군의 실력자라고 두둔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 공직을 통틀어 개인적으로 억울해 할 사람은 한 둘이 아니다. 시대 흐름을 제주도만 못 읽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가 노리는 자리가 도내 공직 중 거의 최고봉이라는데 있다. 만약 시장에 임명된다 한들 공직기강과 관련해 영(令)이 설지 의문이다.

훗날 누군가가 ‘잘못된 전례’를 방패삼아 대놓고 따라할까 무섭기도 하다. 아직 공소장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다. 제주도정이 점점 양치기 소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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