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49) 수성못 / 이정환

구름이 내려앉은 연못. ⓒ김연미
구름이 내려앉은 연못. ⓒ김연미

잠들기 전 생각한다, 그가 잠들었을까
일어나며 생각한다, 그도 일어났을까

물든 잎 바라보다가
물들고 싶은 아침

모든 것의 모든 것인 눈물의 항아리
은빛 물결에 닿는 바람의 푸른 입술

어디쯤 멈춰 섰을까
먼 산머리 해거름 녘

때 없이 생각한다, 눈 시리게 치는 물결
오색 분수 속으로 함께 솟구쳐 오르는 꿈

구름이 내려앉을 때
훨훨 날아오르는 못물

-이정환 <수성못> 전문-

사랑한다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의 시작이라던 누군가의 말을 인정한다. 우주의 모든 주파수가 한 곳으로 모이고, 아주 작은 파장에도 일희일비하며 세상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드는 감정. 눈 뜰 때, 눈 감을 때, 내 정신을 온통 갉아먹고 들어와 이제는 본래의 나를 찾을 수 없고, ‘모든 것의 모든 것인 눈물의 항아리’가 되어 흘러넘치게 만드는 것. 

그러나 그 눈물은 얼마나 상쾌한 것이었던가. 한 항아리 흘러넘치고 나면 다시 차오르는 빈 공간. 우렁우렁 울리는 그 공명 안에서 나를 붕괴시키고 다시 태어난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대구 수성못의 어느 둘레를 돌다 누군가를 생각했을 시인,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밀려오는 생각. 이성과 감성의 경계선을 없애고 멈추어 버린 발걸음. 뇌전증 폭발하는 시인의 머릿속과는 아랑곳없이 오색으로 물든 분수는 솟구쳐 오르고, 시인은 거기에 또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를 실어 하늘로 올려 보내고 싶어지는 것이다. 따뜻하게 차오르는 가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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