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정책協 무산-‘교육의원 공론화’ 실패를 보며

제주도와 의회가 거의 2년만에 열기로 했던 정책협의회가 결국 무산됐다. '교육의원 존폐 공론화'도 물건너 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의회 내 소통부족과 의장의 리더십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책협의회가 무산된 것에 대해 그 원인과 이유를 떠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원희룡 제주도정을 향해 따끔한 경고와 훈수를 즐겨하던 김태석 도의회 의장이 이번에는 자신이 고개를 숙였다. 15일 정례회 개회사에서였다. 제주도의 제안을 덜컥(?) 수용했다가 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된데 따른 뉘우침의 표시였다. 말이 무산이지, 사실상 일방의 보이콧이었다. 

보기드문 광경이었다. 언제부턴가 개·폐회사는 의장이 집행부를 준엄하게 꾸짖는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집행부에겐 응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팩트나 맥락이 틀렸어도, 상황이 종료되고 만다. 집행부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어도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비단 이번 11대 의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때론 사이다 발언으로 청량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도정에 대고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도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경구(警句)를 동원한 의장의 한마디는 곧 촌철살인이었다.

그래서 김 의장의 사과를 나름 의미있게 평가한다. 다만 한가지, 담백한 사과로 끝났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다음의 말은 사족 같기도 하고, 유체이탈 같기도 하고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대화와 소통이 우선돼야 하지만, 도민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공유되지 못한 채 특정 결론에 합의하는 것은 항상 경계돼야 한다” 

해석은 놔두더라도, 정책협의회 무산이 누구 탓인지 헷갈린다. 그렇다고 ‘원인과 이유’를 떠날 수는 없다. 잘잘못을 정확히 가려야 반성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거의 2년만에 열기로 했던 이번 정책협의회는 제주도가 내민 손을 김 의장이 화끈하게 잡아 성사됐다. 운영위원장과 행정자치위원장도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다수 의원은 합의 사실을 몰랐었다는 후문이다. 이게 화근이었다. 의원들의 반발은 어쩌면 당연했다. 밖에서 볼 때 자중지란이 빚어졌다. 결국 문제는 소통부재였던 셈이다. 공교롭게도, 소통부재는 김 의장이 도정을 몰아세울 때 쓰는 단골메뉴였다. 의장의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정책협의회 의제는 ‘코로나19 대응 추경 편성 방향’. 도의회 일부에서는 ‘실질적 합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들러리를 설 수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속담이 있다.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다. 한번에 안되면 여러번 만나면 된다. 만남 자체를 마다할 이유까지는 없었다. 얼마나 고대했던 자리였나. 얼굴을 마주한 다음에 집행부의 속셈이 따로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판을 깨도 늦지 않을 일이었다.

도의회의 문제의식처럼 지금 도민은 코로나19로 전례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명분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의장이 동료 의원들을 설득해 테이블로 이끌었어야 했다. 의원들도 코로나19로 인한 예산 삭감 기조로 지역챙기기 예산이 불투명해진데 따른 반작용이 아니었길 바란다.

정책협의회는 다름아닌 김 의장이 2018년 7월 ‘협치의 제도화’를 제안하고, 원 지사가 응해 첫발을 뗐다. 협의회 설치·운영 조례는 이듬해 한국지방자치학회 우수 조례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이후 한번도 열리지 않아 ‘상설’이란 말이 무색해졌다. 

정책협의회 무산이 의회 내 소통부재, 의장 리더십의 문제였다면, ‘교육의원 존폐 공론화’ 실패(?)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교육의원 출마 자격 제한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접수한 헌법재판소가 관계기관의 의견을 듣는다며 제주도의회의 의견을 구했으나, 사실상 단일 의견 제시가 물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의회 내 절대 다수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총회를 거쳐 같은 당 김 의장에게 안건으로 다뤄줄 것을 요청했으나, 끝내 상임위 상정이 불발됐다. 그 이유가 회의 시작 전까지 의장 결재가 나지 않아서라니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김 의장은 당시 의원총회에도 불참했다. 

헌재가 말미를 한 달 더 주면서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기한은 이달말. 하지만 해당 상임위는 의사일정을 조정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공론화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설사 장차 각 교섭단체별로 의견을 제출한다 하더라도 이를 공론으로 보긴 어렵다. 교육의원 존폐는 일찍이 판세가 기운 사안이다. 이걸 안건으로 올리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 한다면 시쳇말로 말 다했다. 내후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감한 쥐의 등장을 기대하기는 또 틀렸다. 

그간 도내 언론이 도의회에 잔뜩 힘을 실어준 것은 본래 역할인 견제와 감시를 잘 하라는 뜻이었다. 거꾸로 집행부로선 가혹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의원들도 마이크를 잡을 때나 큰 소리 치지 무대를 옮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권능의 총합은 제왕적 도지사에 비할 바 못된다.

그러나 지금 도의회의 모습을 보면 딴 생각이 들까 두렵다. 벌써 11대 의회 전반기가 저물고 있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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