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연합-제주의소리 공동기획] 제주도 해안사구 이야기(3) 송악산이 만든 해변

제주의 자연생태계 중에서 무관심과 보전의 사각지대에 오랫동안 놓여있었던 곳이 있다. 바로 해안사구이다. 해양생태계의 시작점이자 끝 지점이면서도 연안 습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육지로도 인정받지 못한 곳. 그야말로 중간지대에 있는 곳이라 할만하다. 그렇다 보니 제주의 해안사구는 전국에서도 가장 많이 훼손되었다. 국립생태원의 2017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도 해안사구의 82.4%가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올해부터 도내 해안사구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해 오는 12월까지 매월 2차례씩 총 16회에 걸쳐 도내 해안사구의 가치와 관리실태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용암이 만든 제주의 해변

아득한 옛날, 인간의 시간개념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지질학적 시간에 제주도는 용암이 들끓던 화산도였다. 제주의 중심부에 거대한 화산 폭발이 있었고 그 아래 자락에서도, 해안에서도 작은 화산들이 수없이 터져 나왔다. 한라산과 오름이다. 그래서 제주도는 한 개의 섬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독립화산체(오름)를 갖고 있다. 

오름 보전운동의 산파역할을 한 고 김종철 선생님이 ‘오름 나그네’에서 쓴 “오름이 없는 섬의 지형, 바람만 스산한 죽음의 황야 같은 섬의 땅을, 섬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다.”라는 글귀처럼 오름 없는 제주도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내륙지역의 오름 분화구에서 분출한 용암은 중력에 따라 밑으로 밑으로 흘러 내려갔다. 용암은 긴 여행 과정에서 동굴과 곶자왈을 만들고 바다에까지 이어져 검은 양탄자가 평원처럼 펼쳐져있는 독특한 빌레용암지대를 만들기도 했다. 이를테면 김녕해안의 드넓은 용암지대가 그렇다.

화산폭발은 내륙에서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다. 바다에서도 수많은 화산폭발이 있었다. 바다 속에서 폭발하면서 나온 용암과 화산재가 쌓이면서 오름이 만들어졌다. 제주도 해변에 산재한 오름들이 그렇다. 대표적으로 동쪽에는 성산일출봉이 있고 서쪽에는 수월봉,송악산 등이 그러하다.

해안사구
▲성산일출봉에서 분출한 용암과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신양리 층. 오름의 용암은 제주해안만의 독특한 지질적, 경관적 가치를 만들어냈다.

바다 속에서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오름들은 그 주변 해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성산일출봉에서 분출한 용암과 화산재는 주변 해역에 ‘신양리층’이라는 독특한 해안풍경을 만들어냈다. 

제주도의 동쪽에 성산일출봉이 신양리층을 만들었다면 서쪽에서는 송악산이 ‘하모리층’을 만들어냈다. 이 두 곳은 지질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경관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으로서 행정당국의 제도적 보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 파도가 애달피 우는 오름, 송악산

서검은이오름은 오래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 이유는 오름 산체 자체 보다는 서검은이오름이 모태가 되어 만들어진 수많은 용암동굴과 선흘곶자왈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동굴과 곶자왈의 어머니로서의 가치를 인정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검은이오름이 만들어낸 용천동굴은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검은이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은 동북쪽으로 긴 여행을 하며 만장굴,당처물동굴,용천동굴 등 대형 동굴 20여 개를 만들어냈다. 그 중간 지점에는 한때, 평지에서는 국내 최대 상록활엽수림 지대라 불리던 선흘곶자왈이 자리 잡고 있다. 

그에 비해 송악산은 산체 자체의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이중식 화산체로서 세계 지질학계의 주목을 받는 곳이다. 오름 전체가 붉은 송이로 덮여서 송이오름, 송이산으로 불리다가 송악산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송악산의 옛날 이름은 ‘절울이’다. ‘절’은 물결을 뜻하는데, 파도가 오름 허리 절벽에 부딪혀 우레같이 울린다는 뜻으로 지어졌다. 얼마나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름인가...어쩌면 고달픈 삶을 감내하며 살아야했던 제주선조들의 마음이 절울이 오름을 통해서 투영된 것은 아니었을까. 

해안사구
▲ 송악산은 파도가 절벽을 치면서 애달피 운다는 ‘절울이’라는 아름다운 옛 이름이 있다(출처 : 네이버지도 항공뷰)

그래서였을까. 송악산은 역사적으로도 고난의 시대에 한복판에 있었던 오름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송악산 바로 앞 알뜨르는 일본 전투 비행장이었다. 일본은 제주도민들을 강제동원해 1920년대 말부터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4년까지 알뜨르 비행장을 건설했다. 

1927년 중일 전쟁 당시, 일본 전투기들은 나가사키 현 오무라항공기지에서 난징(남경)을 폭격하고 난 이후 알뜨르 비행장으로 돌아왔다. 이른바 난징 대공습이다. 그 결과 중국인 30만여 명이 학살되었다. 지금도 그 당시 전투기 격납고들이 밭 사이사이에 남아있어 그 당시의 역사를 상기시켜 주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1988년, 정부가 송악산 일대에 군사기지와 비행장을 설치하려는 계획이 알려졌다. ‘송악산 군사기지 건설 반대 운동’은 주민들뿐 아니라 도 전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반대운동이 들불처럼 커져나가자 결국 국회에서 진상조사단을 파견하였다. 국회에서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군사기지 건설계획을 백지화시켰다. 

하지만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제주도는 본격적인 대규모 관광개발 시대로 접어든다. 난개발의 시작이었다. 경관이 빼어난 송악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사업자는 송악산 분화구에 곤돌라를 설치하는 등 대규모 관광위락 시설을 추진하여 도민사회에 큰 갈등을 일으켰었다. 

논란이 이어지다가 어이없게도 투자 기업이 유령기업임이 밝혀지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최근, 외국기업이 다시 송악산에 대규모 리조트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져가고 있다. 정말 바람 잘 날 없는 오름이며 파도에 구슬피우는 절울이오름이 아닐 수 없다.

# 송악산이 만든 해변, 하모리층 위에 형성된 해안사구

이렇게 바람 잘 날 없는 송악산은 그 자체로도 지질학적,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오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모리층을 만들어낸 모태로서도 가치가 높다. 수천 년 전, 만들어진 송악산은 도내 오름 중에서 매우 젊은 층에 속한다. 

송악산의 생성시기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 논란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한 논문에서는 송악산이 약 3,600여년 전 후기신석기 시대에 분출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송악산은 도내 360여 개 오름 중에서도 가장 젊은 오름 중에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송악산이 만들어낸 하모리층도 지질학적 시간으로는 매우 짧은, 수천 년 전에 형성된, 제주 해안지질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것이다. 

해안사구
▲ 송악산은 오름 자체로서도 가치가 높지만 오름 양쪽으로 광범위한 하모리층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사진 출처 : 네이버 지도)

송악산 동서 양쪽의 황우치해변과 설쿰바당, 사계해변, 모슬포 사구, 하모리해수욕장 등은 하모리층이 지반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하모리층은 단단함이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특성을 가졌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하모리층은 마치 작은 그랜드캐년을 보는 것 같은 절경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특이한 것은 광해악현무암(넙개오름 등 중산간 오름지대에서 3만년전후로 분출된 용암이 만든 지대)위로 하모리층이 형성된 것을 확연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만 년 전, 광해악현무암이 먼저 흐른 뒤 불과 수천 년 전에 그 위로 하모리층이 덮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만 년의 차이가 나는 지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지질박물관이 따로 없다.

해안사구
▲ 송악산이 만든 하모리층. 송악산 양쪽으로 넓게 형성되어 있다.

이처럼 그 옛날, 송악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공중으로 날리고 또는 바닷물에 의해 이동하면서 오름 양쪽에 광범위한 ‘하모리층’을 만들었다. 지질학적으로는 젊은 축에 속하지만 인류사에 있어서는 까마득한 시간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이 해안 위를 걸었던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이 하모리층에 고스란히 남아 고고학적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다. 

실제로 이 지역 해안사구 속에서 약 2,500년 전 형성된 상모리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이처럼 독특한 하모리층이 형성되고 해안사구가 형성된 곳 중 2곳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해안사구
▲ 설쿰바당. 하모리층 위에 해안사구가 형성되었다. 도로와 농경지 등으로 단절되었지만 짧게나마 해안사구 숲이 형성되어있다.(사진 출처 : 다음 지도)

설쿰바당은 용머리 서쪽의 해변을 말한다. 설쿰은 무슨 뜻일까? 사계리에도 설쿰동네라는 지명이 있다고 한다. 좀 더 확인이 필요한데 마을에서 나온 글을 보면 '설쿰'이란 ‘눈 속에 생긴 구멍’인 '설혈'이 변형되었다고 전해진다. 

눈이 쌓여도 이 바다에는 눈이 쌓이지 않고 바람이 세게 불어 구멍이 생긴다고 한다. 그만큼 바람이 센 것을 표현한 말이었을까? 송악산의 옛 이름, 절울이처럼 아름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설쿰바당 앞에 그 유명한 산방산이 있다. ‘산’이라 이름 붙여졌지만 독립화산체인 제주도 360여개 오름 중의 하나다. 설쿰바당 주위의 용머리도 형제섬도 오름의 하나다. 설쿰바당 앞의 산방산은 약 80만 년 전에 바다 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용암돔이다. 용암돔은 거대한 종 형태의 용암이 굳어진 바위산이다. 

설쿰바당 옆에 있는 용머리도 바다 속에서 화산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로서 오름이다. 이 용머리오름도 도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달력 사진으로, 최근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주 등장하는 형제섬 또한 오름이다. 바다 속에서 형성되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화산체의 중심 일부분만이 남아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해안사구
▲ 설쿰바당의 해안사구. 하모리층 위에 모래가 덮인 사구여서 높이가 높다. 정면에 산방산이 보인다.

이 설쿰바당도 송악산의 영향을 받은 해안이다. 송악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하모리층이 해안을 덮고 있다. 그 위를 모래가 덮고 있다. 즉, 여기의 해안사구는 하모리층 위에 쌓여진 것이다. 

하모리층 위에 해안사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사구의 높이가 높고 조그만 알오름처럼 능선이 곱다. 또한 바닷물이 드나드는 조간대(사빈)에 이어지는 1차 사구에서는 다양한 염생식물이 모래 위를 장식하고 있다. 

순비기나무 이외에 갯메꽃 등 주로 초본(풀) 염생식물 위주로 1차 사구가 형성되어 있다면 그 뒤로는 까마귀쪽나무 등 바닷가에 잘 자라는 목본(나무)이 짧게나마 해안사구 특유의 숲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해안사구 위에는 이미 주차장과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하모리층과 해안사구를 없애고 들어선 것이다. 해안사구는 아직 법의 보호 테두리 밖에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곳은 언제든지 개발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 황우치해변의 해안사구

황우치해변은 용머리 동쪽의 해변으로서 하모리층이 지반을 이루고 있고 해안에 접한 절벽은 병악곶자왈의 끝자락에 해당한다. 병악곶자왈을 만든 용암이 이곳 해변에 이르러 멈춘 형국이다. 황우치해변은 지형지세가 황소의 뿔(黃)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탐라순력도에는 산방포로 표시되어 있다.

황우치는 항만대라고도 부른다. 항만대는 6.25 전쟁 당시 모슬포 제2훈련소에서 군사물자를 이곳에 실어 날랐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바다에서 내륙으로 들어간 ‘만’지형이라서 난파한 배들이 밀려들기도 하고 종종 시체들도 발견된다. 황우치해변 옆에는 소금막이 있다. 이곳 모래사장에서 소금을 만들며 막을 세웠다고 해서 소금막이라고 부른다. 소금막이라는 지명은 도내 해안 몇몇 곳에서도 보인다. 

황우치해변도 하모리층이 넓은 평원처럼 펼쳐져 있고 그 위를 모래사장이 덮고 있고 있다. 그리고 내륙 쪽으로 이어서 해안사구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 황우치해변의 예전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공사 때문이다. 

해안사구
▲ 외부에서 가져온 바위와 모래를 황우치해변에 쏟아 부으면서 예전의 원형을 잃어버렸다.

황우치해변 바로 옆으로 화순항이 개발되면서 해류흐름이 바뀌어버렸고 이로 인해 모래가 유실되기 시작하였다.(반면에 소금막해변은 모래가 과도하게 쌓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해경부두를 설치하기 위한 화순항 2단계 개발 사업을 하면서 양빈사업(해수욕장에 인위적으로 모래를 투입해 자연 상태와 유사한 해변을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양빈사업을 포함해 약 170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하모리층 위를 덮고 있던 모래는 바다로 다 쓸려가버려 하모리층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다.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더욱이 양빈사업을 진행하면서 외부에서 가져온 수많은 바위들과 모래를 해안사구와 사빈에 쏟아부어버리는 바람에 예전 황우치해변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수천 년 동안 형성된 모래해변의 원형을 훼손해 버린 것이다. 행정당국의 정책 실패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해안사구의 개념조차 없는 상태에서 예전의 토건행정이 진행되다보니 빚어진 일이다.

주변 환경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은 개발로 인해 생태계파괴뿐 아니라 엄청난 경제적 손실도 입은 것이다. 앞으로도 황우치해변의 모래뿐만 아니라 바위마저도 거센 파도에 의해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 또다시 혈세를 퍼붓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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