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로 예술운동 결과보고전...‘낭 싱그레 가게’ 17~23일 아트스페이스씨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예술’의 정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아름다움에서 찾는 노력은 전통적이다. 그러나 오늘 날에는 예술을 비단 미(美)에만 국한시켜 이해하지 않는다. 첨예한 갈등 사이, 소외받는 사회 구성원들 틈에서 예술은 고유한 성질을 지닌 기록자로서 역사와 마주한다.

17일부터 23일까지 제주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 씨’ 지하 전시장에서 진행하는 전시 <낭 싱그레 가게>는 '지금 예술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질문에 기꺼이 답하는 자리다. 

<낭 싱그레 가게>는 길게는 비자림로 확장 공사 시작부터, 짧게는 지난 4~5월 사이 총 네 차례 진행한 나무심기 시민행동의 기록이다. 작가들은 잘려나간 숲을 오가면서 보고 느낀 감정을 회화, 입체 조형, 사진, 영상 등으로 남겼다.

21명이 내놓은 38점의 작품에서는 풀내음이 가득하다. 빽빽한 나무가 솟아있는 숲 속, 고요한 새벽을 깨우는 새 소리가 들린다. 한 걸음 씩 내딛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수풀의 감촉이 느껴진다. 로드킬로 인해 곧 생이 끊어질 듯 숨을 헐떡이는 초식동물의 온기도 전해진다. 숲속 모든 생물의 감각을 곤두서게 만드는 날카로운 금속 톱날의 회전 소리도 들려온다.

고길천의 <Absence>는 공사 인부들에 의해 베인 나무 그루터기를 프로타주 기법으로 종이 위에 옮겼다. 작품은 실재의 흔적을 연필과 예술가의 손, 감각으로 떠낸 재현이다. 우리는 거친 그루터기 나이테 한 줄 한 줄을 보면서, 해가 뜨고 지는 순환을 무수히 반복하는 동안 작은 생명을 싹틔워 하늘 높이 성장시킨 비와 바람, 햇빛의 에너지를 상상할 수 있다. 동시에 뿌리를 내리고 기둥이 솟아 줄기를 뻗어 잎을 펼치는 입체적인 활동이 송두리째 거세된 채, 오직 평면의 밑동 만 남겨진 흔적은 제목 그대로 ‘부재’(absence)의 공허함을 여실히 나타낸다. 이처럼 생명력의 실존과 부재의 극명한 대비는 프로타주의 질감과 그것을 감싸는 흰 여백의 무게감으로 한껏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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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천 '부재, Absence' 59x48cm, 프로타쥬, 2020. ⓒ제주의소리

 

송동효는 <낭 싱그레 가게> 전시가 있기 까지 과정을 20여분 분량의 영상으로 촘촘히 기록했다. 동시에 비자림로 공사 현장을 찾은 어린이의 모습을 꾸밈없는 담백한 흑백사진으로 기록했다. 사진 <나무도 자유예요> 속 아이는 한 쪽 팔로 눈을 가리면서 종이를 들고 있다. 그 위에는 ‘나무도 자유예요. 자르지마세요’란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있다. 아이들은 보고 있는데 성인들이 볼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지만 외면하는 것일까. 혹은 다른 무엇으로 눈과 마음의 눈이 가려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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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효 '나무도 자유예요', 40x60cm, 피그먼트 프린트, 2020. ⓒ제주의소리

 

김지은은 세밀한 묘사로 꽃, 잎, 그루터기, 새를 그렸다. 다만 화폭이 평범한 종이가 아닌 행정기관이 사용하는 대봉투다.

‘물자사랑 나라사랑’, ‘투명한 공직사회, 건강한 정의사회’

제주도의 부실한 현장 조사로 인해 정부가 공사 중단 명령을 내리고, 크고 작은 생명들을 걷어내면서 그 위에 아스팔트 도로를 건설하는 비자림로 확장 공사는 과연 투명함과 건강함이란 가치와 부합할까. 김지은은 <비자림로에서-지워지는 이름들>을 통해 법과 절차를 절대 원칙으로 삼지만, 그 원칙에 숨어 때로는 무책임하게 생명을 파괴하는 역설적인 행정을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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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비자림로에서-지워지는 이름들', 각각 24.7x33.5cm, 행정각대봉투 위에 드로잉, 2020. ⓒ제주의소리

 

무속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는 한진오는 영상 <역류逆流 - 비롯되어 너와 나인(sb origine)>에서 신성함이 점차 갈 곳을 잃어가는 오늘 날, 난개발이란 인간의 욕심이 끝내 신성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랜 시간 마을을 지켜온 신목이 무참하게 부러지고, 골재 채취를 위해 굴착기가 해안가를 휘젓고, 단지 조금 더 빨리 가겠다는 이유로 숲이 사라진다. 한진오는 이륙하는 항공기를 되돌리는 연출을 통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항공기를 띄우는 또 다른 공항과 그 공항을 바라는 물질주의가 아니라고 꾸짖는다.

“난개발을 넘어서서 개발 만능의 도저한 광풍이 몰아치는 오늘, 1만8000신들의 본향이라는 제주는 도륙당하고 있다. 자연 자체를 숭배했던 제주사람들, 그들의 신성은 이제 발붙일 곳 없는 뜬넋이 되었다. 나는 비자림로에서 베어진 삼나무를 보며 묻는다. 신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있는가?” 

한진오의 물음은 우리가 옛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단순함이 아니다. 자연을 존중하며 살았던 공동체의 정신을 잃어버릴 때, 결국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심방의 예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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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오 '역류逆流Ⅰ-비롯되어 너와 나인(ab origine)', 싱글채널비디오 9분, 2019. ⓒ제주의소리

 

인간의 욕심으로 사라진 옛 문명의 경고를 비자림로 삼나무 조각에 옮긴 김성현의 <MOAI>, 로드킬로 비참하게 숨이 끊긴 채 정면을 응시하는 노루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김수오의 <위무>, 제목과 작품을 단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 모두 설명하는 <그깟 도로를 넓히기 위해서 고작 몇 초를 아끼기 위해서 우리가 치러야할 대가> 등 다른 작품들 역시 표현 방식은 다르나 비자림로를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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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오 '위무', 6700 x 4200, 사진, 2020.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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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그깟 도로를 넓히기 위해서 고작 몇 초를 아끼기 위해서 우리가 치러야할 대가', 30.5x23cm, 종이위에 수채, 2019. ⓒ제주의소리
홍보람 'work no.8 image of water and forest', 80.3x53cm, 판넬에 아크릴, 2020. ⓒ제주의소리
홍보람 'work no.8 image of water and forest', 80.3x53cm, 판넬에 아크릴, 2020. ⓒ제주의소리

 

고승욱의 영상 작품 <그림자가 나무에게>에서 잘 설명하듯 탑동에서 새만금, 천성산, 대추리, 밀양에서 강정, 그리고 비자림로와 제2공항까지. 모두 “이번이 마지막 실패이기를 바라며 심었던 나무들이다.” 

어른 나무가 잘려나간 자리에 시민들이 심은 작은 나무가 온전히 자랄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탑동 바다를 메웠던 먹돌처럼, 아늑했던 강정 구럼비 바위처럼 흔적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21명 작가들이 남긴 기록은 섬의 근간이 파헤쳐지는 제주에서 ‘예술이 어디 있어야 하는지’ 분명한 이정표로 다가온다.

일각에서 ‘건설로 먹고 사는 가구가 한 둘이냐’, ‘한가한 활동도 배 굶으면 못한다’는 비판이 일리가 없진 않다. 그러나 오늘 한 끼를 걱정하는 것만큼 이제 우리는 내일과 다음 내일, 나아가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쓰레기와 오·폐수가 넘치는 땅에서 자녀를 키우고 싶은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저마다 가진 양심에 따라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며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마련한 <낭 싱그레 가게>는 제주에서 진행 중인 “시민운동으로서 예술이자 공동체 예술”의 의미있는 현 주소다. 전시는 23일까지 진행한다.

ⓒ제주의소리
'낭 싱그레 가게' 전시장 풍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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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 싱그레 가게' 전시장 풍경. ⓒ제주의소리

아트스페이스씨
제주시 이도1동 1368-5번지

나무 한 그루 심는다는 일은
하늘로 오르는 신의 길목을 내는 일이며
우리의 내일을 하루만큼씩 이어간다는 것이고
한 그루의 나무를 베어낸다는 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신의 길목을 끊는 일이며
우리의 내일을 하루만큼씩 줄여간다는 것이다.

둘러보면 지구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종이 산다
하나는 열심히 낭을 싱그는 인간종이고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낭을 그치는 인간종이다

게믄 우린 누게인가?
지금 어디에 이신가?

- 김수열의 시 <낭 싱그는 사람을 생각한다>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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