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인사위 ‘거수기’ 논란은 구조적 문제

김태엽 서귀포시장 내정자와 관련한 부적격 논란의 불똥이 그를 1순위 후보로 추천한 제주도 인사위원회로도 튀었다. 도청 고위 공무원 출신들이 공직을 나와서도 끼리끼리 주요 자리를 나눠 맡는다는 의미에서 '봉숭아 학당'과 다를게 있느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엽 서귀포시장 내정자와 관련한 부적격 논란의 불똥이 그를 1순위 후보로 추천한 제주도 인사위원회로도 튀었다. 도청 고위 공무원 출신들이 공직을 나와서도 끼리끼리 주요 자리를 나눠 맡는다는 의미에서 '봉숭아 학당'과 다를게 있느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제주의소리

개그 코너로 잘 알려진 ‘봉숭아 학당’은 이의어(異義語)다. 경우에 따라 좋은 의미 혹은 나쁜 의미, 정반대로 해석된다. 고유명사처럼 콕 집어 ‘그 무엇’을 가리키는 낱말은 아니다. 주로 비유적으로 쓰인다.

얼마전 언론에 봉숭아 학당이 자주 오르내렸다. 사실상 정계를 떠난 한 사람 때문이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 정치부 기자들에게 문희상은 격의없는 소통의 대명사로 각인된 모양이다. 

초선의원 시절 문 전 의장은 의원 사무실을 활짝 열어놓았다고 한다. 출입 기자들은 그곳에서 취재도 하고, 정국에 대해 열띤 토론도 벌였다. 발을 들이는 순간, 양쪽 모두 신분을 잊게되는(?) 사랑방이었다. 

문 의장의 봉숭아 학당은 개그 코너 만큼이나 생명력이 길었다. 1993년에 ‘오픈’된 학당은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낼 때도 어김없이 열렸다. 그런 그가 정치무대와 작별을 고한다고 하니 사랑방을 드나들었던 기자들은 감회가 깊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봉숭아 학당은 상반된 두 가지 의미 중 전자에 해당한다. 

같은 이름의 개그 코너는 다분히 엽기적인 학생들이 선생님을 상대로 난장을 치는 공간이었다. 다양한 캐릭터로 웃음을 선사했지만, 딱히 가치를 부여하기에는 좀 그랬다. 이를 문 의장이 좋은 의미로 돌려놓은 셈이다. 

실제로는 봉숭아 학당이 나쁜 의미로 쓰일 때가 더 많다.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한 여당 의원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질책할 때 이 단어가 등장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을 놓고 언쟁이 오가던 상황이었다. 해당 의원은 “(한명숙 사건 수사 감찰과 관련해)검찰총장과 감찰부서장이 서로 싸우는데, 이게 무슨 봉숭아 학당이냐”고 했다. 이에 추 장관이 발끈했듯이, 여기서 봉숭아 학당은 뒤죽박죽, 속된 말로 개판의 의미로 쓰였다.  

지금은 한물간 봉숭아 학당을 새삼 소환한 것은 최근 제주도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고 이 단어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서다. 

김태엽 서귀포시장 내정자의 음주운전 사고 전력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불똥은 그를 1순위로 추천한 제주도 인사위원회로도 튀었다. 인사위가 도정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과 함께,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뜻에서 봉숭아 학당이 거론되고 있다. 일종의 의미 확장이다. 

도의회에서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일리있는 얘기다. 

원희룡 지사가 임명한 출자출연기관(제주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의 장이 인사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더구나 이 위원장은 3년 임기를 채운 뒤 연임에 성공했다. 햇수로 6년째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규정상으로는 공직자들의 승진과 징계, 개방형 공모에 따른 후보자 추천 등이 인사위의 몫이다. 

처음 위원장을 맡을 때는 재단 이사장에 임명되기 전이어서 그렇다쳐도, 이사장에 오른 뒤 연임까지 해가며 자리를 지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제주도개발공사 사장이 임명장을 받은 직후 2개 기관의 위원장직을 내려놓은 것과도 대비된다. 

둘 다 도청 고위 간부를 지냈다. 공직을 나와서도 각종 자리를 나눠가지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인사위원장은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원 지사 캠프의 선거기획 업무를 총괄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선거 후엔 공약실천위원회에서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재단 이사장에 오른 건 그해 9월이다. 

핵심은 소신 결정 여부.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재단 이사장은 지사가 곧바로 임명하면 그만이다. 이른바 ‘빅5’ 수장과 달리 인사청문회도 없다. 

출자출연기관의 장과 인사위원장. 조합의 어색함을 떠나, 생사여탈권을 쥔 지사의 뜻을 거스르기가 쉽지않다. 공모 때마다 분분했던 사전 낙점설이 대부분 현실화한게 방증일 수 있다. 그간 항간의 예상이 빗나간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의회에서 본인은 “공직생활 40년 중 20년 가까이 인사업무에 종사했지만, 편파적으로 (인사를)했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다”고 자신했지만, 현직 공무원이라면 치명타였을 음주 사고로 부적격 논란에 휩싸인 김 내정자의 천거는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개인의 성정 내지 삶의 궤적과 인사위의 독립성·중립성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10년 전 이맘때, 정년을 2년6개월 앞두고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한 그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제주의소리]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공직사회 안팎의 ‘끼리끼리 행태’를 꾸짖는 내용이다. “봉숭아 학당도 이보단 나을 거요”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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