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예래단지 소송’, 개발 패러다임 전환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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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래휴양형 주거단지 사업 중단을 둘러싼 버자야그룹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일단락 소식을 접하면서 '론스타 소송'이 떠올랐다. 두 사안은 성격 자체가 다르지만, 자본의 속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자산가치 70조가 넘는 은행이 1조7000억에 넘어갔다”

“말이가~”

서울지검 양민혁(조진웅 분) 검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말이 되느냐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곧 거대한 금융비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대한은행’ 헐값 매각 사건. 대한은행은 설정이다. 실제 모델은 외환은행이다.  

영화 ‘블랙머니’는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보다는 2012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사건’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장장 17년이다. 한국 정부와 론스타는 8년 넘게 소송(ISDS, 투자자-국가 소송)을 벌이고 있다. 사고 팔고를 통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봤으면 뜰 법도 한데, 론스타는 아직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사모펀드가 숨겨두었던 발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영화는 ‘금융범죄 실화극’을 표방했지만, 팩트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실제 사건을 기초로 하되 허구의 이야기를 덧씌운 팩션(fact+fiction)이다.

우선 ‘자산가치 70조원’은 크게 부풀려진 내용이다. 언론 비평 매체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2003년 6월말 기준 외환은행의 자산총계는 약 64조원. 여기서 부채총계(약 62조)를 빼면 순자산은 2조원이 조금 넘는다. 2006년 검찰 수사 결과(최소 3443억~최대 8252억원 싸게 매각)를 감안하면, 실제 기업가치는 높게 잡아도 3조5000억원이라는 것이다. 

정작 놀라운 점은 그 다음이다. 론스타가 벌어들인 금액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인수 후 매각까지 총 지출 2조1549억원에 총 수입 7조3085억원(배당이익 포함), 순수익은 5조1536억원에 달한다. 기록적이다. 이건 팩트다. 

‘결과적으로’ 천문학적인 국부 유출이 가능했던 건 “곧 망할 것 같다”는 식의 위기 과장, 론스타도 국내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다는 금융당국의 그릇된 판단이 작용했다. 이른바 모피아 실세들의 개입(주도) 의혹이 터져나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게 나라였나 싶었다. 

현실에서는 의혹의 당사자들이 모두 면죄부를 받았다. 론스타도 마찬가지였다. 인수과정에 불법이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 정부로서는 론스타가 불법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됐다. 나아가 외환은행 매각을 고의로 지연시킨데 대한 명분도 잃었다. 

론스타가 ISDS 소송을 제기한 배경이다. 금융당국이 거래 승인을 무기로 질질 끄는 바람에 제 값을 받지 못했다는 취지였다. 투기자본의 집요함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길어졌다.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버자야제주리조트(주) 간 3000억원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이 1250억원 배상 합의로 일단락됐다는 소식에 외환은행과 론스타가 떠올랐다.(JDC 문대림 이사장도 1일 기자간담회에서 ‘론스타 소송’을 언급했다)

외환은행을 예래휴양형주거단지로, 론스타를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으로 각각 바꾸어보았다. 지나친 비약이다. 

두 사안은 성격이 다를 뿐더러 전개 양상도 판이하다. 여러 면에서 단순 비교가 곤란하다. 론스타가 추가 환수(?)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있다면, 버자야는 깨끗이 손을 털고 일어설 분위기다. 

합의 내용이 그렇다. 버자야는 JDC와 제주도를 상대로 한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ISDS도 중단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동안 해온 사업 일체를 JDC에 넘기기로 했다. 이로써 청구액 4조원대로 알려진 ISDS 부담도 기우로 그치게 됐다. 

물론 버자야가 실제로 ISDS 절차를 밟을지에 대해선 추측이 분분했다. 배상액을 높이기 위한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버자야는 우리 정부(법무부)에 ISDS 중재의향서를 제출하긴 했으나, 정식 중재 제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버자야가 론스타처럼 먹튀를 시도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JDC 문 이사장은 오히려 버자야가 투자 원금 수준의 손해배상액을 받아들이는 통 큰 결단을 해줘 고맙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래도 자본은 자본이다. 본디 돈이란 좋은 돈, 나쁜 돈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자본은 속성상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론스타든 버자야든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비록 JDC와 제주도가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 하나, 1250억원은 쌈짓돈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낸 혈세다. 앞으로 토지주들과의 줄소송도 남아있다.

책임은 JDC에만 있지 않다. JDC가 사업을 이끌었지만, 인허가를 내주고 사업을 독려한 것은 제주도였다. 

당대에 추진한 일은 아니지만, 문 이사장이 버자야를 설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고 한다. 애초 두 기관이 개발에만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수고였다.   

자본의 경계가 무너진 글로벌 시대다. 이미 해외 자본이 벌여놓은 판은 제주 도처에 깔려있다. 자칫 하다간 제2, 제3의 버자야 사태는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 

비싼 수업료를 치른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 참에 개발의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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