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연합-제주의소리 공동기획] 제주도 해안사구 이야기(4) 송악산이 만든 해변(하)

제주의 자연생태계 중에서 무관심과 보전의 사각지대에 오랫동안 놓여있었던 곳이 있다. 바로 해안사구이다. 해양생태계의 시작점이자 끝 지점이면서도 연안 습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육지로도 인정받지 못한 곳. 그야말로 중간지대에 있는 곳이라 할만하다. 그렇다 보니 제주의 해안사구는 전국에서도 가장 많이 훼손되었다. 국립생태원의 2017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도 해안사구의 82.4%가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올해부터 도내 해안사구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해 오는 12월까지 매월 2차례씩 총 16회에 걸쳐 도내 해안사구의 가치와 관리실태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선사시대를 품고 있는 하모리층과 해안사구

불과 수천 년 전 만들어진 송악산의 화구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바다에 쌓이면서 만들어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하모리층은 길이가 약 10km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 하모리층이 있는 해안을 송악산이 만든 해안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송악산이 젊은 화산체이기에 하모리층도 제주도 해안에서 가장 젊은 화산지형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더욱이 하모리층은 단단함이 약해 파도가 부딪히면서 모양이 변형되고 있는 살아있는 화산박물관이기도 하다. 

제주의 거센 바람과 파도를 닮은 하모리층의 경관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옛날 바닷속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송악산이 분출한 모습을 선사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보았을것이다. 

그리고 송악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식은 이후, 선사인들은 이 바닷가에서 사슴들을 대규모로 사냥을 했던 것일까? 

이들 선사인의 발자국과 수백 개의 사슴 발자국이 수천 년이 지난 2003년에 세상에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사계리 사람 발자국 화석지이다. 이곳은 이후 천연기념물 464호로 지정되었다. 

사람 발자국 화석지는 케냐, 탄자니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등 현재까지 6개국에서만 발견될 정도로 희귀한 유적지다.

해안사구
▲ 송악산의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하모리층. 누룩빌레라고도 부르는 이곳의 웅덩이를 이용해 옛날 사계리 주민들은 염전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하모리층은 생김새가 누룩을 닮아 누룩빌레로도 불린다. 이 누룩빌레에 수천 년 동안 파도와 부딪히며 수많은 크고 작은 웅덩이들이 생겨났다. 옛날, 사계리 주민들은 애월 구엄의 돌 염전처럼 이 하모리층 웅덩이에 들어온 바닷물을 이용해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웅덩이에 고인 소금농도가 높은 물을 장을 담글 때 쓰거나, 솥에 넣고 끓여서 소금을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하모리층의 지질학적인 가치, 역사적인 가치, 경관적인 가치는 매우 높다. 게다가 하모리층 위에 모래가 쌓인 해안사구는 더 독특할 수밖에 없다. 이곳의 해안사구 보전이 더 각별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곳의 해안사구도 오래전 도로에 의해 단절되어 있고 숙박시설, 음식점, 주차장, 체육시설 등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어 있다. 현재의 법률로는 해안사구는 개발로부터 전혀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개발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해안사구
▲ 설쿰바당 모래 해변. 왼쪽의 해안사구 위에 숙박시설, 음식점,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송악산이 만든 동서 양쪽의 하모리층과 해안사구가 함께 있는 곳 중에 알려진 곳은 황우치 해변과 설쿰바당, 사계 해변, 모슬포 사구, 하모리 해수욕장 등이다. 

하지만 환경부에서는 송악산이 만든 하모리층 해안사구 중에서 사계 해변과 하모리 해수욕장의 해안사구만을 환경부 해안사구 관리목록에 포함하였다. 그 외의 사구는 제외한 것이다. 

그래서 환경부 목록에 포함되지는 않은 황우치 해변과 설쿰바당에 이어 이번 회에서는 사계 모래 해변의 해안사구, 모슬포 사구(상모리 사구)를 소개한다. 그리고 환경부 해안사구 목록에 포함된 하모리 해수욕장의 해안사구를 소개한다.

#사계 모래 해변의 해안사구 - 해안사구의 교과서

사계 사람 발자국 화석지가 있는 모래 해변이다. 이 모래 해변 뒤로 대규모의 해안사구가 형성되어 있다. 환경부는 제주도 14개의 해안사구 중 이곳을 도내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로 지목하고 있다. 송악산이 만든 하모리층이 있는 해안에서도 이곳은 가장 길고 넓은 해안사구를 갖고 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조간대인 사계 모래 해변에 바로 붙어 형성된 1차 사구에는 수많은 염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갯메꽃, 통보리사초, 암대극 등 염생식물 초본류가 지면을 덮고 있다. 특히 순비기나무가 넓게 퍼져 있어 꽃이 필 때면 산방산과 한라산을 배경으로 장관을 이룬다. 

제주도내 사구 중에서도 이곳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염생식물이 자라는 곳은 매우 드물다. 1차 사구 뒤인 2차 사구에는 곰솔이 주를 이루는 배후 숲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배후 숲을,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막이로 하여 모래밭 위로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민들이 해안사구를 기대어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해안사구의  교과서인 셈이다. 

해안사구
▲ 사계 해안사구. 이 1차 사구에는 염생식물 군락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식생 또한 그렇다. 모래 해변으로부터 내륙 쪽으로 통보리사초 군락-갯금불초 군락-갯메꽃 군락-순비기나무 군락-곰솔군락으로 이어지면서 해안사구의 교과서적인 식생 생태계를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연속성이 단절되어 있다. 1차 사구와 2차 사구인 배후 숲 사이에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해안사구 생태계가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1차 해안사구 또한 올레길이 조성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계속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레길에 경계선도 없어서 사람들의 답압에 의한 훼손이 더 심해지고 있다. 또한, 사계리 해안체육공원이 개설되면서 상당 부분의 사구가 사라진 상태이다. 

더욱이 하모리층조차도 전혀 관리되고 있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훼손되고 있다. 이곳에 대한 안내판과 올레길에 간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사구 안쪽으로 못 들어가게 할 필요가 있다.

해안사구
▲ 오른쪽의 1차 사구와 왼쪽의 해안사구 배후 숲이 해안도로에 의해 단절되었다.

# 모슬포 사구 – 청동기 시대의 흔적을 품고 있던 사구

모슬포 사구는 송악산 서쪽 해변에 형성되어 있는 해안사구이다. 지번은 상모리에 속해 있다. 

제주지질연구소의 강순석 소장은 ‘제주도 해안을 가다’(2004)에서 이곳을 모슬포 사구라고 명명했다. 이곳 또한 하모리층이 조간대에 넓게 펼쳐져 있고 내륙 쪽에는 하모리층 위에 사구가 형성됐다.

그래서 사구 층의 높이가 10m 정도로 높다. 그런데 해안가에 접한 1차 사구 정도만 일부 남아있고 뒤쪽은 대부분 농경지로 개발되어 2차 사구는 사라진 상태이다. 

해안사구
▲ 송악산 서쪽해변의 하모리층과 멀리 보이는 모슬포 해안사구

이 모슬포 사구의 모래 속에서 선사시대 때 쓰던 토기와 전복, 소라 등의 화석이 발견됐다. 여기 해안사구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대정 산이수동 마을 동쪽의 해안사구 속에서도 약 2500년 전에 형성된 유물산포지와 패총(선사 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 유적이 발견됐다. 

유물산포지에서는 화덕과 집자리터의 토기가 발견됐다. 즉, 해안사구 모래 속에서 수천 년 동안의 유물들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해안사구 속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청동기 시대의 것들이다. 패총 등 우리나라 조개더미 유적의 대부분은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에 해안 및 섬지방에 형성되었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는 이 상모리 유적을 제외하고는 아직 보고된 적이 없다. 

해안사구
▲ 모슬포 해안사구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해안사구가 선사시대 유물을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제주도가 다른 지방과는 달리, 농경 생활보다는 어로 생활에 치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상모리 해안가 중심으로 형성된 상모리 패총유적과 유물 산포지는 한반도의 마지막 청동기문화 단계를 보여주는 패총이다. 사계리의 사람 발자국 화석도 송악산 부근의 해안가를 중심으로 살던 선사인들의 발자국이었음을 추정케 한다.

# 하모해수욕장의 해안사구 - 개발로 인해 해수욕장 기능이 상실되다

해안사구
▲ 하모 해안사구. 숲이 형성되어 있다.

이쪽 일대의 해안선은 제주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해안단구(해안선을 따라 발달한 계단 모양의 지형)를 이루고 있다. 중문 해안처럼 깎아지른 해안절벽을 해안 단애라고 부르는데 이와는 다르게 완만한 계단 모양의 지형을 해안단구라고 부른다. 

이처럼 이곳 일대는 해안단구와 함께 해안사구가 형성되어 있다. 하모해수욕장의 뒤편으로는 3-10m 높이의 사구 층이 해안선을 따라 띠 형태로 발달되어 있고 사구 층 뒤쪽에는 내륙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해안사구
▲ 하모해수욕장. 오래전 방파제 건설과 해안사구 개발로 인해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했다.

하모해수욕장은 예전에 지어진 방파제로 인해 모래유실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이미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한다. 방파제 건설뿐만 아니라 해안사구가 파괴된 원인도 있다. 

1차 사구가 그나마 남아있지만, 농경지와 도로,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2차 사구가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방파제 건설과 해안사구 개발로 인한 모래유실이 심각한 곳은 이곳뿐이 아니다. 

해안 개발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송악산이 만든 해변인 하모리층 해안과 해안사구에 대한 보전대책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