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78. 돈은 세어서 주고, 세어서 받는다

* 세영 주곡 : 세어서 주고

예로부터 거래는 분명히 하라고 했다. 물론 돈을 빌려준 사람인 채권자와 빌린 채무자 사이의 얘기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앉아 눈앞에서 돈을 세어 주고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쉬운 일인데 뜻밖에 꼬이는 수가 왕왕 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함에도 어쩌다 소홀히 하는 수가 있는 게 사람의 일이다. 더러는 친한 사이에 무슨 돈을 세면서 주고받나, 주는 사람이 한 번 세었으면 된 것이지 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일하는 중에, 거기 두고 가게 하는 등 주는 대로 받고 넘어간다. 하긴 그게 예전 시골 인심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러고 난 뒷일. 돈을 주고 간 사람이 돌아간 뒤에 무심코 돈을 세어 봤더니, 돈이 모자라지 않은가. 퉤퉤 손에 침을 뱉어 가면서 두 번, 세 번을 세어 보는데도 돈이 모자라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채무자를 불러 이럴 수 있느냐고 닦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사람을 놓아 전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처럼 통신이 편해도 그럴 것인데, 서로 간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는 확인하고 싶어도 쉽게 만나지 못하니 참 난감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된 착오인지 밝힐 수 없는 일이라 피차 좋지 않은 감정으로 발전할 게 아닌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 눈앞에서 하나, 둘, 셋…. 빚을 갚는 사람이 먼저 정확히 세어서 건네주고, 또 돈을 받는 사람 쪽도 제 손으로 세어서 확실하게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돈이다. 애초 그랬다면 나중에 이렇다 저렇다 말이 나올 여지가 없다.

오래된 일이다. 친구에게 넘길 돈을 갚기 위해 수표 몇 장을 가전제품점을 경영하는 그의 매장으로 찾아가 건넸다가 탈이 생겼다. 언제 내게 수표를 주었느냐는 게 아닌가. 왜 내가 봉투에 넣고 와서 자네 손에 쥐어줬지 않았나 아무리 항변해도 통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수표를 주고받은 자리에 아무도 없었던 것, 그게 근본적으로 화근이 됐던 모양이다. 수표를 건네는 걸 본 사람이 있었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일이었다. 

그는 사업을 하는 프로였고, 나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백면서생이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가까운 친구 둘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주지 않은 수표를 주었다고 할 사람이냐? 수십 번 반복한 그 말이 회상 공간으로 떠올라 씁쓸히 웃는다.

‘돈은 세영 주곡, 세영 받나.’

분명히 해야 할 일이다. 친하니까 서로 믿는 처진데 뭘, 하는 건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더러운 게 돈이라 했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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