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윤여일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윤여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윤여일 학술연구교수.

-국토교통부 공항항행정책관에게-

‘제주 제2공항 관련 쟁점 해소 공개 연속토론회’가 시작되었다. 7월 2일부터 매주 목요일에 3~4차례 진행될 예정이다.
 
첫 번째 토론회에 도민패널로 참가할 수 있었다. 그 현장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공유하고 싶다.

1. 국토부의 토론회 전략 - 도민결정권 박탈하기
 
“이 작은 섬에 왜 또 하나의 공항을 지어야 하는가. 10개월 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국민의 안전이다.” (김태병 공항항행정책관)
 
국토부 측은 이 날 발제문을 배포했다. 제목은 「제주 제2공항은 국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이다. 말미에는 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안전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음.” 국토부 측은 명확한 전략을 세운 것이다. 제2공항 건설 여부에서 고려해야 할 최우선 가치는 ‘국민의 안전’이며 그것은 전문가의 판단 영역이니, 제2공항 건설 여부는 도민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날 김태병 정책관이 ‘국민의 안전’과 더불어 빈번히 사용한 말은 ‘국민의 이동권’이었다. “우리 국민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이동권이 있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다. 제주는 온 국민이 오고 싶어하는 곳이다. 관광객이 더 이상 못 들어오게 한다면, 전체 국민께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제주도에 오고 싶을지도 모를 사람(무려 전체 국민)을 기존 공항으로는 다 받을 수가 없으니 제2공항을 짓지 않는다면 국민의 이동권과 거주 이전 자유가 침해된다는 것이다. 불과 1, 2만 원이면 항공권을 구할 수 있고, 70만 인구의 섬에 연간 3000만 명 넘는 여객 인구가 다녀가는 상황에서 이런 논리를 만들려고 헌법을 운운해야 했을까. 과연 ‘전체 국민’은 오버투어리즘으로 제주도가 훼손되어도 좋다고 여기고, 훼손된 제주도를 찾고 싶어 할까. 2~30년 뒤에나 발생할지 모를 누군가의 ‘이동권’ 제약 때문에 당장 생활인의 ‘재산권’과 ‘환경권’을 침해해도 되는가.

국토부의 전략은 여실히 드러났다. ‘전문가 vs. 도민’(“그건 전문가의 영역이다”), ‘국민 vs. 도민’(“그건 도민의 뜻으로 결정할 수 없다”)의 구도를 만들어 도민결정권 요구를 무마하려는 것이다.
 
“이번에 제가 주민투표를 의뢰한다면, 갈등을 겪는 모든 SOC 사업도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 그것은 어렵다.” (김태병)
 
모든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이 섬의 공항처럼 지역 전체의 주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테고, 모든 SOC 사업의 갈등이 지금 제주도 상황처럼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민 대다수가 원한다면 당연히 주민투표를 검토해야 한다. 그것이 주민투표법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법과 제도가 있는데도 “당신들 요구를 들어주면 다른 데서도 떼쓰니 곤란하다”라고 할 때, 그 말에서는 공무원의 지극한 권위주의가 들린다.

도민결정권에 관해 비상도민회의 측은 이렇게 주장했다.
 
“제2공항은 도민들의 삶이, 미래가 걸려 있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기술자나 공무원이 결정해서는 안 된다. 도민들이 결정해야 한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토론은 도민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한, 도민들의 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한 토론이다.” (박찬식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
 
이어지는 공개토론회에서 국토부는 제2공항 문제가 제주도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주장하고 이를 끝으로 논의를 마무리하려 들 것이며, 반대로 비상도민회의는 이번 공개토론회에서 제2공항 계획의 문제점을 드러내 도민결정권 행사로 향하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할 것이다. 이 공개토론회는 이처럼 서로의 상반된 목표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성립된 것이다.
 
‘제2공항 문제를 제주도민이 결정해야 하는가.’

이것이 이번 공개 연속토론회 내내 가장 중요하고도 실질적인 쟁점이 될 것이다.

2. 국토부가 회피한 논점들
 
한 도민패널이 물었다.
 
“작년 5월에 국토부는 인천국제공항과 제주공항의 운용 사례를 안전 우수사례로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런데 지금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제2공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사이 판단이 바뀐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김태병 정책관은 “94년의 제주공항 사고를 기억하실 것입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준비한 발언이겠지만 상황 묘사가 무척 구체적이었다. 두 번째 복행, 복행 한 번에 소요시간 15분, 상륙적지지점 1173미터, 돌풍 초속 29미터, 비행기 속도 158노트, 활주로 150미터 초과. 이 수치들을 다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발언을 잘 들어보면, ‘1년 사이 제주공항 안전 문제에 관한 국토부의 판단은 달라진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정작 답하지 않았다. 거꾸로 제주공항 안전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 사례를 찾으려면, 26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제주공항 안전 문제는 두 번째 토론회(기존 공항 활용 가능성)에서 제대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세 번째 토론회(입지 선정의 적절성)에서 성산이 제2공항의 안전한 입지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제주공항에서는 1994년 이후 비행기 사고로 인한 사망 같은 치명적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광객 증가로 인한 제주도 내 자동차 추돌 사고는 현저히 늘었고, 공항을 하나 더 세워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또한 공항을 하나 더 짓는 일 자체가 부지와 인근의 사람과 자연에게 치명적이며, 더구나 그곳이 성산 지역이라면 숨골, 동굴로 인한 지반 침하와 철새도래지로 인한 조류 충돌도 우려된다. 안전 문제를 제대로 짚으려면 제주공항의 혼잡도 말고도 검토해야 할 요소가 아주 많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 문제를 길게 다루지는 않겠다. 그보다 짚고 싶은 것은 저 도민패널의 질문에 대해 그러했듯이 실제로는 국토부 측이 대답하지 않았던 논점들이다. 공방을 배구에 비유하자면, 한 측이 서브를 넣었을 때 한 측은 이를 받아 넘겨야 랠리가 된다. 그래야 논점은 논의로 심화될 수 있다. 그런데 반대진영 측이 서브한 공을 국토부 측은 돌려보내지 않고 몇 번이나 코트 바깥으로 쳐냈다. 배구라면 실점 상황인데, 사회자는 발언 시간과 순서만을 챙길 뿐 개입을 하지 않아 ‘쟁점 해소’라는 공개토론회의 취지가 퇴색했다. ‘쟁점 해소’ 이전에 ‘쟁점화’도 제대로 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국토부 측이 코트 바깥으로 내보낸 공들을 챙겨보려는 것이다. 그것이 국토부가 회피하고 싶은 논점들일 테니 말이다.

3. 전염병 사태를 대비한 또 하나의 공항?
 
“무안은 917만을 예상했는데 90만도 안 되고, 양양 240만 예측이었지만 5만에 그쳤고, 여수 274만 예측에 63만에 불과하고, 울진 348만 예측에 개항도 못 했고, 예천 131만 예측에 폐쇄되었고 …” (박찬식)
 
국토부는 항공수요가 대폭 늘어나리라는 자체 예측치를 바탕으로 이제껏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추진했다. 그런데 그 예측치가 2015년에는 4557만 명(사전타당성 조사)이었다가, 2016년에는 500만 명이 줄어든 4046만 명(예비타당성 조사)이 되는 등 신뢰도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위 발언에 대해 국토부 측은 현재 인천공항은 30년 전 예측치에 거의 근접했다고 강조했으나 다른 지방공항에 대한 언급은 삼갔다. 인천공항은 국제선 위주의 공항이며, 제주공항은 국제선 비중이 10%이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제주공항의 국제선 운항이 중단되었고, 항공업계와 관광업계의 장기적 전망은 몹시 어둡다. 그런데 국토부 측 발제문을 보면 ‘코로나19 여파로 수요가 줄어들 것인가’라고 스스로 묻고는 “과거 메르스, IMF 금융위기 때도 단기간 내 수요 회복 후 성장하였으며, 전문가들은 최근 국제선 수요가 30%대로 줄어들면서 제주 국내선 수요는 더 늘 것으로 전망”이라고 주장한다. 코로나 사태를 비교적 짧게 끝난 메르스 사태에 견주는 인식도 안이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결국은 국내선 수요가 더 늘어나리라는 전망은 현실에도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게 전망한 전문가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토론회 현장에서 더 놀라운 발언이 나왔다.
 
“코로나는 또 다른 신종이 나오고, 또 다른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올 것이라는 자료를 많이 접한다. 이게 끝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공항은 전염병이나 다른 재난들에 대비할 수 있도록 만약에 하나가 안 되어도 다른 대체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태병)
 
전염병 등의 재난으로 공항 기능이 마비될 상황을 대비해 또 하나의 공항을 짓자는 것이다. 물론 이 발언이 국토부의 공식 입장은 아닐 것이다. 김태병 정책관이 임기응변 도중 범한 실언일 것이다. 따라서 몰아세울 생각은 없다. 다만 이 발언은 이유를 어떻게 달아서라도 제2공항 건설을 정당화시키겠다는 심리와 태도만큼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난 2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열린 제주 제2공항 관련 쟁점해소 공개연속토론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열린 제주 제2공항 관련 쟁점해소 공개연속토론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 제주도가 하수처리장, 쓰레기처리장인가?

“환경수용력에 대해 정말로 문헌을 찾아본 적이 있는가.” (강진영 제주연구원 박사)
 
“환경수용력은 자연환경이 기본적으로 본 모습을 유지하는지, 훼손속도만큼 회복속도가 따라가는지, 사람들의 삶의 방식, 삶의 질이 유지되는지, 관광객들이 기대하는 관광 체험의 질이 유지되는지의 문제이다.” (박찬식)
 
코로나 시대에 진정 쟁점화되어야 할 것은 항공수요가 ‘늘어날 것인가’보다 ‘늘어나도 되는가’이다. 대량관광을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이 개발해야 하는가. 여기서 중요한 화두가 ‘환경수용력’이다. 국토부는 최대치로 추정한 항공수요를 충족시키고자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 많은 사람이 실제로 제주도에 들어올 때 벌어질 일은 과연 고려하고 있는가? 이미 작년 공개토론회에서 국토부 전진 사무관은 시민의 추궁에 못 이겨 “항공수요를 추정할 때 제주도의 환경수용력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실토한 바 있다.

환경수용력은 생태계가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며 어느 정도의 변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고 삶의 질도 악화된다. 국토부 발제문에서 환경수용력에 관한 언급은 “제2공항은 건설 및 운영과정에서 제주도 환경수용력을 제고하고”, “환경수용력을 대폭 증대해 나갈 계획”, “환경수용력을 근본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노력” 등 여기저기서 보이며, 현장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이는 심각한 본말전도이다. 애초 환경수용력의 범위에서 공항 계획을 수립해야지, 공항 계획을 수립하고 거기에 맞춰 환경수용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토부는 공항을 짓고 나서 ‘대폭적으로’ ‘근본적으로’ 제주의 환경수용력을 높이겠다고 다짐하는데, 이는 제주도라는 국토와 그 생태계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몰지각한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세 가지 사실을 말하자. 첫째, 제주도는 섬이다. 둘째, 섬은 환경수용력이 관건이다. 셋째, 공항 건설은 일반 개발사업과 다르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들어온다면 얼마나 많은 난개발이 이어질 것인가. 공항 건설을 일반 시설 수준에서 추진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욱이 국토부는 환경수용력 증대와 관련해 “상·하수도 및 폐기물 처리능력을 증대하는 등 환경수용력을 제고할 계획”, “노후상수관 정비”, “8개 하수처리장, 소각시설 신설”이라며 상하수와 쓰레기 처리만을 거론했다. 즉 제주도의 환경수용력을, 대량관광으로 초래되는 오물과 쓰레기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로 이해하는 것이다.

국토부의 눈에는 제주도가 대량관광을 위한 하수처리장, 쓰레기처리장인 것일까.
 
5. 제주도는 도시가 되어야 하는가?
 
“제주 제2공항이 된다고 해서 주민들이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 골목 상권을 보호하고 상생거점을 만들고 다양한 제도들을 도시 재생형 뉴딜 사업과 함께 추진 중에 있다”, “생활 SOC나 노후 SOC, 스마트시티의 센서를 달아서 노후화된 것은 교체하고, 도시계획적 틀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김태병)
 
이날 국토부 측이 가장 자주 사용한 단어 중 하나는 ‘SOC(사회간접자본)’였다. 관광객 대량 유입 문제도 지역복리 증진 문제도 SOC를 투입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오수가 늘어나면 하수처리시설을 더 짓고, 교통체증이 심화되면 도로를 더 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SOC보다, 이와 함께 등장한 ‘도시’라는 단어가 국토부 측이 그리는 제주도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알려준다. 애초 마을과, 지역과, 제주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국토부는 이곳의 생활인과 전혀 다른 것이다. 국토부는 기본적으로 성산과 제주도를 도시로서 개발해야 하며, 농산어촌과 오름, 곶자왈 등의 자연생태는 도시의 배후지로 상정하는 듯하다. 그래서 환경수용력 문제도 ‘처리용량 증대’라는 도시적 해법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국토부는 다음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시아의 하와이를 꿈꿨던 우리가 하와이의 두 배 관광객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대로 제주도가 제주다운 모습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2~30년 개발의 결과 제주도는 자연도 망가지고, 사회 공동체도 망가지고, 인문환경도 망가지고, 우리 내면의 심성까지 무너지고 있습니다. … 이런 식으로 2~30년을 더 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제주도가 살 만한 섬으로 남아 있겠습니까?” (박찬식)
 
‘살 만한 섬’, 국토부는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SOC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제주인들의 지금 위기감이 SOC 부족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6. 성실로 덮을 수 없는 부실
 
“그간 국토부와 여러 차례 토론이 있었는데, 국장님이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박찬식 상황실장의 토론회 첫 발언이었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국토부는 제주도의 미래가 걸린 토론회, 설명회에 사무관을 보냈다. 국장급이 직접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국토부도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국장급인 김태병 정책관이 토론에 임한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제까지 국토부가 파견했던 담당자들과 달리 시종 진지하게 경청하고 성의 있게 토론했다. 토론을 회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설득하려고 했다. 덕분에 토론회는 전에 비해 훨씬 생산적일 수 있었다. 토론회의 생산성은 어느 측이 잘했는지를 떠나 논점이 제대로 논의되었는지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토론회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 정말 작은 섬에 두 개의 공항이 필요한가. 그래서 초반에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철저화하는 데 모든 신경을 썼습니다. 10월 고시였던 것을 12월로 늦추고, 환경부에서 의견을 나와 조류 이동성 조사를 하고, 다음에는 숨골이 거론되어 숨골 조사를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있습니다. … 제2공항에 왜 이 작은 섬에 공항을 해야 하느냐, 제가 10개월 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국민의 안전입니다.”
 
이 발언에서는 주어진 업무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업무를 맡아 고민했던 한 공무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는 업무를 맡고나서 왜 10개월이나 고민해야 했을까. 왜 제2공항 추진 절차를 그렇게나 늦췄을까. 여기에 공무원으로서의 사명의식, 우수한 두뇌, 성실한 자세를 갖춘 한 공무원의 비애가 있는 듯하다. 그는 애초 고민스러운 업무, 빠르게 추진할 수 없는 업무를 맡았던 것이다.

그는 이런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국책사업 사상 유래 없는 재조사와 검토를 했다.” “숨골이나 조류 조사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원래 절차에서 정한 것보다 훨씬 더 깊게, 범위도 훨씬 넓혀서 하고 있다.” “보통 환경영향평가서는 수 백 매이지만,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서는 2500매이던 것에 최근 500매를 또 추가했다.”

이 성실함은 실상 부실의 대가이다. 그가 맡은 업무가 애초 문제투성이였던 것이다. 사업 추진 근거가 충분치 않고, 더구나 해서는 안 될 곳에 벌인 사업이라서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저러한 재조사와 검토는 제주도민이 아닌 환경부 요구에 따른 것이다. 조사를 다시 해야 하니 환경영향평가서는 점점 불어나는 수밖에 없다.

그는 10개월의 고민 끝에 ‘국민의 안전’ 때문에 제주도에는 또 하나의 공항이 필요하다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하지만 서두에 지적했듯이 ‘국민의 안전’은 명분으로서는 너무나 범박하고, 요소로서는 고려해야 할 게 너무나 많다. 결국 그는 제주도민을 상대해야 하는 줄 알았을 텐데도 ‘제주를 위한 가치’는 밝힐 수 없었고 ‘국민의 안전’ 뒤로 숨어야 했다.

개인의 성실함으로 가릴 수 없는 부실한 국책사업을 맡아 어떻게든 추진 논리를 만들고 강행해야 한다는 데 성실한 공무원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부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심을 거두지 말길 바란다. 그 의심을 하는 수밖에 없었던 조건, 조사를 거듭하고 환경영향평가서를 재작성해야 하는 상황은 당신이 ‘옳지 않은 일’을 수행중이라는 증거일 수 있다.

7. 부디 답변을 달라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장기비전을 가지고 정당성, 투명성, 민주성과 같은 보편적 가치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 “공무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는 전문성, 절차적 정당성, 투명성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김태병)
 
그는 유독 공무원의 책임을 역설하고 다짐하는 공무원이었다. 이 말을 할 때 나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진정 공무원으로서 토론회에서 책임을 지려면 ‘공공의 이익’, ‘보편적 가치’, ‘국민의 생명’, ‘국민의 안전’과 같은 큰 언어 뒤로 숨어선 안 될 것이다.

그는 첫 번째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 질문들에 답하지 않았다.
 
“도민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은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과 자치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권의 국정방향에 부합하며, 문재인 대통령도 국민과의 대화에서 제2공항 문제는 제주도민의 뜻에 따르고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것인가.” (문상빈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이 자리에서 묻고 싶다. 정말 제주도민들이 하지 말자고 해도 국책사업을 강행할 것인가. 이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박찬식)
 
“현공항에서 3700만, 3800만의 항공수요를 안전하게 소화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관한 연구가 있는가? 지금껏 제주공항에 대해 나온 유일한 보고서는 ADPi 보고서밖에 없지 않은가?” (박찬식)
 
“제주공항의 규모는 100만평, 제2공항은 150만평이다. 제2공항의 활주로 용량은 현공항보다 크다. 그렇다면 두 공항을 합쳐 항공처리 용량이 6000만을 넘긴다. 국토부가 필요로 하는 용량은 4000만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여수 공항이나 양양 공항처럼 40만평, 50만평이면 충분한데, 왜 150만평짜리 공항을 만드는가?” (박찬식)
 
“수요를 예측해 공사에 들어갔는데, 불과 5년 후 환경은 파괴되었고 주민은 내쫓긴 상태에서 수요 예측이 잘못되었다는 게 드러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문상빈)
 
“숨골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데, 숨골을 메우는 것 말고 무슨 방안이 있는가?” (문상빈)
 
“작년 국토부 측은 제주도민이 환경수용력에 대한 관심이 높으니 제2공항이 제주도의 환경수용력에 미치는 복합적 영향에 대해 제주도의 여러 관계 기관과 함께 협의하고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일 년 사이 어떠한 노력과 결과가 있었는가?” (도민패널)
 
이밖에도 답변으로 돌아오지 않은 질문들이 많다. 아무리 달변이더라도 질문을 회피한다면 답변은 되지 못한다. 물론 제약된 시간 동안 모든 질문에 다 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토론회의 취지에 비춰보건대 위의 질문들에는 반드시 답변이 필요하지 않은가. 아직 토론회는 남아 있다.

8. 그 모든 노력은 기본계획 고시 전에
 
“토론회를 하다보면 많이 배웁니다. 저희들이 몰랐던 부분을 지적해주신 것에 대해 깨닫고 고쳐나가는 과정을 갖습니다. 앞으로도 저희들은 이런 소통의 과정을 갖겠습니다.” (김태병)
 
이 발언 이후 문상빈 공동대표가 말했다.
 
“공무원 역할을 아주 잘 하시는 분 같은데요, 이런 분들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겁이 납니다. 의견을 고려하겠다, 도민들 말씀을 듣겠다, 국민들 말씀을 듣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할 것은 다 하죠.” (문상빈)
 
무척 매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제주도에서는 현실적인 우려이다. 이제껏 여러 국토부 담당자가 와서 추궁 받으면 “앞으로도 책임지고 소통하겠다”라고 말했지만, 현장에서 어물쩍 넘어가기 위한 책임 회피용 발언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지적을 받아 깨닫고 고쳐나가겠다”는 그의 말을 믿고 싶다. 그리고 다음 같은 다짐도 믿고 싶다.
 
“저희는 절대 홍수 문제나 지하수 함양 문제, 탁수 문제, 주민 논밭의 문제, 오염 물질 배출 문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한에서는 이 사업을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태병)
 
이 발언들에 부디 책임지기를 바란다. 알아볼 것을 제대로 알아보고, 검증할 것을 깊게 검증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 모든 노력은 기본계획 고시 전에 해야 한다. 쟁점과 의문을 남겨두거나 덮어둔 채 기본계획을 고시한다면, 장기간의 건설과정 동안 성산 지역의 주민간, 제주도 전역의 도민간에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갈등이 초래된다.

그래서 또 한 가지 부탁한다. 검증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부디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르길 바란다.
 
“공항 같은 큰 개발을 앞두고 과학적인 증거가 아직 부족하다면 사전예방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확실한 판단을 못 할 때는 멈추는 것이 맞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런 조사와 연구는 충분히 가능하다.” (박찬식)

9. 도민의 염원 때문에 한다면서 왜 의사를 확인하지 않는가
 
이 글은 연속토론회에 도민패널로 참여한 경험을 현장에 있지 못한 제주도민, 제주도를 아끼는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쓴 것이다. 그리고 김태병 정책관이 읽기 바라며 쓴 것이다.

중립적 입장에서 토론회를 논평한 것은 아니다. 나는 제주 제2공항 계획 철회를 간절히 바란다. 그 이유는 책 분량(『광장이 되는 시간』)으로 밝혔으니 여기서 재론하지는 않겠다.
 
다만 끝으로 김태병 정책관에게 전하고 싶다. 그의 발언을 따다가 이 글을 썼는데, 발언의 의도를 내가 잘못 짚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으로서 노출되고 거명되는 것은 무척 부담스런 일일 것이다. 더구나 그는 공무원이니 지면을 통해 반론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나 역시 도민패널로서 한번 뿐인 토론회 참가 기회를 활용했으니 지면을 통해 말을 건네는 수밖에 없다. 이해를 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론을 방송으로 열심히 들을 테니 제기된 질문들의 일부라도 꼭 답변해주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발제문 첫 장에는 “불편한 제주공항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은 90년대부터 제주도민들의 염원이었으며, 오랜 검토 끝에 30년 가까이 지난 현 시점에서 추진 중”이라고 적었고, 토론회에서도 “제2공항은 제주도민이 오랫동안 원해서 국토부가 검토 끝에 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왜 지금 제주도민의 의사가 무엇인지 확인하려 하지 않는가.

제주도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끔찍한 역사를 쓰지 말길 간절히 바란다. 
 
# 외부 기고는 [제주의소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