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김헌범 논설위원·제주한라대 교수

‘소리 시선(視線)’은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쓰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매주 수요일 외에도 시시각각 벌어지는 주요 이슈에 대해선 비정기적으로 싣습니다.

방앗간 참새

부고(訃告)만 아니라면 언론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을 즐기는 것이 정치인이라던가. 더욱이 ‘핫’한 사회적, 정치적 이슈라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을 널리 알리고 싶은 정치인들에게는 군침을 흘릴만한 좋은 먹잇감일 것이다. 지금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검언유착 수사권 지휘를 둘러싼 추미애 장관과 윤석렬 총장 간 갈등일 것이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 어려웠을까. 요즘 들어 지자체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중앙정치에 부쩍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원희룡 지사가 또 입을 열었다.
 
“추 장관의 입장문을 범죄 피의자인 최강욱과 공유했다면 더 나쁜 국정농단이다... 법무부 장관이 끄나풀들과 작당하고 검찰총장에게 지시할 때마다 검찰이 순종해야 한다면 그게 나라냐.... 추장관이 요구하는 것과 문재인 대통령이 묵인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이거라면 이건 검찰 사유화(이고), 바로 국정논단이다”
 
남자 박근혜와 남자 최순실
 
친여인사인 최강욱 의원이 추 장관의 입장문 가안을 입수해 자신의 페이스 북에 올린 것에 대한 원 지사의 언급이다. 그 자체만으로는 참으로 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원 지사의 발언에 굳이 밑줄들이 쳐진 이유를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원 지사의 주장은 모두 가정들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가정은 추 장관의 입장문이 최 의원과 합작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정과 가정의 반복은 자신의 SNS에 입장문을 올린 것에 불과한 최 의원의 행위를 검찰 사유화와 국정농단이라는 무시무시한 범죄로 증폭시킨다. 이 비약으로 성립된 주장은 급기야 원지사의 ‘전가의 보도’인 기-승-전-“남자박근혜” 프레임으로 이어진다.
 
“최순실은 숨어서라도 했지만 이들은 드러내놓고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도 대통령이 사실을 부인하고 은폐하려다 탄핵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문 대통령은 깨달아야 한다.”
 

한낱 청와대 비서관 출신에 불과한 최의원은 ‘남자 최순실’임이 확실하다. 그것의 분명한 증거가 바로 최의원의 SNS이다. 따라서 ‘남자박근혜’인 문재인 대통령은 탄핵돼야 한다. 이것이 원지사가 가장 전달하고 싶은 심중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가정 위에 서있는 주장은 단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럴듯한 단서가 있더라도 가정만으로 얘기한다면 무엇인들 말하지 못할까.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 어려웠을까. 요즘 들어 원희룡 지사가 일주일에 2~3일 도외 출장이 잦다. 뿐만 아니라 지자체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중앙정치에 대한 발언 또한 잦다. / 출처=원희룡 지사 페이스북.

MB 아바타

“원희룡 지사가 무관용 원칙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사고로 물의를 빚은 김태엽 전 도지사 비서실장에 대한 서귀포시장 임명을 강행했다. 이렇게 무리한 인사가 앞서 대권출사표를 던진 바 있는 원지사의 대선 전략의 포석을 깔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도정을 사유, 사익 화하는 파렴치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원지사가 차기대통령이 된다면 민의를 외면하고 사익만을 추구하는데 골몰했던 MB정부의 재판(再版)이 될 소지를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 이번 인사일 것이다.”
 
이렇게 쓰면 마찬가지로 ‘쓰레기’ 글이 될 것이다. 원지사가 확인 없는 확정적인 발언을 한 대표적 사례는 지난 해 조국 사태 때일 것이다. 정치검찰이 슬쩍 흘려준 미확인 정보를 언론들이 수백만 개의 ‘쓰레기’ 기사들로 뱉어내며 국정을 혼란에 빠뜨렸던 마녀사냥의 광기(狂氣)에서 단연 선봉에 선 것은 원 지사였다. 압권은 “친구 조국아, 이제 그만하자”는 원지사의 촌철살인이었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동기다. 정말 친구라면 조용히 만나서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고 진심어린 조언을 하는 게 순서일 터. 친구라고 하면서 소문만으로 사실로 단정해서 친구의 등 뒤에서 동네방네 떠들어 대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태극기부대의 총아
 
사모펀드, 입시비리, 그리고 표창장 위조로 요약되는 조국 가족의 비리 의혹은 현재 막바지에 달한 관련 재판들에서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증거부족으로 공소유지조차 버거워 보일 정도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견해다. 이런 “생사람”을 잡는 마녀사냥 블랙코미디에서 원지사의 확증편향이 한 몫을 톡톡히 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원지사가 무죄추정을 철칙으로 여겨야 할 법조인이며, 또한 처신에 진중해야 할 고위공직자임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말로 유력한 대권주자로 뜨기 위해선 입이 아니라 내세울만한 ‘원희룡 표’ 도정을 보여줘야 한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과 고인이 된 박원순 시장의 그린뉴딜이 있는 반면, “원 지사”하면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무리 해도 머리가 둔한 필자에게는 원지사가 반대여론에도 비자림로의 장대한 수목들을 싹둑 베어내고 아늑한 숲길을 ‘단거리’ 고속도로로 만든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원지사의 요즘 과장된 언사는 도정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을 대신 막말로 때우는 격이다. 하지만 광화문 촛불광장에서 일장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태극기부대의 지지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보수의 짬밥과 친구의 진심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대권에 성공하는 비법은 물론 필자도 알 턱이 없다. 그러나 하고많은 보수정치인들 중 원 지사를 특별히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창의적인 모습을 기대하리라는 추정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보수 정치인으로서의 “짬밥”이 늘어날수록 원 지사의 초심이었을 진정성이 사라진다는 일각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는 큰 용기가 따른다. 그 시작은 억울하게 가족 전체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당한 조국 교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닐까.

“친구야, 정말 미안하다”

가장 완전한 사과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기에... / 김헌범 논설위원,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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