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유력한 간접정황 고유정 PC사용 시간 ‘오류’...실체적 진실 밝히지 못해 ‘의혹만’

“검찰이 유력한 간접증거로 제시한 고유정의 컴퓨터 사용 시간은 경찰 분석관이 법정에서 잘못됐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를 법정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검찰이 스모킹건이라며 제시한 디지털 분석물을 경찰 스스로 부인하는 황당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를 기대한 재판부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찰과 검찰 모두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지 못하면서 부모와 한 집에서 잠을 자다 숨진 여섯 살배기의 한 맺힌 죽음은 또 하나의 치욕이 될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살인 및 사체손괴, 은닉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고유정의 항소심에서 검찰과 변호인의 항소를 14일 모두 기각했다.

고유정은 전 남편 강모(38)씨에 대한 범행에 대해서는 우발적 사건을 내세웠지만 살인과 사체손괴, 사체은닉 혐의는 모두 인정했다. 반면 의붓아들 살인죄는 혐의 자체를 부인해 왔다.

제주에서 생활하던 의붓아들은 2019년 2월28일 아빠인 홍모(39)씨와 청주집으로 향했다. 3월1일 어린이집 예비소집 참석후 단둘이 잠에 들었지만 이튿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질식사라는 전문의 소견이 나왔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청주 상당경찰서는 홍씨를 가해자로 의심하고 조사를 벌였다. 고유정은 한참후인 그해 5월2일에야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 사이 제주에서 고유정의 전 남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상당경찰서는 그 이후인 2019년 6월3일 홍씨를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 열흘 뒤에는 과실치사로 혐의를 다시 바꿨다.

홍씨는 청주 경찰의 수사에 의문을 품고 그해 6월13일 직접 고유정을 살인 혐의로 제주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제주지검은 전 남편 살인의 공소사실을 유지하며 기존 재판에 집중했다.

의붓아들 수사를 이어가던 상당경찰서는 범행 후 7개월이 지난 2019년 9월30일 고유정에 살인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다. 홍씨의 과실치사 혐의는 ‘증거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청주지방검찰청은 2019년 10월21일 사건을 제주지검으로 재차 넘겼다. 결국 제주지검은 11월7일 의붓아들 살인 혐의로 고유정을 추가 기소하고 사건 병합을 요청했다.

의붓아들 살인 재판의 쟁점은 간접증거였다. 당시 범행 현장에서 아이와 함께 있었던 사람은 고유정과 홍씨 둘 뿐이었다. 고유정은 감기 기운을 이유로 홀로 다른 방에서 잠을 청했다.

검찰은 사건 당일인 2019년 3월2일 오전 4~6시 사이 고유정이 잠에서 깬 후 남편과 의붓아들이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피해자를 질식사 시켰다고 판단했다.

이를 입증할 핵심증거로 안방의 컴퓨터 사용 내역을 내세웠다. 고유정은 시종일관 자신은 방에서 잠을 자면서 밤사이 문 밖으로 나선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범행 추정시간 직전인 2019년 3월2일 오전 2시35분부터 1분간 고유정이 안방에 있던 데스크탑 컴퓨터를 이용해 제주~완도 배편 블로그에 접속한 기록이 있다며 맞섰다.

고유정이 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남편과 의붓아들이 자고 있는 방을 반드시 지나쳐야 한다. 당시 두 사람이 자고 있는 방의 출입문은 일부가 열려 있는 상태였다.

반면 법정에서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한 제주지방경찰청 소속 디지털분석관은 애초 상당경찰서에서 진행한 디지털포렌식 결과가 실제 날짜와 시간과는 차이가 있다고 진술했다.

제주 경찰에서 추가로 분석한 결과 2019년 3월2일 오전 2시35분은 고유정의 접속 시간이 아닌 블로그 운영자의 글 작성 시간이었다. 고유정의 실제 검색은 그해 5월16일 이뤄졌다.

의붓아들의 사망추정시간에 고유정이 깨어 있었다는 유력한 간접정황을 수사기관 스스로 뒤집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국 재판부는 정확한 사망시각 추정이 어렵고 디지털포렌식 결과의 증명력이 번복된 점 등에 비춰 검사가 제출한 간접증거만으로 고유정을 범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홍씨도 당시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평소 잠버릇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무언가에 눌려 직실사하는 포압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재판부가 이 같은 내용을 언급하자, 방청석에 있던 홍씨는 끝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재판 도중 법정에서 퇴정했다. 그 순간에도 고유정은 방청석에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의붓아들 살인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확인되지 않으면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생을 마감한 여섯 살배기의 죽음은 갖은 의문만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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