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원희룡 지사 ‘알쏭달쏭’ 유체이탈 화법, 진의는? 

14일 오전 민선 7기 후반기 도정 출범 이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제주의소리
지난 14일 오전 민선 7기 후반기 도정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달변(達辯)과 다변(多辯)에 대해 칼럼(“‘미래통합당 최고위원’ 원희룡 지사”, 2020.2.18)을 쓴 적이 있다. 정치인이 달변을 좇다가 그만 다변으로 흘렀을 때 도사리는 위험을 경계하자는 내용이었다. 원 지사가 달변이라거나, 달변을 추구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원 지사도 다변이 문제라고 나름 진단했다. 

엄격히 구분해야 할 점이 있다. 다변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 많음’이다. 이를 원 지사에 빗대 내 식대로 풀어보면, 원 지사는 말이 많은 게 아니다. 그냥 다변이라고만 해버리면 온갖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아니다. 원 지사는 비교적 많은 말을 한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정치인에게 말은 무기와도 같다. 말로써 승부를 걸기 때문이다. SNS 상의 글도, 실은 말을 문자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정치인에게 입을 닫으라는 건 정계를 떠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절제에 있다. 이른바 여백의 미덕이다. 때론 말을 줄여야 한다. 원 지사는 많은 말을 하다보니 뒷수습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했다. “도민만 바라보겠다” “도정에 전념하겠다”가 대표적이다. 한 두 번이면 말을 않겠다.

무언가에 쫓기듯 휴가를 떠난 뒤 눈꺼풀 시술을 받고 돌아온 원 지사가 또 많은 말을 했다가 화를 불렀다. 지난 14일, 민선7기 후반기 첫 기자간담회에서였다. 

이미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원 지사는 이날도 대권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잦은 서울 출장 등으로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비판을 받던 터였다. 거취와 관련, 머지않아 모종의 결단을 하는게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는 상황. 이를 의식한 듯 원 지사는 당내 경선까지는 지사직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현안이 산적한 도백의 후반기 첫 공식 일성으로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나, 야권 잠룡으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였다.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은 다음에 나왔다.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김태엽 서귀포시장 임명에 관한 입장을 밝히면서 알쏭달쏭한 말을 늘어놓았다. 기자들도 뭔 말을 하려는 건지 헷갈려 했다고 한다. 

“(청문회는)행정시장이든 기관장이든 포부 내지는 준비를 제대로 하도록 하는데 1차적인 의미가 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지적되면 어떻게 판단할지 숙고하는 시간을 갖자는 의미다”

“청문회가 어떤 효력을 가질지, 어떤 내용으로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해 제도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숙고의 시간’도 어폐가 있다. 김 시장 청문회는 6월29일 열렸다. 임명은 이틀 뒤에 이뤄졌다. 전격적이다. 김정학 제주도개발공사 사장은, 주말·휴일이 끼었다고는 하나 임명까지 나흘이 걸렸다. 당시 청문회는 밋밋하다고 느껴질 만큼 이렇다할 쟁점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적격-부적격 의견을 내는 게 청문회 취지와 맞는지 의문이다”

6년 전 자신의 제안으로 확대된 인사청문회를 없애자는 것인지 귀를 의심해야 했다.

원 지사는 특히 김 시장이 공무원들을 진두진휘할 ‘최적임자’라고까지 추켜세웠다. 임명의 당위성을 강조하려다 무리수를 두게 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김 시장 문제는 여론에서 완패한 사안이다. ‘우군’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청문회에선 음주운전 사고 뿐 아니라 각종 의혹이 불거졌다. 아니나다를까, 기자간담회 발언이 알려지자 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은 발끈했다. 즉각 성명을 내 원 지사가 무책임하고 비상식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며 스스로 자격상실 임을 입증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여론을 거스른 데 대해 깔끔하게 사과하고, 그래도 한번 지켜봐달라고만 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요즘 광폭행보를 보이는 원 지사가 문재인 정부를 저격하면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독선, 독재, 소통부재, 표리부동 등이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이 말들은 원 지사가 김 시장을 임명하던 날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 오만과 독선(제주주민자치연대), 인사 독단(도의회 민주당), 그들만의 독식(공무원노조 제주본부)….

원 지사는 지난 5월, 4.15총선 보수 참패 원인을 짚으면서 미래통합당 지도부의 ‘공감능력 부족’을 탓하기도 했다. 이 말을 원 지사에게 반사(反射)해봤다. 김 시장을 낙점하고 임명하기까지 누구와 소통했는지 의문이다. 

원 지사의 진짜 문제는 다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다변(多變)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원 지사는 간담회 이튿날 아침에도 여의도에 머물고 있었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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