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 수용...태아의 건강 손상을 업무상 재해 첫 인정정한

10년 전 제주의료원에서 불거진 간호사들의 집단 태아 건강손상 논란과 관련해 법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천적 질병을 가진 아이를 낳은 경우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부는 허모(39.여)씨 등 간호사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취소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의 취지를 받아들여 17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2009~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중심으로 집단유산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간호사 중 15명이 임신했지만 이중 5명이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2011년에도 간호사 12명이 소중한 생명을 품었지만 33%인 4명이 도중에 아이를 잃었다. 나머지 8명은 가까스로 출산 했지만 절반인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

특정 의료기관에서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지자, 2012년에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역학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간호사들의 유산과 업무상 연관관계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판단이 나왔다.

간호사들은 이를 근거로 2012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 및 휴업급여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태아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근로자의 질병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간호사 4명은 2014년 2월4일 산업재해를 인정해 달라며 서울중앙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의 쟁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근로자 본인이 아닌 몸 속 태아의 질병을 업무상 재해에 포함 시킬 수 있느냐 여부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0조(요양급여)에는 요양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한다며 ‘근로자’만을 명시하고 있다.

2014년 12월 열린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엄마와 태아를 단일체로 보고 태아의 법적 권리와 의무는 모체에게 귀속돼 산재적용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2016년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출산으로 어머니와 아이가 분리되는 만큼 선천적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으로 봐야 한다며 태아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모체와 분리해 해석했다.

올해 4월 열린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노동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며 원심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1항에서 ‘업무상 재해’는 업무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이나 질병, 장해 또는 사망으로 정의하고 있다. 태아의 건강 손상을 업무상 재해로 처음 인정한 것이다.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의 판단을 수용하면서 2009년 집단 유산 사건 11년만에 태아 산재 논란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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