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극작가협회 전국 순회 첫 순서로 제주...지역 연극인 열악한 현실 성토

28일 한국극작가협회는 제주 간담회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28일 한국극작가협회는 제주 간담회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희곡을 쓰는 작가도, 희곡을 읽고 쓰고 싶은 지망생도, 극작가의 글을 무대에 올리는 극단도, 극단의 공연을 보는 관객도 사라져가는 제주 연극계의 척박한 현실을 공유하는 자리가 열렸다.

한국극작가협회(이사장 선욱현, 이하 극작가협회)는 28일 오후 7시 소극장 예술공간 오이에서 제주 지역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자리는 올해 취임한 선욱현 이사장이 기획한 전국 순회 방문의 첫 번째 일정이다. 극작가협회는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는 예술단체다. 현재 전국 200여명이 회원으로 속해 있다. 극작가협회가 제주를 공식 방문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진다.

간담회에는 제주의 원로 극작가 장일홍, 강용준을 비롯해 예술공간 오이, 이어도, 세이레, 그녀들의AM, 파노가리 같은 제주 극단 관계자들과 배우 신혜정·현애란, 그리고 극작에 관심을 가진 도민들도 개별적으로 참여하면서 내부 자리를 꽉 채울 만큼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각자 소개에 이어 참가자들은 극작가, 연극인, 혹은 극작가 지망생으로서 바라보는 지역 연극계 현실을 솔직 담백하게 나눴다. 그러면서 소모임이라도 희곡을 읽고 연극을 관람하면서 평가를 나누는 ‘작은 치열함’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았다.

장일홍 작가는 “연극과 희곡은 동전의 양면이다. 희곡이 잘되면 연극도 잘되고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제주 연극계는 여러모로 열악하다. 극작에 기준을 맞추면, 내가 희곡을 써도 공연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니 연극·문학 중에 문학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일단 모이자. 한 극단이 주최해도 좋고, 극단끼리 연대해도 좋고, 제주연극협회가 중심이어도 좋다. 희곡 읽기 모임과 낭독 공연이 잘 이뤄지면 자연스레 쓰기 활동으로 이어진다. 전문가 조언이 필요하다면 극작 워크숍도 열릴 수 있다. 더불어 연극상이 제주에서 만들어진다면 제주 연극인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용준 작가는 보다 직설적으로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는 “요즘 제주 극단들을 보면 한심스럽다. 기초도 쌓지 않고 극단이라고 그냥 작품을 올리는 경우를 보면, 관객 입장에서 제주 연극이 아직도 멀었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설사 극단 대표라도 기본을 갖추고 글을 써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며 “연극 연출 같은 경우에도 많은 고전을 읽고 해석해야 만 제대로 된 연출의 기본을 갖출 수 있다. 치열한 비평을 두려워하지 말고 서로 합평회를 거쳐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 그런 정기적인 모임이 있다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제주에서 치열하게 희곡과 연극을 공부하는 모임이든 자리가 없어 아쉽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극단마다 스펙트럼(spectrum)이 작아서 한계가 뚜렷하고, 신생 극단의 경우 주제에 맞는 대본 선택을 하는데도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극작에 관심이 있어 함께한 일반 참가자들은 "극작 분야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제주에서는 찾기 어렵다"는 아쉬움과 함께, "온라인과 SNS 시대에 맞는 커뮤니티 공간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주기도 했다.

이 같은 의견에 선욱현 이사장은 “이날 제주 연극인들이 보여준 관심이 생각보다 높아서 깜짝 놀랐다. 제주 연극 발전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번 모임을 계기로 제주에서 한 편이라도 희곡을 발표한 극작가 명단을 협회 차원에서 꾸준히 관리하겠다. 이런 열정이라면 몇 년 안에 극작가협회 제주지회 창설도 가능하리라 기대를 걸어본다”고 밝혔다.

선욱현 이사장. ⓒ제주의소리
선욱현 이사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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