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多] (44) 1990년 마을 경계지에 청사 반-반 건설...90년간 김녕리도 동-서로 나눠져

[소리多]는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소통을 위해 글도 딱딱하지 않은 대화 형식의 입말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제주의소리]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질문을 남기시면 정성껏 취재해 궁금증을 해소해 드리겠습니다. 올 한해도 [소리多]가 연중 기획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편집자 주]

최근 제주 서부지역인 애월과 한림읍에서 읍사무소 청사 신축 공사가 한창입니다. 애월읍사무소는 공사비만 150억원에 달합니다. 한림읍사무소도 116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제주시는 일도2동과 이호동, 연동에도 청사 신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서귀포시도 중앙동, 예래동에도 신청사 건설을 준비 중이죠. 전체 사업비만 1000억원이 훌쩍 넘어갑니다.

읍·면사무소는 행정의 기능적인 역할을 넘어 마을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구좌읍사무소는 2개 마을 사이에 들어선 이른바 ‘반-반’ 건물로 남모를 사연을 품고 있죠.

문헌에 따르면 구좌읍의 촌락 형성은 고려 25대 왕인 충렬왕(1274~1308) 시절입니다. 고려는 제주를 동도와 서도로 구분했습니다. 동도에서 눈에 띄는 공동체가 바로 김녕촌이었습니다.

조선시대 태종16년(1416) 김녕촌은 제주목에 속했습니다. 광해군 원년(1609)에 동서방리(東西坊里)가 설치되면서 제주목은 다시 좌면(左面)과 중면(中面), 우면(右面)으로 나눠졌습니다.

김녕촌은 제주의 오른쪽에 있지만 정작 우면이 아닌 좌면으로 불렸습니다. 육지에서 배를 타며 제주로 올 때 왼쪽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그들만의 눈높이에서 정해진 이름이었죠.

고종 11년(1874) 이밀희 제주목사 시절 좌면은 다시 구좌면(舊左面)과 신좌면(新左面)으로 갈라집니다. 구좌면은 지금은 김녕과 세화리, 신좌면은 신촌리와 함덕리 일대입니다.

1960년대 세화리에 위치한 구좌면사무소의 모습. [사진출처-구좌읍지]
1960년대 세화리에 위치한 구좌면사무소의 모습. [사진출처-구좌읍지]

일본이 1915년 제주에서 도제(島制)를 실시하면서 지금이 구좌면이 생겨났습니다. 애월리는 애월면, 남원리는 남원면, 성산리는 성산면 등 면 소재지 마을명에 따라 면의 이름을 정했습니다.

구좌읍지에 따르면 당시 구좌면사무소는 현 평대초등학교 동측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구좌는 면 소재지인 평대리의 평대면이 아닌 나홀로 구좌면이 됐습니다.

김녕리와 세화리 주민들이 평대리의 명칭 사용을 두고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죠. 다른 지역과 달리 읍 이름(구좌읍)에 리(구좌리)가 없는 역사적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1948년 제주4.3사건이 발발하면서 평대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불에 탑니다. 결국 구좌면은 면사무소를 일시적으로 세화리에 옮기게 됩니다.

이에 평대리가 강력 반발합니다. 평대 주민들이 사무소 원상복귀를 요구하자, 이번에는 김녕리와 세화리가 문제를 제기합니다. 결국 면사무소 위치 선정을 위한 면민대회까지 열리죠.

격론 끝에 세화리가 면사무소를 품게 됩니다. 위치는 현 구좌파출소 동측 한의원 자리입니다. 그러던 중 1990년 구좌면이 구좌읍으로 승격하면서 또 다시 소재지 논란이 벌어집니다.

신청사 유치를 두고 마을끼리 재차 갈등이 빚어지자, 당시 북제주군과 구좌읍은 마을주민과 협의를 거쳐 묘수를 찾아냅니다. 그 결과가 바로 ‘반-반’입니다.

구좌읍의 지적도를 보면 현재 읍사무소의 현관을 기준으로 동쪽은 세화리 1561-7번지, 서쪽은 평대리 162-3번지입니다. 읍사무소를 세화리와 평대리 마을 경계지에 지었기 때문이죠.

읍사무소 부지를 방문하면 정문과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물까지 정확히 절반이 세화리와 평대리로 나눠져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읍장실은 2층 동측의 세화리, 부읍장실은 1층 서측의 평대리에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려면 한 건물 안에서 평대리와 세화리를 오가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죠.

구좌읍은 마을 안길을 사이에 두고 90년간 갈등 속에 살아온 아픔이 있습니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하면서 일제에 의해 김녕리는 동김녕과 서김녕으로 갈라졌습니다.

두 마을은 1998년 12월 김녕리 종합복지회관 건립을 두고 대통합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듬해 마을통합준비특별위원회에서 주민투표까지 진행해 2000년 1월 통합 김녕리가 출범했죠.

준공후 30년이 지난 구좌읍사무소도 언젠가는 신청사를 짓게 되겠죠. 20년 전 김녕리의 대통합을 교훈 삼아 구좌읍 주민들의 화합과 저력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니다.

1964년 세화리에 위치한 구좌면사무소의 모습.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1964년 세화리에 위치한 구좌면사무소의 모습.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