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1) 제주시 애월읍 주제넘은 서점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옛 이름은 알더럭으로 고려 시대부터 화전민이 모여 살던 곳이다. 주민 대부분의 주 소득원은 감귤 농사지만, 양배추·수박 등의 채소류를 경작하는 주민들도 적잖다. 다시 말하면, 마을에 있던 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였을 정도로 시골이란 뜻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손 놓고 바라보지 않았다. 기어코 학교를 살려냈다. 그런가 하면,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약 1만㎡ 면적의 연화못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연화못이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건 마을 주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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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소득원의 일부인 수박이 끝물을 맞이하여 뒹굴고 있다. ⓒ제주의소리

언제부턴가, 이곳에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삶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여드는 사람 중,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부부가 있었다. 하가리 연화못 앞,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를 자리에 앙증맞기 짝이 없는 서점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거기, 그 서점을 운영하는 김문규‧김용숙 씨 부부다. 

이름도 발칙하기 짝이 없는 ‘주제넘은 서점’. 주제라는 게 ‘그’ 주제인지 ‘이’ 주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점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주제가 아니라 ‘이’ 주제라는 것을. 하지만 책방지기 김문규 씨의 말을 들어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주제넘다는 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주제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제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와 ‘이’는 물론이요, ‘주제넘은’ 이 속에는 제주란 의미까지 숨어 있다. 

유독 길게 이어지는 장마의 틈바구니를 타고 주제넘은 서점을 찾아가는 길, 비가 스콜성 소나기처럼 쏟아지다가 멈추기를 번복한다. 당연히 손님이 없을 거라 여겼다. 연화못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찻길을 건넜다. 유리문 너머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으레 김문규⸳김용숙 씨 부부일 거라고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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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과 길 사이 겹담 위로 마편초, 로즈마리, 가자니아 등이 자라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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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벽으로 비치는 주제넘은 서점 내부. ⓒ제주의소리

대문도 없는 집, 들어서면서 겹담을 끼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폭우도 나름 즐길만하다는 듯 의자들이 여유롭게 놓여 있다. 비만 아니라면, 그 의자에 앉고 싶다. 앉아서 연화못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독서가 되고 힐링이 될 것 같다. 

입간판이 고스란히 비를 맞으면서도 날 보고 반갑단다. 인사도 나눌 겸, 눈에도 담을 겸, 유리 벽으로 책방 내부를 바라보며 셔터를 눌렀다. 물결은 바다를 뜻하고, 그 위를 나는 갈매기 형상은 펼쳐 놓은 책도 된다. 

문을 열었다. 손님이 없을 거란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길에서 보았을 때 유리에 비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손님이었다. 대구에서 여행 온 네 명의 일가족과 도민인지 여행객인지 모를 한 분이 11㎡의 책방 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손가락 한 번 까딱하고 주문만 하면 집으로 고스란히 배달해주는 온라인 서점이 있음에도 굳이 이곳까지 찾았다는 건, 그만큼 책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도민인지 여행객인지 모를 손님은 아침 여덟 시에 맞춰 부랴부랴 달려왔다고 했다. 대구에서 왔다는 여행객의 손에도 막 구매한 듯 대여섯 권의 책이 들려 있다. 그들의 자녀인 초등학생 남매는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 일어설 줄 몰랐다. 종일이라도 일어서지 않을 것 같았던 손님들이 떠나고, 다행히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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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뚫고 책방을 찾은 여행객. 왼쪽이 책방지기 김문규 씨다. 안쪽에는 도민
인지 여행객인지 모를 손님이며 바깥쪽이 대구에서 온 여행객 부부다. 그들의 자녀인 초등학생 두 명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제주의소리

“삶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뭍에서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김문규⸳김용숙 씨 부부가 제주에 내려온 지는 15년, 하지만 제주에서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파트, 도시 생활, 그리고 대형마트…치열함은 여전했다. 육지에서 생활할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목원이나 오름, 가까운 바닷가 등 지역이 주는 자연의 혜택을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소한 혜택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살아야 하는, 마지못한 삶을 몸에서 마음에서 거부했던 까닭이다. 어쩌면, 내면 저 깊숙이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우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는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이 문제라는 걸 부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시간에 대하여 고민하였다. 결론은,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번 주어진 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부부는 내부에서, 외부에서, 그 질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당장 TV를 버렸다. 

그 효과는 엄청났다. TV를 버렸을 뿐인데 시간이 따라왔다. 그 벌어들인 시간 속으로 책과 함께, 집 나간 탕아가 돌아오듯 이야기들이 어슬렁어슬렁 기어들어 왔다. 부부는 만면에 화색을 띠고, 두 팔 벌려 들어오는 시간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환경 속에서 가족이 읽어내는 책의 분량은 엄청났다. 어느새 5,000권을 넘어선 것이다. 더는 책을 수용할 공간이 없다. 이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움직이는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부부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부는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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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과 2층을 채우는 김문규 씨 집 5,000여 권의 책들, 판매용이 아니다. 계속 늘어나는 책들로 1년에 한 번씩 500여 권 정도는 기증 등의 방법으로 서재를 비우고 다른 책들로 교체된다. ⓒ제주의소리

“집을 지었습니다.”

부부의 프로젝트 실행 첫 단계는 집을 짓는 것이었다. 집을 짓는데도 가족 구성원 각자의 바람을 반영했다. 저마다의 요구사항 중, 단독 서재와 정원, 그리고 넓은 주방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공통 요구사항이었다. 우여곡절이야 없었을까마는, 그래도 무리 없이 원하던 집을 지었다. 부부의 프로젝트 추진 첫 번째는 성공한 셈이었다. 그 성공은 다음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부부는 열린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듯 다음 단계로 발을 디뎠다. 

“가드닝 플라워도 빼놓을 수 없었죠.”

두 번째로, 부부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바람을 담아 집에 어울리는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꽃이 주는 정서를 이웃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으로 내면을 채우고, 그를 뒷받침해 줄 서정 또한 필요했던 까닭일 것이다. 계절 따라 각기 다른 꽃들이 다른 표정으로 다가와 건네는 언어를 마주한다는 것, 꿈이 없는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언어를 해독하는 즐거움 또한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자칫 잡초로 뒤덮이기 쉬운 잔디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굳이 꽃을 심지 않더라도, 연화못을 비롯한 주변 환경은 덤으로 얻는 옵션이기도 했다. 이렇게 부부의 프로젝트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마을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는, 망설이기보다 가까이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일이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 달리기였다. 달리다 보니 변화가 생겼다. 그곳에 살면서도 지금까지 길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사람들, 이들이 김문규 씨가 달리는 걸 보며 길이라고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3Km, 5Km, 이렇게 달리기 시작한 것이 이젠 마라톤 풀코스의 거리를 달리게 되었다. 길이 아니라고 여겼던 곳에 길이 있었다. 그렇게 발견된 길과 함께 김문규 씨는 물론 그의 인생도 마라톤 코스에 뛰어들었다. 

“이제 책방입니다.”

집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김문규 씨는 가족에게 이해를 구하고 별도의 작업실을 부탁하였다. 그렇게 태어난 작업실은 김문규 씨 Lifework의 시작이 되었다. 

현재 책방지기 김문규⸳김용숙 씨 부부는 신제주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학원은 부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집짓기 프로젝트는 ‘하고 싶은 일’로 가는 길이다. ‘하고 싶은일’에는 책방을 하겠다는 꿈이 들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했던가. 2020년이 시작되며 불청객 코로나19가 엄습해왔다. 워낙 그 기세가 거셌던지라 학원도 잠시 휴강해야 했다. 하지만 휴강이란 시간을 눈앞에서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그 시간을 붙잡고, 김문규⸳김용숙 씨 부부는 오래도록 꿈꾸던 책방을 열었다. 집을 지을 때 이미 마련해 둔 작업실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코로나19가 김문규⸳김용숙 씨 부부에게 꿈을 이루는 길로 이끌어 준 셈이다. 시간은 언제나 움직이는 자의 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책방, 대형매장도 도시도 아닌 곳에서 책방지기가 된 김문규 씨는 자신만의 전략을 펼쳐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첫 번째 전략이 주제별 판매다. 주제 선택에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인생 이모작을 꿈꾸며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주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오픈했을 당시 주제는 ‘변신’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지금 여름의 주제는 ‘시간은 흐른다.’이다. 

경제적인 걸 떠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가 부부에게 인생 이모작의 씨앗을 파종할 수 있는 모판을 만들어 주었다. 부부는 그 모판에 마음을 다해 인생 이모작의 씨앗을 파종했다. 

두 번째 전략은, 가능한 판매하는 책을 모두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고객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보는 앞에서도 책방지기와 고객과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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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의 책방 주제,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제주의소리

세 번째 전략은, 주제넘은 서점을 찾는 고객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새벽 혹은 책방에 손님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하루에 네 시간 정도 책을 읽는다는 책방지기 김문규 씨. 그가 읽는 독서량은 엄청나다. 일 년에 무려 500여 권의 책을 읽는다. 그래서 그런지 내공도 깊었다. 그 깊은 내공으로 책방지기가 고객에게 읽어주는 책의 맛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저 폐부 깊숙이에서 정제된 목소리로 올라오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야말로 심연(深淵)에 빠진 기분이다. 쉽게 헤어날 수가 없다. 참으로 심술궂은 책방지기다. 선하디선한 얼굴로 책방지기는 기어이 고객을 울리고 만다. 

전략을 펼친다고 해서 판매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방지기 김문규 씨에겐 판매 전략이 전혀 없다. 판매가 목적이었다면, 베스트셀러로 책방을 채웠을 거라는 말이다. 즐거움을 따를 자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이라 그저 즐거울 뿐이다. 그 즐거운 모습이 좋아서인지 시간이 더할수록 책방을 찾는 이는 늘어간다. 

책방지기는, 주제별 판매가 대형서점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개인이 주제를 가지고 책을 선택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비록 책방 안에 있는 책의 분량은 적지만, 주제를 워낙 촘촘하게 배열해 놓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는 주제는 대형서점 못지않다고 했다. 아니 더 많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공동체 만들기죠.”

Lifework의 시작이 된 작업실은 김문규 씨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제주, 이곳에서 저 아메리카에 있는 포틀랜드처럼 ‘개성 있는 마을’을 만들 수는 없을까. 김문규 씨는 자기와 비슷한 생각,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다. 고민이 깊었던 만큼, 끝내 김문규 씨는 그런 사람들을 찾았다. 오랫동안 꿈을 버리지 않았기에, 움직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열린 책방을 찾는 사람들은 나이며 지역이며 층도 다양하다.

책방지기 김문규 씨에겐 독특한 습관이 있다. 그림책에서부터 동화며 소설이며 정보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주제별로 읽는 습관이다. 주제별 읽기가 훨씬 매력 있기 때문이다. 지금 책방 안에 흐르는 주제를 예로 들어 ‘시간이 흐른다.’라고 했을 때, 시간이 흐르는 것에 대해 김문규 씨는 고민한다. 작가는 왜 시간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등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생각지 못했던 곳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매력 있는 책 읽기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그럴까. 12시에 책방 문을 닫고, 오후에는 ‘해야 할 일’인 학원으로 출근해야 한다. 그런 번거로움이 있을 텐데도 고충은 없다며 환히 웃는다. ‘바쁘다, 바쁘다.’ 엄살 부릴만한데도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어려움이 있다면 차라리 안 했을 것이란다. 하고 싶은 일에 맞춰서 하는 것일 뿐, 무리하면 오래 못 간다고 말하는 책방지기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제넘은 서점 책방지기 김문규 씨 얼굴을 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알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책방지기의 얼굴이 한없이 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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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넘은 서점은 계절에 따라 주제를 정해 놓고 도서를 판매한다. 이번 여름 주제는 ‘시간은 흐른다.’이다. ⓒ제주의소리

“책방을 시작한 후 변화는 없었느냐고요?”

그동안 김문규 씨는 혼자 책을 읽었다. 하지만 책방을 열고부터는 혼자가 아니다. 책의 내용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생겼다. 김문규 씨가 주제에 맞춰 책을 선택하면, 이를 공유하고 주제에 대하여 생각을 나누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즉 이야기 창이 열렸다는 뜻이다. 같이 읽게 되자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상대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접점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 이웃의 변화는 느낄 수 없다.

또 다른 변화라면,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가까이에서는 주제넘은 서점을 모델로 삼아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고민도 하고,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등 각자가 가진 종목의 점주들끼리 모임을 갖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멀리 지방에서도 주제넘은 서점 인스타를 보고, 자신의 인생 이모작을 위한 모태로 삼기 위해 찾아온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뚜렷한 변화를 감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움직임만은 확실히 보인다는 것이다. 

일 년에 500여 권의 책을 읽고, 또 기증 등의 방법으로 서재의 책을 교체한다는 책방지기 김문규 씨. 그는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삶을 바꿀 거라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정작 책방을 찾는 손님에게 책을 읽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자녀에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읽다가 좋은 책이 있으면 그저 책상에 펼쳐 놓을 뿐이다. 읽고 안 읽고는 본인 선택의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는 있다. 밖으로는 고객이 늘고 있다. 안으로는 부모가 원하거나 권한 적이 없는데,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책을 소개하는 독서TV 유튜버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활동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나,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 딸 역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읽다 보면 쌓일 것이고, 쌓임은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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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은 떠나고, 이제 슬슬 마무리하고 본업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제주의소리

“주제넘은 서점에서는 무엇을 하느냐고요?”

김문규⸳김용숙 씨 부부가 하가리에서 서점을 하겠다는 꿈은 이미 십여 년 전 집짓기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구멍가게조차 보기 힘들었던 그 시절 하가리에서 서점을 하겠다는 꿈을 꾸다니, 책방의 이름만큼이나 발칙한 발상이다. 하지만 꿈을 꾸는 자는 남다르다. 시도조차 않고 포기할 수는 없다. 

돈은 좇아가는 게 아니라 좇아오게 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성공이라는 말은 시기상조이지만, 성공을 향한 부부의 비결은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고 함께 읽고 싶다는 게 목표다. 물론 독서 모임도 있지만, 그들 부부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그 발칙한 발상은 이뤄졌고, 인생 이모작의 소득을 향해 부부는 지금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중이다. 처음 하가리에서 김문규 씨가 달리기 시작한 3Km가 이제 인생 이모작 마라톤에 진입한 것이다. 본업과 책방, 반환점을 돌고 나면 책방은 본업이 되고 지금의 본업은 물러나 있을 것이다. 

책방지기 김문규 씨는 책꽂이에 책을 꽂아놓기보다는 펼쳐놓는 것을 좋아한다. 펼쳐놔야만 어떤 책이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고, 보여야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 또한 책방지기 김문규 씨의 습관이기도 하지만 고객을 향한 전략이기도 하다. 책도 읽게 하고 매출로도 올리고,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것이다.

책방을 오픈하고도 첫 판매는 며칠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그제야 ‘이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부부. 부부는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안 팔리면 우리가 읽으면 되지.’라는 위안을 방패로 삼았다. 그 소박한 방패가 여유를 만들었고, 그 여유는 부부가 시골 책방을 운영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부부는 지인에게 책을 팔지 않는다. 나 역시 한 권 사려고 했지만 끝내 돈을 받지 않았다. 억지로 조금이나마 던져주고 와야 했다. 

책방지기 부부가 운영하는 책방의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또 다른 나로 살아보는 것, 그렇게 변화하면서 함께하는 것이다. 둘째는 손님이 책방에 들어오기 전과 나갈 때 달라지는 것이다. 들어올 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다른 생각을 하며 나가게 되는 것이 목표다. 좋은 책은 읽기 전과 후가 다르다는 것이 책방지기의 신념이다. 실제로 오늘 서점에 왔던 손님들도 나갈 때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손님들은 책방을 나간 뒤 연화못을 한 바퀴 돌고는, 떠나기가 아쉬운 듯 한참을 책방 앞에서 서성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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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넘은 서점 내부, 손님이 없을 때 책방지기는 이곳에서 주로 책을 읽는다. ⓒ제주의소리

주제넘은 서점의 가장 큰 무기는,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지만 책방지기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책방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손님이 왔을 때 책방지기 김문규 씨는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손님의 감성 물꼬가 터졌다. 결국 손님은 울고 갔다. 책방에 들어올 때와 달리, 나갈 때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물론 주제별로 판매하다 보니 제약은 있다. 왔으나 그냥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부부는 판매에 연연하기보다 인스타를 통해 ‘책방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우선하고 있다. 이를 보고 삶을 바꾸고 싶다는 사람들이 주제넘은 서점을 찾는다. 경력단절 사람들의 모임이나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책의 힘보다는 책방지기의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부부는 주제넘은 서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주제가 여러 갈래로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분야가 어떻든 책은 결국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즉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책방지기가 책 읽기 전과 후가 다른 삶을 살도록 도움을 주는 책들로 구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감을 주는 책과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큐레이팅의 포인트라는 설명이다.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곳, 지금 바로 시작하도록 도와주는 곳이 바로 주제넘은 서점이다. 

시골의 작은 책방, 여행객만이 아닌 이웃의 가슴에도 주제넘은 서점의 책방지기가 추구하는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그 바람이 나비효과를 일으키면 지구 어디에선가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을 테니까. 

꿈은 꾸는 자의 몫이다. 하지만 꿈을 꾸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책방지기 김문규 씨는 조심스레 ‘부싯돌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들 부부의 소망이 유리 벽에 그려진 물결을 타고 넘실대기를 소망해본다. 더 나아가 물결 위 갈매기 날개에 실려 널리 널리 퍼지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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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진 자리, 지금은 연밥이 아물어가는 중이다. ⓒ제주의소리

서점을 나섰다.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린다. 그 비를 맞으며 연화지 풍경 앞에 섰다. 수도 없이 왔던 곳이지만 여느 해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휑하니 연못이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 연꽃이 몇 송이 없다. 긴 장마에 이어 날씨까지 춥다 보니 연꽃도 흉년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흉흉해진 2020년 상반기 모습을 연화못에서 보는 듯하다. 

연화못을 한 바퀴 돌았다. 어느새 나도 주제넘은 서점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동안 나는 무엇으로 살았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느닷없이 톨스토이가 떠오른다. 결국 톨스토이가 돌고 돌아 나에게 왔다는 뜻인가, 내가 돌고 돌아 톨스토이에게로 갔다는 뜻인가? 쿡,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이 또한 책방지기가 던져준 주제에서 뻗어 나온 연결고리이리라. 

쏟아지는 빗물을 또르르 굴릴 수 있는 저 연잎의 특성처럼, 꽃 진 자리에서 연밥이 아물 때까지 제 역할을 다하는 저 꽃술처럼, 그 어떤 폭우가 쏟아지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음은, 주제넘은 서점에 들어갈 때와 달리 내가 달라졌다는 뜻이리라. 

주제넘은 서점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낮12시에 문을 닫습니다. 함께하는 길은 인스타 @jujebooks, @jujecommunity, @jeju_runners입니다.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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