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에 갇힌 서귀포항](2) 제주 서귀포시민·행정·방문객, 서귀포항 울타리 철거 한목소리

대한민국 최남단 도시 항구인 제주 서귀포항은 대표적인 관광지로 도민을 비롯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입니다. 천지연 폭포를 병풍 삼아 새섬과 문섬을 바라볼 수 있던 서귀포항의 자연 그대로의 옛 풍경은 지금은 파란 철제 울타리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서귀포시민의 역사와 추억이 깃든 서귀포항이 치유와 문화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주의소리]가 현장 취재를 통해 연재합니다. 서귀포항을 살펴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자연 가치는 물론 시민과 동화되는 ‘문화적 공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기사 보강=오후 2시 48분]“어머니 모시고 자주 운동 차 걷는데 솔직히 말해서 감옥 같아요. 이렇게 막혀 있으니 새섬으로 저무는 노을도 보기 힘들고 심적으로도 답답하죠. (울타리가)어디를 보호하려는지도 모르겠어요. 울타리를 없애 아름다운 서귀포항 풍광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머니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서귀포시에서만 줄곧 26년을 살아온 주민 임모(49) 씨.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며 노인을 모시고 운동을 위해 서귀포항을 자주 찾는다는 그는 아름다워야 할 항구가 마치 시퍼런 쇠창살에 갇힌 감옥 같다고 했다.

이름에 담긴 뜻처럼 아름다운 항구가 공존하는 우리나라 최남단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도시 서귀포.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서귀포항은 창살에 갇힌 채 방치되고 있다. 서귀포시 자구리공원서부터 천지연폭포까지 S자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천혜의 환경을 지닌 서귀포항.

최근 울타리를 없애고 관광미항 서귀포항을 만들어달라는 지역 주민과 관광객, 행정의 목소리가 울타리 넘어 들려오고 있다. 서귀포항 포구에 앉아 노을 지는 새연교의 석양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이라면, 누구나 오고 싶은 서귀포시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서귀포시민의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서귀포항을 모두의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달라는 현장의 목소리를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이틀간 취재를 통해 담았다.

ⓒ제주의소리
울타리 넘어 가려진 채 일부만 보이는 새연교. 서귀포항을 걷는 많은 방문객은 답답한 시야를 통해 바다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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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항 안쪽 구석에는 어선 장비로 보이는 물건들과 부서진 울타리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 울타리는 넝쿨 식물이 휘감은 상태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보여준다. ⓒ제주의소리

서귀포항이 있는 송산동서 54년을 살아온 토박이 송산동마을회장 김영호(54) 씨는 마을을 넘어 서귀포시 발전을 위해서라도 울타리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예전부터 철거를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건 안 된다는 원론적인 답변뿐 이었다고 했다.

“마을회 차원에서도 몇 번 움직였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어요. 도에서는 보안시설이라며 방법을 찾기보단 원론적인 답변만 댔죠. 마을 주민 힘이 부족하다고 무시하는 건지 규모가 큰 단체를 의식하는 건지 답답한 노릇입니다. 서귀포항이 살아야 모두가 살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도지사 독대를 통해 서귀포항에 관심을 가져달라 말하기도 했다는 영호 씨. 군사 시설도 아닐뿐더러 보안시설로 철저히 통제가 이뤄지는 구역도 아닌데 없애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기자가 여러 차례 서귀포항 내부를 오갈 때도 출입을 막거나 금지하는 안내판은 없었다. 오히려 부서진 울타리와 각종 쓰레기가 구석에 방치돼 있었고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온 방문객들이 막 배에서 내리기도 했다. 더군다나 부두는 하역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단 주차장으로 쓰이는 듯했다.

영호 씨는 “서귀포항을 울타리로 가둬놓고 관광미항이라 말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고 되물으며 “울타리가 없었을 때는 낚시 배도 많이 오가고 어촌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민과 주민, 관광객이 상생할 수 있도록 울타리 문제를 도 차원서 해결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서귀포항 울타리를 따라 걷던 관광객 최지용(29, 서울) 씨도 “처음 와본 서귀포항인데 울타리가 왜 만들어져있는지 모르겠다. 딱히 출입을 통제하거나 보안이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다”며 “울타리가 없다면 가려진 철창 넘어 바다를 보며 기분 좋은 산책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서귀포항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37) 씨는 “식사하러 오는 관광객 중에도 바깥 풍경을 보고서 갑갑하다고 말하는 분이 꽤 있다”며 “옛날부터 철거를 바랐는데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울타리가 없으면 탁 트인 경치가 보일 텐데”라고 아쉬움을 속으로 삼켰다.

해지는 저녁 서귀포항서 바라본 새섬과 새연교. ⓒ제주의소리
해지는 저녁 서귀포항서 바라본 새섬과 새연교. ⓒ제주의소리
해가 거의 저물어갈 때쯤의 서귀포항은 새섬 위로 오른 달과 새연교 야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바다와 어선, 자연과 인공물이 하나 돼 어촌마을의 정서와 아름다운 풍광을 나타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해가 거의 저물어갈 때쯤의 서귀포항은 새섬 위로 오른 달과 새연교 야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바다와 어선, 자연과 인공물이 하나 돼 어촌마을의 정서와 아름다운 풍광을 나타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수차례 서귀포를 방문하면서도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던 서귀포항 내부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붉은빛이 스며드는 구름과 새파란 하늘이 조화를 이뤘고 해가 거의 넘어갈 무렵엔 달빛이 새섬위로 떠올라 서귀포항을 가득 채웠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 역시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는 탓에 들어가 볼 생각을 못 했던 것. 서귀포항 안에서는 새연교와 새섬의 정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왼쪽으로는 멀리 문섬과 항구를 오가는 배들을 바라보며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서귀포항 울타리 철거를 촉구하기 위해 모인 30여개 단체 중 오한숙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은 “자연환경 가치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지역 주민들 역시 서귀포항의 아름다움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다”며 “걷고 싶지 않다고만 생각했던 길을 바꿔보자는 의지가 모여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울타리가 없어 자유롭게 시민들이 오가며 그 공간서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정박 중인 어선 옆에서 원탁을 펼치고 회를 먹으며 새섬을 바라보는 상상을 해보면 한국의 나폴리를 실감할 수 있을 거예요. 또 밤 문화가 없는 서귀포가 특색을 가져 새롭게 거듭날 수 있겠죠.”

강원도 묵호항 방문 당시 항구로 배가 들어올 때 즉석에서 좌판을 설치하고 활어를 먹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는 오 이사장. 서귀포항 역시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시원한 바다와 더불어 새섬이 안정감을 가져다줘 오래 머무르기 좋다는 것.

물론 오 이사장은 상상했던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선 지역 갈등이 없도록 조심해서 시민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론화를 시켜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행정시인 서귀포시와 서귀포항 관리 주체인 제주도가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귀포항 울타리 철거 문제와 관련해 김태엽 서귀포시장은 [제주의소리]와의 면담을 통해 “지역 주민 요구사항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진 서귀포항이기 때문에 울타리를 철거해달라는 주민 의견을 제주도에 적극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일 수 있어 시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자칫 주민 간 갈등으로 번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면서 “도에서 추진하는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행정이라고 사업을 막무가내로 추진해선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조정 과정을 거쳐 조화롭게 헤쳐나가야 할 것”이라며 “서귀포시가 하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수시로 주민의견을 제주도에 전달하겠다”고 피력했다.

울타리를 바라보며 길을 걷는 행인. 운동 삼아 나온 듯 손수건을 손에 쥔 채 서귀포항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울타리를 바라보며 길을 걷는 행인. 운동 삼아 나온 듯 손수건을 손에 쥔 채 서귀포항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가로막힌 울타리 옆길을 걷는 두 행인. ⓒ제주의소리
가로막힌 울타리 옆길을 걷는 두 행인. 기자가 머문 동안에도 꽤 많은 사람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제주의소리

서귀포항서 어선주로 활동하며 식당을 운영 중인 염선삼(51) 씨는 7년여 전부터 계속된 요청에도 복지부동 상태인 행정의 답답함을 느끼고 자포자기 상태로 살고 있다며 인터뷰 내내 한숨을 내뱉었다.

염 씨는 “감옥처럼 만들어 두면 누가 머물고 싶겠나”라고 되물으며 “더군다나 동쪽(자구리공원)에 비해 현저히 낙후된 상태다. 사람들이 천혜의 환경을 못 보고 천지연만 들렀다 가는 상황이다”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집에 거대한 울타리를 설치해뒀다고 상상해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답답하겠나. 바다와 어선, 자연이 공존하는 서귀포항을 만든다면 관광상품으로도 가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귀포항이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공간이 돼버려 안타깝다며 울타리가 없다면 이렇게 좋은 곳이 있나 할 정도로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식당에 온 손님이 군부대처럼 돼 있는 서귀포항을 보고는 언제 문을 닫냐며 묻기도 했단다.

“울타리 철거는 어민과 일반 주민, 상인이 모두 상생할 방법이죠. 사람이 자주 찾는 서귀포항이 된다면 활기를 띠게 될 거예요. 그러면 수산물이 많이 팔려 어선도 바빠져 소득이 오르고 방문객들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맘껏 누리겠죠. (울타리가 있는)지금 상태는 서로가 손해 보는 구조입니다.”

울타리 철거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2016년 감사원 요구에 따른 보안 강화와 서귀포수협의 반대가 이유였다. 감사원은 무사증 입국자가 내륙으로 무단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주도에 요구한 바 있다. 

도 관계자에 따르면 서귀포수협의 경우 지난해 제주도에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서 시설물 관리와 관광객 안전사고 등 이유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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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항 안쪽서 바라본 새섬과 문섬. 항구를 오가는 배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주의소리

서귀포시의 주인인 지역주민부터 상인, 방문객, 행정까지 형태는 다르지만 아름다운 서귀포시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서귀포항의 문화적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라는 것.

천혜의 자연경관이 숨 쉬는 세계적 휴양 관광지 서귀포를 대표하는 서귀포항은 지방관리무역항으로 제주도가 관리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제주도가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세종실록에 ‘왜선이 숨어 정박하기 좋은 요해의 땅’이라며 천연 요새로 서술됐던 서귀포항은 1925년 서방파제가 축조됐고, 1958년에는 동방파제가 완공되면서 번듯한 항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1991년 무역항으로 지정되면서 흉물스러운 철제 울타리가 항구 주변을 빙 둘러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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