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에 갇힌 서귀포항](3) 울타리 없애도 가건물 ‘첩첩산중’…도, CCTV 등 활용 실태조사 나서

대한민국 최남단 도시 항구인 제주 서귀포항은 대표적인 관광지로 도민을 비롯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입니다. 천지연 폭포를 병풍 삼아 새섬과 문섬을 바라볼 수 있던 서귀포항의 자연 그대로의 옛 풍경은 지금은 파란 철제 울타리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서귀포시민의 역사와 추억이 깃든 서귀포항이 치유와 문화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주의소리]가 현장 취재를 통해 연재합니다. 서귀포항을 살펴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자연 가치는 물론 시민과 동화되는 ‘문화적 공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철제 울타리가 시야를 가려 반쪽짜리 경관으로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 서귀포항이 수두룩한 가설건축물로 인해 울타리가 철거되더라도 여전히 반쪽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서귀포항 안에는 서귀포수협과 서귀포해양경찰파출소 건물을 포함해 건축물대장에 등록된 일반건축물 6채와 가설건축물 약 8채가 있다. 가설건축물 대부분은 어민들이 사용하는 시설로 수협이 관리하고 있다.

문제는 흉측한 울타리를 걷어낸다 하더라도 서귀포항 안에 설치된 가건물이 여전히 경관을 가려버린다는 것이다. 가설건축물은 장거리 항해에 필요한 선수품 구입 직매장과 유류사업소, 해양 쓰레기 집하장, 선상 낚시 사무실 등이 있다.

ⓒ제주의소리
커다란 새연교 대부분을 가리는 가설건축물. 서귀포항 안에 설치된 가설건축물로 인해 시야가 대부분 가려진다. 울타리가 철거돼도 경관을 가린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까닭이다. ⓒ제주의소리
해양폐기물집하장(사진 오른쪽)을 비롯해 유류사업소, 서귀포수협 선수품 직매장 등 여러 가설건축물이 울타리를 따라 길게 들어서 있다. ⓒ제주의소리
해양폐기물집하장(사진 오른쪽)을 비롯해 유류사업소, 서귀포수협 선수품 직매장 등 여러 가설건축물이 울타리를 따라 길게 들어서 있다. ⓒ제주의소리

울타리를 따라 길게 늘어진 가건물은 해양경찰 건물에서부터 제1부두 입구까지 약 220m의 구간 중 절반 정도인 100여m를 차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가건물과 부두는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서귀포항 안 선상 낚시 관련 사무실 옆에는 언제 내놓은 지 모를 선박 물품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다른 쪽엔 전선과 폐타이어가 방치돼 있었다. 부두 가운데는 폐가전제품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나와 있었고, 서귀포수협 선수품 직매장 옆으로는 창고에 미처 들여놓지 못한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또 가설건축물 앞 부두에는 식당 손님과 스쿠버다이빙, 어선 관계자 등이 사용하는 많은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울타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차와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는 것. 부두 본연 기능이 뒷전으로 밀리고 주차장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서귀포항 인근에 제대로 된 주차공간이 없는 까닭이다.

그나마 가까이 마련돼 있는 서귀포수협 앞 노상주차장은 주차 가능 대수가 10대 남짓에 불과해 방문객 수요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천지연폭포 주차장은 도보로 약 12분, 800여m 떨어져 있어 사실상 서귀포항 방문객이 이용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서귀포항 인근서 횟집을 운영하는 염선삼(51) 씨는 “서귀포항 인근엔 주차장이 전혀 없다. 다른 곳은 시나 도 차원서 주차장을 만들어줘 활성화됐지 않느냐”고 되물으며 “낙후된 곳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여긴 제대로 된 주차장 하나 없어서 서귀포항 안에 주차하는 게 현실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새연교에서 바라본 서귀포항 문제의 구간. 부두를 차지한 것은 어민이나 관련 물품이 아닌 바로 주차된 차량 들이다. ⓒ제주의소리
새연교에서 바라본 서귀포항 문제의 구간. 부두를 차지한 것은 어민이나 관련 물품이 아닌 바로 주차된 차량 들이다. ⓒ제주의소리
서귀포항 안에 있는 어느 가건물 사무실 옆 쌓여있는 물품들. ⓒ제주의소리
서귀포항 안에 있는 어느 가건물 사무실 옆 쌓여있는 물품들. ⓒ제주의소리

서귀포항 울타리와 가건물에 대해 김미자 서귀포수산업협동조합장은 [제주의소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울타리 철거에 반대하지 않는다”라면서도 “하지만 가건물이 있는 상태에서 울타리만 철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건물들은 오랫동안 조업하는 배가 쌀이나 물 등 물품을 구입하고 기름을 채우는 공간이다. 어업인 생계를 위한 건물들이라 무작정 철거할 수 없다”며 “이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대책이 필요한데 철거만 이야기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김 조합장은 지난 5월29일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서귀포항 방문 당시 서귀포수협 이전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서귀포항이 무역항 성격보단 어항으로 많이 이용되니 제1, 2부두를 어항 부두로 지정해달라는 것.

그는 “위판장도 부족한 상황이라 어선주 사무실마저 가건물로 보냈다”며 “수차례 언론과 해수부를 통해 말하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제주도지사의 인가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었다. 도청과 도지사의 결단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배가 대형화되는 추세인데 무역항만 넓히고 어항 부두는 그대로 두는 것은 말이 안된다. 어항구를 늘려 미관상 깨끗하게 만들고 경관을 가리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천지연을 비롯한 서귀포 주요 관광지가 어판장을 지나가는데 손님들을 모시면 이 모습이 창피하기도 하다”고 속내를 밝혔다.

그러면서 “수협을 옮기거나 위생적인 위판장을 만들어 어민이 생계유지에 문제가 없고 관광객도 아름다운 서귀포항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라며 “새섬과 새연교가 깨끗하게 보이면 당연히 좋지만, 어업인과 조합원의 생계는 책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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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 가운데는 놓인 이유를 알 수 없는 폐가전기구와 잡동사니가 즐비해 있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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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항 안에 있는 어느 가건물 사무실 옆 쌓여있는 물품들. 오른쪽 아래 주차금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제주의소리

지난해 12월23일 열린 ‘제25차 서귀포시 경제와 관광 CEO포럼 및 송년의 밤’에서는 서귀포항 울타리 철거 관련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서귀포항을 개방해 관광 1번지로 만들자는 것.

포럼 직후 서귀포시는 제주도 해운항만과에 공문을 보내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서귀포수협은 △관광객 안전사고 노출 위험 △재산 관리 △시설물 관리 보안 등을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타리가 철거되지 못한 이유는 수협의 반대와 함께 1987년부터 해군이 사용했던 시설이 서귀포항에 있어 보안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직후 해군이 빠져나간 뒤엔 무역항이란 명분으로 울타리가 유지돼왔다. 

더불어 2016년 감사원이 발표한 ‘국민안전 위협요소 대응·관리 실태’에 따르면 제주 무사증 입국에 따른 선박 이용 내륙 무단입국자가 발생한다고 지적하며 감사원은 보안시설 운영 강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기자가 현장에 머무는 동안에도 출입을 제지하거나 보안이 필요해 보이는 시설은 안 보였다. 누구나 자유롭게 서귀포항을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인데도 보안과 안전을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시민들의 주장이 따르는 이유다.

제주도 해운항만과 서귀포항만관리부서 관계자는 [제주의소리]와의 전화를 통해 “현재 CCTV 등을 통해 서귀포항 유동인구실태를 조사 중이다. 찬성 측과 반대 측 입장을 고루 듣기 위해 자리도 마련할 계획”이라며 “이번 주까지 조사를 마치고 다음 주 중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답변했다.

서귀포항 제1, 2부두와 울타리 철거 문제에 대해서는 “철거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가건물이 가려져 사실상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따른다. 1, 2부두 사용도 힘들지만, 서귀포항 자체가 작아 다른 부두로 가건물을 옮겨도 문제는 여전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많은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행정이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선 상황에서 ‘노지문화’를 표방하며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서귀포시의 노력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선 제주도의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또 울타리 철거를 비롯해 서귀포항을 문화 공간으로 조성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지역민과 어민,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서귀포(西歸浦)라는 이름에 나타나듯 지역주민의 기억과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포구 서귀포항.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대한민국 최남단 관광도시 서귀포시의 명성에 걸맞게 지역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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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어가는 서귀포항의 전경. 조명을 켠 새연교가 눈에 잘 들어온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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