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다!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클리츠(Joseph E. Stiglitz)는 그의 책 ‘불평등의 대가’에서 필자가 보기에 재미있는 상상을 했다. “자본은 전혀 이동할 수 없고 노동력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각국은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려고 경쟁할 것이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적게 거두겠으며 좋은 학교, 좋은 환경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할 것이고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자본에게 높은 세금을 매겨서 거둔 수입으로 충당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자본과 노동의 이동 비대칭은 인건비가 적게 드는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여 ‘국내 고용 없는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세계화 시대의 기업들은 전 세계 수요자를 상대로 하기에, 예전처럼 국내 수요자의 유효수요에 신경 쓸 필요가 적어졌다.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은 늘어났으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조건과 근로 환경은 나빠졌다. 

이런 현상은 알고리즘과 데이터 기술의 발전에 의해 더 심화된다. 오늘날 플랫폼(Platform) 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계약직으로 사람을 채용한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를 띠는데, ‘긱(Gig)’이라는 말은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즉흥적으로 단기 연주자(gig)를 구한 데서 유래했다. 플랫폼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디지털 인프라 구조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알고리즘과 노동자는 연결된다. 

플랫폼 경제와 프레케리아트(Precariat)

플랫폼 경제에서 단기 계약직은 일상화된다. 플랫폼 경제에서 비정규직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 되었다. ‘독립계약자’, ‘프리랜서’라는 그럴싸한 명칭이 붙지만, 노동자로서의 처우를 보장받지 못한다. ‘독립계약자’는 건당 수입을 위해 알고리즘에 대응해야 하고, 업체가 매기는 평점을 관리해야 한다. 작업 위험도 본인이 부담한다. 
 
플랫폼에 사용되는 알고리즘 기술은 혁신으로 보이지만, 배달 노동자의 현실을 보면 플랫폼 경제의 불편한 이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플랫폼 알고리즘 기술은 노동 친화적이지 않다. 플랫폼 경제의 규모는 증가했지만, 배달 노동자의 수입과 처우는 나빠지고 있다. 식당은 높은 수수료 부담에도 ‘울며 겨자먹기’로 배달 앱을 이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가 초래한 언택드(Untact) 시대는 플랫폼 경제에 대로(大路)를 내주었다. 코로나19로 경제 전반은 침체되었지만 비대면 거래는 증가 일로에 있다. 그 직종은 음식 배달, 택배 배송, 가사 도우미 등 다양하다.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에까지 플랫폼은 확장하고 있다. 

편안한 프리랜서 일로 포장해 감성적인 구인광고를 내지만, 실제는 노동자의 지위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플랫폼 경제에서 노동자는 ‘프레케리아트’가 되었다. ‘프레케리아트(Precariat)’는 ‘위태롭다’는 뜻인 영어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Proletatiat)를 조합한 용어로, 오늘날 ‘불안정한 노동계층’을 뜻한다. 플랫폼 사업자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지만, 플랫폼 노동자의 입지는 점점 줄어든다. 플랫폼 사업자는 기업인수를 통해 덩치를 키우고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반면, 노동자는 개별적인 계약자로 뭉치기가 쉽지 않다. 

플랫폼 시스템은 정의로운가?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호모 데우스’라는 책에서 빅데이터 알고리즘 시대는 역사에 유래가 없는 불평등 사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필자는 그 전초적인 모습을 ‘플랫폼 경제’에서 발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랫폼 알고리즘은 수많은 정보를 연결하고 계속 업데이트되지만, 노동자는 보호받지 못한 채 알고리즘이 알려주는 대로 개별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플랫폼 노동자에게 (열약한 조건에서) 최소한의 돈을 벌게 하고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 기술을 소유하고 제공한다는 이유로) 상상하기 힘든 돈을 가져가는 플랫폼 시스템이 정의로울까? 언택트 시대, 비대면 시대에 플랫폼 경제가 성장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플랫폼 시스템으로 소상공인과 노동자를 몰아가는 게 과연 혁신일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플랫폼 경제가 기술 친화적일 뿐 아니라 노동 친화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기업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플랫폼 시스템에 견제구를 던져야 한다. 시장의 순기능에 반해서는 안 되지만, 시장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를 교정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시장경제의 모습일 것이다. 공정거래는 시장경제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플랫폼 경제의 불공정을 개선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내년 상반기까지 제정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플랫폼 기업이 거래상 지위를 활용해 소상공인에게 광고비를 과다하게 부과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무엇보다 플랫폼 노동자를 법의 사각지대에서 법의 보호망으로 이끌어야겠다. 사업체, 소상공인, 플랫폼 노동자가 상생할 수 있는 기본 틀이 형성되기를 바란다.

최근 진보 진영에 대한 우려의 시선들이 있다.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반성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수행한다 해도 말과 행동이 다르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이견이 있고 합의가 어려울 수 있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과 제도 개선에 한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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