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공론화 토론회 개최, 교육주체간 의견 엇갈려

정부의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 방침에 따라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모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교육주체 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제주시내권 과밀학급 문제 해결과 고교학점제 도입 준비를 위해 현재 읍면지역에 위치한 제주외고를 동(洞)지역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인문학 심화 고등교육 수요를 충족시켜온 기존 외국어고로서의 특징을 살려 외국어중점학교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제주도교육청과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위원장 박주용 제주도교육청 부교육감)는 6일 오후 2시 제주학생문화원 소극장에서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모형 공론화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6일 오후 2시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 주재로 제주학생문화원 소당강에서 열린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모형 공론화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
6일 오후 2시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 주재로 제주학생문화원 소당강에서 열린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모형 공론화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

이날 토론회는 2025년까지 일반고로 전환돼야 하는 제주외고의 모형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주시 동지역 평준화 일반고로 전환 및 이전 재배치 △현재의 위치에서 읍면 비평준화 일반고로 전환 등 선택지는 2개안으로 추려졌다.

강경식 전 제주도의원의 사회로 △김대영 제주대학교 교수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 △고창근 전 제주외고 교장 △정유훈 대정고 교사가 토론자로 나섰다.

◇ 김대영 교수 "고교학점제 도입 준비, 동지역 이전 바람직"

김대영 제주대 교수는 시내권 고등교육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음은 물론 고교학점제 도입과 맞물려 제주외고의 동지역 이전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폈다.

김대영 제주대학교 교수.
김대영 제주대학교 교수.

김 교수는 "기존의 고등학생들이 3년간 받아야 하는 과목은 총 34개로, 학생들의 선택권은 없었다. 2018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시범 도입되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과목 선택권을 갖고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정을 선택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라며 "학생의 선택에 따라 과학, 체육, 예술, 외국어 등 70~80개의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현재 제주외고의 특징은 중학교 때부터 이미 자신의 진로에 대해 확신에 찬 학생들이 선택했고, 진로에 맞게끔 학교가 교육과정을 제공해왔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고교학점제가 도입될 경우 진로교육에 있어 학교 간 차이가 줄어들 수 있다. 심지어 기존의 외고에서 사라진 과목도 개설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제주외고 이전 문제의 경우 고교학점제를 비롯해 고교 평준화의 문제, 과밀학급의 문제 등 기준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지역 학교로 이전해 신입생을 모집하면 당연히 모집할 수 있는 학생수가 늘어날 것이고, (시내권 일반고의)학급당 학생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얘기"라며 "그러나 지금처럼 읍면지역에 학교를 남겨둔다면 과밀화가 해소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김 교수는 최근 전교조 제주지부,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제주교육희망네트워크, 참교육제주학부모회 등 4개 단체가 도교육청 교육정책에 대해 제주도민 1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이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제주외고 이전 쟁점과 관련해 질문하니 가장 많은 답변자가 제주외고의 '동지역 이전이 바람직하다'고 선택했고, 두번째로는 '공립형 대안학교로의 전환', 세번째로 '현 위치 존치'가 꼽혔다"며 "각 대안이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김형훈 국장 "동지역 일반계고 수요 확대, 능사 아냐"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은 동지역 일반계고 진학에 열을 올리는 제주지역 특유의 풍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기존의 위치에 제주외고를 존치시키며 학교가 지닌 특수성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

김 국장은 "전문가의 입장이라기보다는 학부모·언론인의 입장으로 사안을 바라보게 됐다. 제가 내린 결론은 학부모의 욕심이 아닌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제주외고 부지에 제주만의 독특한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주도 학부모들은 일반계고 입시에 목을 매는 경향이 굉장히 높다. 취재차 방문했던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이러한 경향이 상당하다. 심지어 일반계고가 아닌 특성화고에 들어가면 죄인이 된 것처럼 취급을 당한다"며 "부모가 요구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는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조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동지역 일반계고 수요를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각 학교별 특성을 살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국장은 "학부모들은 동지역 일반고로 전환되는 것을 요구하겠지만, 거꾸로 말하면 읍면지역 일반고로, 특성화고로 보내기 싫다는 것이다. 특성화고도 나름의 특성을 살려 충분히 가치 있는 학교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제주시 동지역만 놓고 보면 (제주외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는)2025년 고등학교 신입생이 될 초등학교 5학년의 수가 4080명이다.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로 현재 중3보다 100~200명 정도 더 적다"며 "숫자상으로는 기존의 학교로도 충분히 수용이 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밖에도 김 국장은 동지역 이전시 부지 확보의 어려움을 지적했고, 기존 입지를 유지할 시 통학버스 등의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 고창근 전 교장 "고교서열화 주범 매도...일반고 전환 서둘러선 안돼"

제주외국어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고창근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은 교육당국이 일반고 전환 논의를 너무 서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창근 전 제주외국어고등학교 교장.
고창근 전 제주외국어고등학교 교장.

고 전 국장은 "전국의 외국어고등학교가 30개교다. 교육부는 이 학교들이 우리나라 고교 서열화의 주범이라고 낙인 찍었는데, 외국어고 교장을 지냈던 한 사람으로서 동의할 수 없다. 일부 외고·자사고·특목고 등이 고교서열화의 주범일 수는 있어도 제주외고는 이와 다르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꺼냈다.

고 전 국장은 "제주외고의 경우 대학입시 위주의 편법 운영을 하지 않았다. 타 지역 학교와 달리 최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이 대입을 위해 입학하는 것이 아닌 외국어가 좋아서, 외국어를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서 입학한 학생들이 대다수"라며 "이런 제주외고를 너무 획일적으로 몰고가 정부에서 발표하자마자 일반고 전환 작전을 펴는 것은 너무 이르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전국의 16개 외고가 정부의 일반고 전환 방침에 반발해 헌법소원까지 냈다.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일반고 전환을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뭐냐"며 "현재는 2015년 개정된 교육과정이 적용되고 있는데, 2022년도에 다시 교육과정과 대입계획이 발표된다. 적어도 2022년도까지는 기다리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존 외국어고의 학교명칭과 교육과정을 유지하는 방안, 현재 학교 위치를 유지해 동문들이 전통을 계승할 수 있는 방안, 제주특별법 상의 자율학교운영 특례를 활용해 외국어중점학교 등의 모형을 추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 정유훈 교사 "읍면지역 존치시 소규모학교 어려움 재현될 것"

현직 교사인 정유훈 대정고등학교 교사는 자신이 직접 겪고 있는 소규모 학교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털어놨다. 단순히 교사의 헌신과 열정에 기대는 학교가 아닌, 공고한 교육시스템이 구축되는 학교가 조성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정유훈 대정고등학교 교사.
정유훈 대정고등학교 교사.

정 교사는 "고교학점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데, 고등학교에서 고교학점제가 도입됐을 때 가장 크게 직면하는 문제는 규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방침에 가장 반발을 하고 있는 곳은 읍면지역·도서지역에 있는 학교들"이라며 "고교학점제가 안착하려면 다양한 교원이 확보돼야 하는데, 소규모 학교에서는 실질적으로 교원 확보에 문제가 생긴다"고 분석했다.

정 교사는 자신이 근무중인 대정고를 소개하며 "대정고는 전국적으로도 (모범 사례로)주목하고 있는 학교다. 마냥 잘해서라기 보다는 읍면지역 소규모 학교의 모델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에 주목받는 점도 있다"며 "현재 대정고 전교생은 270명으로, 제주외고와 비슷한 규모일 것인데, 그렇다면 저희가 겪게 될 어려움을 그대로 갖게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현재 대정고는 동일한 철학을 갖고 고교학점제를 도입해야겠다는 의지를 지닌 교사들이 모여있다. 현재의 학교 운영이 각 교사가 지닌 노력과 헌신을 기반하고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이게 일반적인 표준모델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단순히 교사의 열정을 신뢰하고 가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과 환경"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보다 다양한 과목을 운영하기 위한 교사를 확보하기 위해선 학교의 규모 문제를 말씀드릴 수 밖에 없다. 동지역은 전체인원 규모를 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고교학점제의 부담이 훨씬 덜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 현장 찾은 제주외고 학부모들 "학교이전 위한 명분 쌓기" 반발

이어진 플로어 토론에서는 주로 제주외고 학부모들의 발언이 주를 이뤘다. 실제 현장을 찾은 제주외고 학부모들은 토론회에 대해 "학교 이전을 위한 일방적인 명분 쌓기"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제주외고 학부모와 학생, 지역주민 등으로 구성된 '제주외고 운영위원회 학교활성화방안 소위원회'는 행사 직전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모형을 논의한다면서 이해당사자인 학부모와 지역주민을 배제한 채 두 가지 틀 안에서 이전 여부만을 다루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과밀학급 문제를 낳은 도교육청의 정책실패를 해소하려고 외고 이전을 논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를 지켜본 강순문 도교육청 정책기획실장은 "오늘 오갔던 의견들과 플로어에서 제기한 의견들까지 잘 새겨듣겠다. 내용을 충분히 검토해 공론화위원회에 전달하고 교육감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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