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83. 부모는 거미 넋이다

출처=오마이뉴스.
새끼를 위해 육신을 내놓다니 놀라운 일이다. 생명의 존귀함과 더불어 어미의 새끼사랑의 극한을 생각하게 된다. 출처=오마이뉴스, 조태용.

거미의 생태부터 살펴야 한다.

거미는 워낙 다산(多産)이라, 바글바글 한 마리의 알에서 수백 마리의 새끼들이 나온다. 어미가 태어난 제 새끼들을 온몸으로 품어 보살피게 되는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어미가 꼼짝 않고 있다 보니, 새끼들이 어미 몸에 달라붙어 있으면서 어미의 살을 야금야금 갉아 먹어 버리는 것이다. 결과는 보나 마나, 어미는 껍데기만 남아 바람에 팔랑거리게 된다. 새끼를 위해 육신을 내놓다니 놀라운 일이다. 생명의 존귀함과 더불어 어미의 새끼사랑의 극한을 생각하게 된다.

그처럼 사람의 경우도 매한가지. 부모는 제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죽기 살기로 매달린다. 먹는 것 입는 것 할 것 없이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한평생을 두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감수한다.

경우에 따라선 눈물겨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노래에 있듯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을 다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식을 위해 애쓰며 온몸을 내던지다 보면, 부모는 어느덧 나이 들어 꼬부랑 노인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있는 것 없는 것 자식에게 다 털어주고 빈털터리가 돼 있는 데다 몸은 늙어 삭정이가 다 돼 그야말로 처량한 신세가 돼 있지 않은가. 참으로 인생무상이다.

문득, 요즘 사이트 한쪽 귀퉁이에 오래 쓰는 말과 허름한 차림에 비쩍 마른 모습의 영상이 함께 떠오른다. 그 노인의 독백, “인생이 참 외롭습니다.”

그분도 자식에게 다 주고 늙다리에 저런 초라한 행색은 아닌지….

동물의 새끼들이 어미에게 달라붙어 살을 갉아 먹듯, 우리 사람 또한 부모와 자식 간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빗댐이다. 늘 하는 얘기지만 참으로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그래서 실감이 난다.

한 마디로 말해 ‘헌신적·희생적인 모성애’를 은유한 것이다.

‘수웨긴 원담에 든 새끼 생각허당 죽나.’
(수웨기란 고기는 썰물로 사람들이 쌓아 놓은 원담 안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채 갇혀 있는 제 새끼 생각하다 죽는다.)

‘어멍은 배고팡 죽곡, 어린아인 배 터졍 죽나.’
(어머니는 제 자식 먹이느라 굶어 죽고, 그 아이는 넙죽넙죽 받아먹다 보니 배가 터져 죽는다.)

이들 모두 자식을 위한 어버이의 헌신적인 사랑과 처신을 절박하게 표현한 것들이다. 모성애처럼 지순 지극한 사랑은 없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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