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84. 부지깽이는 데어 버리기만 하고, 죽젓개는 잘 얻어먹는다

* 부지땡이 : 부지깽이
* 불기만 : 버리기만
* 남죽 : 배수기, 죽젓개

아궁이에 솥을 안치고 불을 땔 때, 불이 잘 붙도록 공기가 잘 통하게 쑤시는 데 사용하는 막대기가 부지깽이다. 

땔감이 무슨 짚일 때, 특히 그 짚이 비에 젖었을 때는 불이 잘 붙지 않아 입으로 후후 불면서 불이 잘 붙게 쑤셔 공기가 들어갈 틈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때 아궁이 한가운데를 쑤시는 구실을 하는 게 부지깽이다. 만날 불붙는 아궁이만 쑤시다 보니 불에 만날 데어 까맣게 타들어 간다. 손에 들고 아궁이를 쑤시기에 힘들 정도로 닳게 되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 

활활 불타는 아궁이을 쑤시며 밥이 잘되도록 온갖 고생을 다한 녀석이다. 그걸 한 살이 곧 생애라 하면 참으로 참기 어려운 고통의 생애가 아닐 수 없다. 매일 솥에 불을 땠다면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 화형(火刑)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매일 솥에 불을 땠다면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 화형(火刑)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출처=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매일 솥에 불을 땠다면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 화형(火刑)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출처=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남죽(죽젓개)은 죽을 쑬 때 열이 고루 가도록 휘젓는 도구로 솥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하는 구실까지 한다. 어른 팔보다 약간 길게 나무를 잘라 편편하게 깎아 아래는 넙죽이 하고 위로 갈수록 손으로 잡아 젓기 편하게 크기를 맞춘다.

죽도 팥죽, 메밀죽, 잣죽 등 여러 가지인 데다 범벅만 해도 메밀범벅, 고구마범벅, 수수범벅 등 다양하다. 

남죽은 이렇게 여러 가지 죽을 쑤는 데 젓는 구실을 한다. 죽만 아니다. 엿을 고고 조청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죽과 범벅은 얼마나 후미지며, 엿이며 조청은 얼마나 달디 단가, 남죽이 공력을 들인 결과다.

가만 생각해 볼 일이다.

불이 활활 타는 아궁이나 죽을 쑤고 엿을 고는 솥 안이나 견디기 힘들게 뜨거운 것은 똑같다. 한데 부기깽이는 불에 데기만 하면서 까맣게 제 몸을 태워 한 생을 마감하는 데 비해, 남죽은 그 좋다는 죽이며 법먹, 엿과 조청의 최고의 맛을 보며 한 생을 통해 맛의 향연을 즐긴다 함이다.

이 말은 부지깽이와 죽젓개, 두 사물이 받는 처우라는 단순비교에 그치지 않는다. 엇비슷하게 고된 일에 종사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소득을 거둬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의 경우는 뼈 빠지게 고생을 했는데도 고생으로 끝남을 빗댄 것이다. 너무도 극명한 대비가 아닐 수 없다.

두 개의 사실을 가지런히 놓아 그럴싸하게 빗댄 은유(隱喩)가 아닌가.  

같은 일을 했음에도 실제로 주어지는 이해득실이 엇갈려 다를 수 있는 현상을 빗댈 때 쓰는 말이다. 

하긴 실제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질 몫을 노동의 난도(難度)에 맞게 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건 아닐는지….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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