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교육주체다] 제주 학교비정규직 와이드 인터뷰 (2) 학교 갑질

흔히 교육의 3주체로 ‘교사·학생·학부모’를 꼽는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다른 주체가 있다. 교육활동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소위 ‘비교사 노동자’로 호칭되는 이들도 분명한 교육주체다. 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 노동의 차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존중도 보장되어야 한다. 경쟁과 차별을 넘어 협력과 지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는 주민자치 교육감 시대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현장 전문가의 릴레이 와이드 인터뷰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 편집자 

1년 사이에 학교 내 괴롭힘(갑질) 피해 경험 50%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지난해 7월16일부터 시행됐지만, 제주지역 학교 내 괴롭힘(갑질)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지부장 김은리)는 7월31일부터 8월6일까지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 조합원 1300여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구글 설문조사 방식으로 학교 내 괴롭힘(갑질)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갑질 경험, 갑질유형, 갑질당사자, 갑질 피해 후 대처 등 총 10개 문항을 물었다. 교육공무직노동자 154명이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응답자의 50%가 최근 1년 이내 갑질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들 갑질 피해 유형(중복응답) 심각한 괴롭힘 유형으로 분류되는 폭행·폭언범주는 32건(12%)이었다. 신체적 폭행이 3건, 폭언이 20건, 협박과 태움이 각각 5건과 4건이었다.

학교 내 괴롭힘(갑질) 피해유형으로는 모욕·명예훼손범주가 92건(34.7%)으로 가장 많았다. 무시가 40건으로 가장 많았고, 모욕29건, 비하 23건 순이었다. 따돌림, 차별, 소문, 배제, 허드렛일 등 따돌림·차별범주도 76건(28.6%)이었다. 부당지시도 52건(19.6%)로 적지 않았다. 휴가사용 거부 및 특정기간에 강요 12건, 감시 10건, 전가 10건, 시비 7건, 사적 지시 7건, 모성(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못쓰게 하거나 비하) 3건 등이었다.

갑질행위자(중복응답)는 교사, 교장, 교감이 65.9%를 차지했다. 담당관리자 및 동료 등 기타가 40%, 행정실장이 11.8%이다.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노동자 중 154명이 실태조사에 참여해 1년 사이에 267건의 학교 내 괴롭힘(갑질)이 있었지만, 그 중 도교육청 갑질신고센터에 진정이 들어간 사건은 단 1건이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학교 괴롭힘(갑질) 조사결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모른다는 응답이 52.4%로 절반을 넘었다. 반면 47.6%가 안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78.9%가 학교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2018년 12월 학교 내 갑질 계획을 세우고 갑질신고센터를 운영했지만, 예방교육에는 소홀히 했다. 

직장 내 괴롭힘(갑질) 금지법이란

지난해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이 시행됐다. 
직장 내 괴롭힘(갑질)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을 것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할 것을 등을 법적요건으로 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갑질) 금지법에 따르면 실명 신고는 물론 익명신고도 가능하다.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직장 괴롭힘(갑질)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갑질) 관련 조사기간 동안, 피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피해노동자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해서는 안된다. 

사용자는 조사결과 직장 내 괴롭힘(갑질)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해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징계 등의 조치를 하기 전에 그 조치에 대해 피해노동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특히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노동자 및 피해 노동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 피해자가 신고를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처우를 받을 경우 사용자는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사용자가 신고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피해자 또는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줬다면 고용노동부에 진정 또는 고소를 할 수 있다. 교육공무직이나 공무원, 공공기관 노동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다. 

똑같은 사건, 교육청과 인권위의 다른 결정

행정실무원 강미옥(54, 가명. 지체장애인)씨는 올해 7월15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사건 처리 결과 결정문을 받았다. 국가인권위는 "피 진정인(학교장) 행위는 헌법 제10조를 위반하여 진정인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헌법 제11조 위반 및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1항이 금지하는 장애인 차별 행위에 판단"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주문사항으로 "피 진정인(학교장)에게, 국가인권위원회가 주관하는 인권교육을 수강할 것"을 권고했다. 

사건의 발단은 학교장이 특정교사 승진을 위한 업무분장을 하면서다. 행정실무원 강미옥씨는 2018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S초등학교에서 교무 및 연구업무지원 등 약 10여건의 업무를 맡았다. 학교장이 2019년 2월 중순 행정실무원 강미옥씨에게 특정교사 승진을 위한 업무분장을 하면서 기존보다 3배 많은 약 30여건의 업무를 맡을 것을 요구했다. 행정실무원 강미옥씨가 부당함에 대해 지적을 하자, 학교장은 비장애인과 업무량을 비교하면서 장애인을 비하하며 막말을 쏟아냈다. 

"다 행정실무원이 했어요. 어느 학교든, 장애, 불편하지 않은 이상은"
"이런 거 따지면 인간이 아니라고 봐요"
"학교를 떠나면 고맙겠다고 내가 얘기를 했잖습니까"
"이렇게 트러블이 생기고 근평을 잘 받으리라고는 생각하면 안돼요"

행정실무원 강미옥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기 전에 지난해 3월 초 교육부 갑질신고센터에 먼저 진정을 했다. 이 사건을 교육부로부터 넘겨 받은 제주도교육청 입장에서는 갑질신고센터가 만들어진 이후 첫 번째 사건이었다. 서귀포교육지원청은 "교육공무직원 취업규칙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 관련성이 일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전근 및 처벌을 적용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면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학교장은 행정실무원 강미옥씨에게 따돌림 및 업무과중 등 2차 가해를 계속했고, 2020년 3월 다른 학교로 전보까지 가게 됐다. 학교장 말대로 '학교를 떠나게' 됐다. 

제주도교육청은 올해 7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내려지고 난 후 올해 8월13일 해당 학교장에게 '주의' 조치를 내렸다. 

일터에서의 고문 '직장 괴롭힘'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 명의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가지 종류의 괴롭힘이 아니라 여러 유형의 괴롭힘을 같이 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매년 계약을 반복해야 하는 학교비정규직노동자는 폭언, 협박, 태움, 모욕, 비하, 무시, 차별, 소문, 배제, 차단, 허드렛일, 사적지시, 사직종용, 전가, 감시, 시비, 기타 등 무려 17가지 유형의 괴롭힘(갑질)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괴롭힘(갑질)을 당하는 경우 1~2가지 유형이 아니라 4~5가지 또는 그 이상의 갖은 유형의 괴롭힘을 다발적으로 겪고 있었다. 

직장 괴롭힘은 일터에서 당한 고문이라 부를 수 있다. 실태조사에 응한 한 교육공무직노동자는 "특수교사가 원하는 글이나 답변이 나올 때까지 3시간 동안 학생 책상에 앉아서 고문 당하는 것처럼 취조당했어요. 그 모습을 공익요원이 다 지켜 보고 있어서 모욕감과 치욕감에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웠어요" 

직장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는 수치심과 모욕감에 몸과 마음이 견디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경우까지 이른다. 

그럼에도 대다수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 노동자는 별다른 대책 없이 학교 내 만연한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응답자의 58.8%가 학교 내 괴롭힘에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응답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갑질로 이어져 

프랑스는 2002년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노동법으로 방지하면서 체계적으로 대응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인터넷 언론 <민중의소리>는 2018년 프랑스 CGT(노동총동맹)를 방문해 노동안전 활동가를 취재했다. 

프랑스 CGT 노동안전 활동가는 "괴롭힘의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만 봐서는 안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낳은 직장 내부 구조적인 문제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해자 한 사람이 처벌을 받고 교체가 된다고 하더라도,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최근 부산의 한 중학교 교장이 "생김치가 너무 먹고 싶다"며 "완제품이 아닌 김치를 담아 제공하라"고 한 '갑질' 논란 기사가 <오마이뉴스>에 실린 적이 있다. 제주도내 학교는 어떨까. 제주도내 모든 학교는 급식실 노동자들이 김치를 담가서 제공하고 있다. 어느 지역에서는 갑질 논란이 되고, 제주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급식실 노동강도는 매우 강하다. 완제품 김치를 급식으로 제공하는 것과 생김치를 담그는 것은 급식실 노동자의 업무 강도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 급식실 노동자들이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 초과노동을 요청했지만 학교장이 거부해서 조합원들의 상담을 받은 적도 있다. 

사용자 또는 관리자가 노동자에게 불가능한 데드라인을 요구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갑질)으로 연결된다. 학교 급식실을 방문했을 때 급식실 노동자들이 근무시간이 끝나고도 초과근로 수당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급식실 관리자(영양교사 또는 영양사)에게 "왜 초과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냐"고 물으면 "시간 내에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일을 급식실 노동자들이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초과근로를 강요하거나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도 당연히 직장 내 괴롭힘(갑질)에 해당된다. 

인권과 일터의 연결

제주도내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갑질)의 원인으로 교사와 공무원, 교육공무직으로 서열화 되어 있는 학교의 신분제(61%)를 가장 먼저 지적했다. 차별이 일상화된 문화(17.8%)와 학교장의 재량권 남용(15.1%) 순으로 꼽았다.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갑질)의 가장 큰 원인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학교의 신분제를 꼽은 것은 일하면서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해서가 아닐까. 존엄성은 인권의 토대이고, 삶의 필수조건이다. 지위와 관계 없이 사람이라는 이유로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지위의 문제다. 

그래서 색출과 제제를 중심으로 학교 내 괴롭힘 문제를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필자는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한다. 문제를 더 숨길 수도 있고 애써 마련한 조치가 눈엣가시 같은 사람을 색출해 제거하는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 섣부른 대책이 괴롭힘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났지만 직장 동료 간의 괴롭힘도 적지 않다. 학교 노동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괴롭힘의 악질 가해자 색출과 본보기로 처벌하는 성급하고 성마른 조치보다는 서로 다른 사람을 정중하게 대하는 것을 기본으로 여기는 문화, 존엄성 존중을 강화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실태조사에 응한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학교 내 괴롭힘(갑질)을 없애개 위해서는 처우개선(54.8%)을 가장 우선 순위로 강조했다. 갑질 예방교육(21.9%)과 갑질 가해자 처벌(15.1%)이 그 다음을 이었다.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말하는 처우개선이란 단순히 임금인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기 노동을 존중 받는 것, 자율성을 인정받는 것,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 받는 것 등 노동자로서 권리를 말한다. 학교라는 공간이 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받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교육청이 지난 6월 도민 8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학교교육에서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이라는 질문 항목에 66.8%가 '인성'이라고 응답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인성'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공감 능력이다. 급식실 노동자가 2년 새 6개월 마다 네 명이나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골절이 됐는데도 교육청 관계자가 "그 분들 나이대가 높다보니 안전의식이 낮다"고 말하는 것은 공감 능력의 결여에서 나온다. 공감은 평등의식에서 나온다. 

지난 번 필자가 쓴 급식실 노동자 폭염에 교육청의 늑장 대처를 비판한 글에 "힘들면 그만둬라, 일할 사람이 많다"라는 댓글이 있었다. "너 그만둬도 일 할 사람이 많다"거나  존엄성과 인권 침해 문제를 능력 문제로 연결해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학교 내 괴롭힘(갑질)을 용인하는 잘못된 신호체계, 면역체계다. 

잘못된 신호체계, 면역체계를 바로 잡자는 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존재하는 이유다. 괴롭힘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학교 내 괴롭힘(갑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병이 들면 학생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학교 교육에 가장 우선해야 할 덕목인 인성은 학교 현장에서 일하는 교사, 공무원, 교육공무직 등 모든 구성원들이 존엄성과 인권을 보장받고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가능하다.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학교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규제도 필요하다. 학교 내 괴롭힘 신고가 들어오면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도 학교 내 괴롭힘 대책 방안도 논의하자. 서로가 존중받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청이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제주도내 교육공무직노동자 조직율은 80% 이상)부터 존중하고 고민을 함께 나누자.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 여러분, 오늘 일하면서 존중 받았습니까? 모욕 받았습니까?  / 박진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교육선전국장

글쓴이 박진현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노동조합으로 조합원 1천3백여명의 제주지역 최대노조다. 박진현 국장은 2014년 4월부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공공운수노조 중앙에서 일한 햇수를 합하면 20년 가까이 노동조합에서 일했다. 박진현 국장은 원래 부산 사람이다. 2013년 제주로 이주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제주로 이주하면 노동조합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겠다고 떠들었지만 헛말이 됐다. 지금 제주 와서 가장 잘한 일을 뽑으라면,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한 것이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고, 한 해도 파업과 투쟁을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노동조합 하는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노동존중 평등학교를 실현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노동과 삶을 전하고자, 제주의소리에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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