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33) 인사 권한남용에 의한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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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이전 도내 면세점에서 근무하는 한 노동자가 있었다. 2년차가 되었을 무렵 입사 후 마음속으로만 고민했던 사업장 내의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본인의 생각을 동료들과 나누어 현명하게 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때부터 중간관리자의 갑질이 시작되었다. 갑질의 마지막은 부당관행을 제기한 노동자를 서울에 있는 면세점으로 전보발령을 낸 것이었다. 부당하다고 생각했으나 당장은 서울로 이동하여 근무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과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교 자녀와 노모가 마음에 걸렸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서울로 출근을 하니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신규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당사자는 더 이상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퇴사하고 말았다. 본인이 스스로 그만두게 하는 것이 사측이 원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버티기가 힘들었다. 

최근 모 지역 농협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후 당사자에 대한 동의절차 없이 타 지역 농협으로 조합원을 전보 했다가 이슈가 된 경우도 있었다. 제주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이 사건에 대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준 부당전보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부당함은 인정받았지만 근로계약 단절 등으로 인해 개인이 감내해야할 고통은 아직도 남아있고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제기한 상황이다. 

호텔, 리조트, 병원 등 각종 건물에 미화․경비 업무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전국단위의 용역업체들이 제주에도 진출해 있다. 해당 고용형태로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종종 제보되는 사례인데 현장에서 인사이동이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당한 업무지시에 대하여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중간 관리자로부터 눈 밖에 나게 되면 “다른 지역에 가서 일하고 싶어요?”라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실제로 육지의 타 지역의 건물을 관리하라고 발령을 내기도 한다. 소속업체만 바뀌었을 뿐 같은 사업장에서 10년~20년을 일해 온 노동자에게 타 지역으로 발령을 내린다는 것은 인사권으로 포장된 해고통보나 마찬가지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사용자가 조직 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권한을 소위 인사권이라고 한다. 노동자는 인사결과에 따라 본인의 거취가 결정되기 때문에 인사결과에 매우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인사권에 합리적인 기준이 없다면 개인을 넘어 조직적으로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인사권이 집중되어 객관성을 결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사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여 다양한 입장의 의견을 청취하여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우리법원은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행사 가능한 권한이라고 본다. 업무상의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사용자의 재량권을 상당부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 사례의 경우는 사용자의 재량으로 볼 수 있을까?

사용자가 인사권을 남용하여 노동자의 인격을 침해한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부당 전직을 제기해 구제받을 수 있다.

인사권을 악용한 인권침해는 안 돼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에게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사용자가 인사권을 남용하여 노동자의 인격을 침해한 경우 위 규정에 근거하여 부당 전직(전보․전근․인사이동 등)을 제기하여 구제 받을 수 있다. 사용자의 재량을 일탈한 인사권 남용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위 사례와 같이 근무 장소를 변경하여 전보발령을 내는 경우 인사권이 정당했는지 여부는 아래의 기준에 따른다.

먼저, 사용자가 인사권을 행사해야 할 ‘업무상의 필요성’이 있었는지 여부를 본다. 전보를 할 객관적인 사유가 있는지, 대상 노동자를 결정하는 선정기준이 합리적이었는지, 기업운영에 있어서 합리성․효율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본다. 만일 업무상의 필요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통제할 목적으로 행하여진 전보라고 한다면 무효가 된다. 

둘째, 업무상 필요성이 있더라도 전보를 통하여 발생한 노동자 개인의 ‘생활상의 불이익’이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다. 생활상의 불이익에는 전보를 통하여 발생한 일체의 불이익을 의미한다. 예컨대 전보를 통해서 임금이나 수당이 삭감되지는 않았는지, 전보발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거주지를 이전하면서 발생하는 부담이 있지는 않은지, 가족이 모두 거주지를 이전하기 힘든 조건에서 발생하는 가족생활 등 개인적인 곤란의 문제 등이 모두 생활상의 불이익에 해당된다. 

사용자가 행한 인사권에 비하여 노동자 개인이 감내해야 할 불이익이 상대적으로 크다면 부당전보에 해당된다. 하지만 불이익이 크다고 해서 바로 부당전보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개별 사안에 따라 사업의 운영상 업무상의 필요성이 큰 상황이라고 한다면 노동자의 불이익을 통상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수준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노동자와의 협의과정이 필요하다.

사용자의 인사권을 고유권한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간의 협의를 통해서 결정할 수 있다면 오히려 업무상 필요성과 구성원의 만족을 충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결정과정에서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 자체도 중요하다. 현행법령에서 의무화 하고 있는 30인 이상 사업장의 노사협의회를 통해서도 인력배치 등에 대하여 협의할 수 있다. 

업무배치권한을 통해 사업장내 권력을 가지려는 중간관리자나 사장이 있다. 하지만 권한남용을 통해 나오는 권력은 한시적일 뿐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구성원과의 소통과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잊지 말자.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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