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연합-제주의소리 공동기획] 제주도 해안사구 이야기(8) 월정리 해안사구

제주의 자연생태계 중에서 무관심과 보전의 사각지대에 오랫동안 놓여있었던 곳이 있다. 바로 해안사구이다. 해양생태계의 시작점이자 끝 지점이면서도 연안 습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육지로도 인정받지 못한 곳. 그야말로 중간지대에 있는 곳이라 할만하다. 그렇다 보니 제주의 해안사구는 전국에서도 가장 많이 훼손되었다. 국립생태원의 2017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도 해안사구의 82.4%가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올해부터 도내 해안사구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해 오는 12월까지 매월 2차례씩 총 16회에 걸쳐 도내 해안사구의 가치와 관리실태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용천동굴의 화려한 경관을 만든 월정 해안사구

월정리 해안사구
▲ 용천동굴. (사진 출처 : 제주도청 홈페이지)

2005년 5월 어느 날, 월정리의 전신주 교체 사업을 위한 타당성 조사의 일환으로 시추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추작업 중 뜻밖의 동굴을 발견하게 된다. 그 동굴은 깊이 12m에 달하는 대형호수도 품어 안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용암 동굴임에도 석회암 동굴처럼 다른 동굴과 비교가 안될 만큼 화려한 동굴생성물이 압권이었다. 이 때문에 이 동굴은 2006년에 천연기념물 제466호로 지정되었다. 이 동굴은 이후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바로 용천동굴이다.

또한 대형 전복껍데기와 패각류, 통일 신라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류, 철기류, 돌무더기가 발견되는 등 역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제주도내 천연 동굴 가운데 규모·학술·경관·문화재 측면에서 가장 가치 높은 동굴로 평가받고 있다.

용천동굴은 총 길이 약 3.4㎞이고 길이 800m, 깊이 12m에 이르는 대형 호수를 품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위 석회 동굴’이기도 하다. 위 석회 동굴이란 용암동굴이지만 용암동굴 내부에 도외 지역의 석회암 동굴처럼 석회 동굴 생성물이 형성되어 있는 동굴을 말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왜 용암동굴 속에 화려한 석회 동굴 생성물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동굴 위에 자리 잡은 해안사구 때문이다. 

월정리 해안사구
▲ 당처물동굴도 월정 해안사구로 인해 다양한 석회 생성물이 만들어졌다. (사진 출처 : 제주도청 홈페이지)

해안사구의 모래 속에 함유된 석회질이 오랜 시간 동안 빗물에 녹아내려 용암동굴 속으로 스며들었고 기기묘묘한 석회 생성물들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종유석, 종유관, 석순, 석주, 산호, 동굴 진주, 동굴 산호, 유석, 휴석, 커튼, 석화 등 석회 동굴에서 생성되는 생성물이 거의 대부분 분포하며 그 형태가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용천동굴뿐만 아니라 1995년, 농경지 정리 작업 중에 발견한 천연기념물 당처물동굴도 월정리의 지하 속에 있는데 이 동굴도 해안사구로 인해 화려한 동굴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의 모습을 갖게 한 월정 해안사구는 수난에 처해있다. 

# 한동 단지모살과 행원 연대봉 모살을 만든 월정 해안사구

월정이라는 이름은 바다에 나가서 마을을 바라보면 반달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월정해수욕장은 한모살이라 불리는 모래 해변이다. 크고 넓은 모래밭이라는 뜻이다. 이 모래 해변에서 바람에 날린 모래가 남동쪽으로 수 km 퍼지면서 긴 막대기 모양 같은 해안사구를 만들어냈다. 

현재는 이 해안사구를 농경지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다만, 한동리의 단지모살, 행원리의 연대봉 모살처럼 규모가 큰 해안사구가 곳곳에 섬과 같이 남아있다. 단지모살은 지난 연재에서 올렸던 것처럼 한동리 주민들이 일제 강점기에 모래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협동으로 사방림을 조성한 역사적인 사구이다. 

월정리 해안사구
▲ 월정 해안사구의 범위를 대략 그려보았다. 월정리 해수욕장에서 날린 모래가 긴 막대기 모양의 사구를 만들어냈다. 이 안에 한동리의 단지모살, 행원리의 연대봉 모살이 포함된다. 단지모살 일부를 용암 해수단지가 잠식한 것을 볼 수 있다. (Daum 지도 캡처 후 편집)

단지모살 사구의 일부를 용암 해수단지가 잠식하고 있다. 행원리의 연대봉 모살도 마치 마을의 작은 오름 같은 형태를 지닌 아름다운 곳이다. 현재는 생태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한모살(월정해수욕장)과 인접한 해안사구는 최근 사이에 대부분 파괴되어 있는 상태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월정 해수욕장 일대는 카페 하나 정도 있을 정도로 고즈넉한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현재 부동산 광풍에 의해 해안사구가 사라진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되었다. 카페거리와 월정해수욕장이 명성을 얻으면서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월정 해안사구 위에 만들어진 해안도로는 모래가 도로 턱을 넘지 못하게 하여 계속 도로 위에 쌓이게 만들고 있는 원인이다. 

이 때문에 해안사구가 침식되어 해안에 묻혀있던 빌레도 드러나 버렸고 앞으로도 모래유실은 더 심해져 장기적으로는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해안도로 위쪽으로 남아있던 해안사구는 카페 등 음식점으로 잠식되어 있다. 

월정리 해안사구
▲ 월정해수욕장(한모살)에서 날린 모래가 거대한 해안사구를 만들었지만 인접한 해안사구는 해안도로와 상업시설 때문에 크게 파괴되었다.

#부동산 투기와 월정리 마을의 미래

최근에는 월정리 마을 안의 해안사구가 큰 규모의 택지개발로 없어져 버렸다. 조그만 마을 안에 이처럼 규모가 큰 택지개발은 이례적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월정은 부동산 광풍으로 개발의 몸살을 크게 앓을 것 같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개발 역사를 보면 제주도도 그 패턴이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은 주력이 중공업이 아니라 관광산업이라는 점이다. 관광업을 하기 위해서는 토건산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주도의 개발역사에서 관광산업과 토건산업은 늘 단짝을 이뤄왔다.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 통과 이후 정부는 제주도를 3개 단지 20개 관광지구로 나누고 거기에 각종 혜택을 부과하여 외부자본을 유치하는 거점식 개발계획을 세운다. 이러한 대형 관광 시설 거점을 만들기 위해 토건산업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녔다.

이후, 제주도는 난개발의 주무대가 된다. 더군다나 관광개발사업은 주로 자연환경이 훌륭한 곳을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용암이 바위로 굳은 아름다운 해안선에, 제주만의 숲 곶자왈에, 제주의 고유한 목축문화인 마을공동목장에 골프장과 대규모 리조트가 들어섰다. 

이처럼 지난 수십 년 동안 관광산업과 토건산업은 짝을 이루어 제주의 개발붐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것에 늘 따라붙는 것이 있다. 바로 부동산투기이다. 그리하여 제주도는 급격한 인구유입과 함께 전국 최대의 부동산 가격 폭등 지역이 되었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개발붐이 제주의 경제를 이끌어온것이 아니냐고. 한편으로는 맞는 면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장기적으로 보면 이는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니었다. 오래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발전 방식, 개발방식으로 인해 그동안 제주의 수많은 유형․무형의 소중한 자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을공동체 조차도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회비용을 잃었고 미래의 자산까지 팔아먹어 버렸다.

결국 제살 깎아먹기였고 언젠가 바닥이 드러날 길이었다. 제주의 최대 강점인 자연생태계와 경관을 파괴한 이후, 이것이 임계치를 벗어나는 시점이 되면 제주의 관광 경쟁력은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고 도민의 생활환경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아니, 임계치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제주도의 발전경로를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관광업에 너무나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를 바꾸고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끊임없이 토건산업을 벌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한다. 철지난 개발 패러다임을 끊어내고 제주의 새로운 미래 비전에 바탕을 둔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월정리 해안사구
▲ 월정 해안 모래 속에 묻혀있던 빌레(넓은 암반을 뜻하는 제주어)가 드러나고 있다. 장기간 지속되면 월정해수욕장도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원희룡 지사도 취임 초기에  제주의 새로운 미래 비전을 ‘청정과 공존’으로 도출하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새로운 미래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구가 필요했지만 원지사는 옛날 도구를 그대로 갖다 썼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실행할 철학과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관광객 양적 팽창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과거의 개발 패러다임을 그대로 이어갔다. 아니, 오히려 이전 자치단체장 보다 훨씬 더 심했다. 대표적인 것이 제주제2공항 유치였다. 

이러한 개발 패러다임 위에서 제주는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전국에서 집값과 땅값 모두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이 되었다. 한동안 부동산 관련 통계에서 ‘전국 최고, 사상 최대’라는 설명이 붙을 정도였다. 이런 면에서 월정리는 제주도의 부동산 폭등과 투기의 문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월정리 마을안의 옛집의 가격은 수십 배나 올랐다.

그런데 부동산은 과도한 거품이 끼어 있는, 어찌 보면 신기루 같은 자산이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수십억 원대를 넘나들고 제주의 아파트들도 서울 웬만한 곳 못지않은 가격이라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자산 가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예전에 일본 동경시의 부동산을 다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살 수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땅값은 20년 전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만큼 일본의 부동산 거품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른바 일본 버블경제의 중심에 부동산경제가 큰 몫을 차지했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만드는데 큰 원인을 차지했다. 

#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할 때

한국의 부동산 시장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던 1990년대 초와 비슷한 점이 많다. 문재인정부가 집값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도 이러한 부동산 망국론의 실제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토건과 부동산 투기를 중심으로 한 잘못된 경제성장의 실상을 제대로 봐야 한다.

월정리의 부동산 가격 폭등과 그로 인한 난개발이 지역주민과 제주 경제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마을공동체에 진정한 도움을 주고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을 제주도 전역으로 확대해봐야 한다.

월정의 해안사구의 규모에 대해서, 옛 문헌에 남아있는 이야기가 있다. 월정리에서 120세 넘도록 장수했다는 ‘한동지 영감’ 이야기다. 상상을 초월하는 장수를 하자 조정에서는 한동지 영감을 임금 앞에 모시고 간다. 여러 대화중에 임금 앞에서 한동지 영감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느 날 우리 마을에는 지붕이 바람에 걷혀도 그 위에 못 올라갈 정도로 강풍이 몰아쳤는데 밝은 날에 동네를 보니 온천지에 모래가 덮쳐 집들은 물론 이웃 마을로 가는 길까지 없어져 버린 때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일대에는 밭이나 집이 거의 없는 형편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나졸들을 시켜 월정리로 가보게 하였다. 그랬더니 한동지 영감 말대로 그가 살던 일대는 온통 모래동산 뿐이었다고 한다. 임금은 한동지 영감에게 동지 벼슬과 함께 모래로 덮인 그 일대를 모두 차지하여 살라고 하며 제주도로 내려 보냈다. 한동지 영감은 그 덕으로 모래가 덮친 그 넓은 땅은 물론 바다까지도 모두 차지하여 큰 부자로 살게 되었다고 한다.(출처 : 좌혜경)

월정리의 해안사구가 얼마나 컸는지 엿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해안사구에 적응하며 살아왔던 고단한 제주민중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것을 스토리텔링 화하여 월정리의 해안사구와 그로 인해 화려한 경관을 지니게 된 동굴군락을 자원으로 생태관광화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부동산 투기가 횡행하고 상업시설이 장악한 월정리 해안사구가 아닌 보전의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월정리를 만들어냈으면 어땠을까? 새로운 길은 늘 어려운 법이다. 

그 첫 번째 단추는 부동산 투기 경제위에 선 위태로운 발전 방식의 유혹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월정리 해안사구에서 제주도 미래의 갈림길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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