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6차산업人](12) 제주 전통주 고소리술 ‘다끄는’ 김희숙 제주술익는집 대표

제주 농업농촌을 중심으로 한 1차산업 현장과 2·3차산업의 융합을 통한 제주6차산업은 지역경제의 새로운 대안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창의와 혁신으로 무장해 변화를 이뤄내고 있는 제주의 농촌융복합 기업가들은 척박한 환경의 지역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인 제주(Made in Jeju)’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주역들입니다. 아직은 영세한 제주6차산업 생태계가 튼튼히 뿌리 내릴수 있도록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기획연재로 전합니다. [편집자 글]

경북 안동소주, 북한 개성소주와 어깨를 겨루는 명주가 있다. 이들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명주로 손꼽히는 제주 전통주 고소리술을 30년 넘게 전통 방식 그대로 이어오는 이가 있다.

제주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고소리술을 정성스레 빚어 전통주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김희숙 명인. 좁쌀과 보리쌀로 누룩을 띄우는 일부터 새벽녘 고소리를 통해 한 방울씩 술을 내리는 일까지 전 과정을 옛 방식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제주를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식이라는 일념으로 ‘왜 사서 고생이냐’는 남 말에도 굴하지 않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사라질 뻔한 제주 전통주의 대를 잇는 6차산업인 김희숙 명인을 [제주의소리]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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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씨는 대한민국식품명인 제84호, 제주도 무형문화재 11호 고소리술 전수자로 제주 전통주를 빚어내고 있는 6차산업인이다. 잊혀져 가는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고소리술과 오메기술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고소리술 다끄는(빚는) 일을 포기하는 것은 제주 선인들이 오랫동안 일궈온 문화의 한 측면, 생활 그 자체가 사라지는 일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우리네 삶이 서린 흔적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던 거죠.”

제주서는 술을 ‘빚는다’는 표현과 함께 ‘다끄다’라고 말한다. 소줏고리에 술을 담고 끓여서 김을 내 증류하는 소주 제조 방식을 ‘술다끄다’라고 표현하는 것. 탐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김희숙(62) 씨는 대한민국식품명인 제84호 고소리술 명인이다.

김희숙 명인이 술을 빚기 시작한 건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마을서 주막을 운영하던 고 이성화 여사의 고소리술 비법을 이어받은 시어머니 김을정 여사를 도우면서부터다. 

김을정 여사와 김희숙 명인이 흘린 땀방울 덕분에 제주 전통주는 1990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3호 오메기술, 1995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11호 고소리술이 지정됐다. 김을정 여사는 오메기술과 고소리술 기능보유자로 며느리인 김희숙 명인에게 전수했다.

3대째 고소리술을 만들기 시작한 김희숙 명인은 고소리술이 제주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며 전승자가 됐다. 본격적으로 제주 전통주의 명맥을 잇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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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리술을 빚기 위해선 좁쌀이나 보리쌀을 시루에 담아 잘 찐 후 알맞게 식혀 누룩을 치대고 물을 섞어 항아리에 발효시켜야 한다. 사진=제주술익는집.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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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리술을 빚기 위해선 좁쌀이나 보리쌀을 시루에 담아 잘 찐 후 알맞게 식혀 누룩을 치대고 물을 섞어 항아리에 발효시켜야 한다. 사진=제주술익는집. ⓒ제주의소리

고소리술은 소줏고리를 뜻하는 고리의 제주어인 고소리를 사용해 빚어낸 술이다. 고려시대 몽고군이 제주에 주둔하던 당시 증류주 제조법이 민간에 전수돼 도민들이 고소리를 통해 술을 빚어 귀한 손님 방문이나 제례 때 사용했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안동, 개성, 제주가 3대 명주의 본산이 된 배경이기도 하다. 

섬이라는 지형적 요인으로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었던 제주는 술 역시 직접 내려야 했다. 척박한 땅에서 기른 차조를 통해 술을 빚어 고급술로 즐기기도 하고 오일장에 내다 팔아 생활비로 쓰기도 했다는 것.

김희숙 명인은 예로부터 제주 어멍들이 낮에는 생계를 위해 밭일과 물질을 번갈아 하는 등 살림을 산 뒤 저녁이 되면 한 방울씩 고소리술을 내려 장에 팔아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식 교육에 보탰단다.

고소리술은 밤새 술을 내린 어머니가 아이들 곁에 몸을 누일 때면 달큰한 술 향이 몸에서 난다고 해 ‘모향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집집마다 비법이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까지 고소리술을 빚는 집이 많았다고 했다.

고소리술의 역사가 끊어질 뻔한 것은 일제 강점기 주세법에 따라 가정서 제조하는 술이 ‘밀주’가 되면서부터다. 일본이 쌀을 반출키 위해 면허 외 주조행위를 금지하고 이익을 남길 목적으로 주세령을 반포한 것. 민족 문화 말살과 이익을 위해 가정서 주조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이어오던 전통주에 대한 억압은 19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정부는 전통문화를 살리기 위해 전통주를 무형문화재로 보호하고 전수자 지정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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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리술은 가마솥 위에 고소리를 올려 시룻번으로 단단히 테를 두른 다음 불을 때 고소리 코를 통해 한 방울씩 내려야 하는 정성이 깃들어 있다. 사진=제주술익는집.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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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고소리술은 깊은 풍미와 다채로운 맛을 만들어내도록 오랫동안 항아리에 숙성시켜야만 완성된다. ⓒ제주의소리

김희숙 명인은 “그동안 숱한 사람들에게 ‘아무도 안 하는 일을 왜 하냐’, ‘돈 벌어야지 여기 매달려서 될 일이냐’ 등 많은 말을 들어왔다”면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지만 내가 안 하면 전통이 끊어진다는 책임감으로 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명인은 고소리술을 첨가물 없이 옛 방식 그대로 누룩만 가지고 빚어내는 까닭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새벽 3시부터 나와 물과 불을 조절하며 고소리에서 떨어지는 술 방울을 살피는 일은 수도하는 마음이어야 된다는 것이다.

정성을 다한 고소리술은 2년 가까이 항아리에서 숙성돼 부드러워 목 넘김이 좋고 신선한 향과 단맛이 은은히 올라오는 흥취가 있다는 평을 받는다. 오메기맑은술은 과일 향이 돌고 입에 감기는 산미와 단맛이 음식에 조화롭게 어울린다고 한다.

명인이 만드는 오메기맑은술은 2017년 조선비즈 대한민국 주류대상, 2019년 한-칠레 청와대 공식 만찬주, 제주포럼 만찬주 등에 선정됐다. 더불어 제주술익는집은 2018년 JQ인증, 6차산업 인증, 찾아가는 양조장 등에 선정, 명인은 2019년 제주도 농업인상을 수상했다.

고소리술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는 6차산업인 김희숙 명인은 서귀포시 성읍 양조장서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술을 직접 빚고 마셔보는 체험을 통해 제주를 소개하고 전통주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

입구를 들어선 마당에는 술이 담긴 장독대와 돌담이 늘어서 있어 제주만의 분위기가 가득한 삶의 흔적들이 보인다. 안거리와 밖거리로 이뤄진 제주 전통 초가집을 수리한 제주술익는집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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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제주술익는집' 전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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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통주 명맥을 잇는 김희숙 명인은 대한민국식품명인 제84호, 제주도 무형문화재 11호 고소리술 전수조교, 제주도 농업인상 등 지정됐다. 명인이 이끄는 제주술익는집 역시 농림축산식품부의 찾아가는양조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명인은 제주를 담은 술과 공간 덕분에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했다. 방문객들에 강매하지 않고 직접 보고 느껴 사가도록 좋은 제품을 준비하고 진정성을 보여줘 다시 찾을 수 있게 제주 전통주를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맞이한단다.

명인은 “지금은 땅에 묻혀있는 보물 고소리술이 후대에는 소중한 가치로 인정받는 문화유산으로 사람들에게 호평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도민으로서 한결같이 고소리술에 들인 시간과 열정이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다. 꽃처럼 활짝 피어날 것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늘 변함 없는 한 가지는 제주 토속주를 옛 방식 그대로 빚어내 명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라며 “오늘날 제주가 개발에 많이 밀려 값진 유산이나 가치가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운영에 지장 없는 선에서 저렴하게 술을 제공하고 있다. 호주머니에 여윳돈이 있어야 술도 사드시지 않겠나. 이윤을 많이 남기기보다 제주 전통주인 고소리술을 방문객들이 맛보고 조금이라도 더 찾아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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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술익는집의 대표 상품인 '제주오메기맑은술', '제주고소리술'. 사진=제주술익는집.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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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통주를 빚고 있는 김희숙 명인과 아들 강한샘 씨. 사진=제주술익는집. ⓒ제주의소리

현재 김희숙 명인은 고소리술 전수조교로 전통주 명맥을 잇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아들인 강한샘(32) 씨가 명인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식품명인 제84호·제주도 무형문화재 11호 고소리술 전수자로 4대째를 준비하고 있다. 막내인 한샘 씨는 대학 시절부터 차근히 배워와 12년째라고 했다.

제주 땅에서 만들어낸 전통과 선대의 삶이 담긴 문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희숙 명인. 추석을 앞두고 분주히 고소리술을 다끄는 중이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귀한 술 방울에 제주를 담은 명인의 앞날이 어머니 품에서 풍기는 은은한 술 향기처럼 포근하길 바라본다.

제주술익는집
서귀포시 표선면 중산간동로 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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