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주년, 한국전쟁과 제주] (10) 제주 호국영웅 4인, 이름 딴 명예도로로 희생 기려

한반도가 한국전쟁 폐허로부터 다시 일어선지 70년이 흘렀습니다. 물론 제주는 한반도 최남단이라는 지리적 환경으로 6.25의 직접 피해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같은 환경은 6.25 전란 기간 동안 한국전쟁과 연관된 시설·기관들은 물론, 육지부의 피난민과 전쟁 포로들까지 대거 제주로 집중하게 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4.3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치르고 있던 당시의 제주사회는 한국전쟁으로 유사 이래 정치·군사·외교뿐만 아니라 가장 큰 지역사회 격변까지 경험하게 됩니다. [제주의소리]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기 육지에서 제주로 피난이 이뤄지는 과정과, 정부와 군에서 제주도를 적극 활용하면서 남긴 ‘사람과 장소’들을 재조명해보는 [70주년, 한국전쟁과 제주] 기획을 연재합니다. 전쟁의 실상과 전후의 변화상을 살펴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한국전쟁기의 제주역사는 물론 제주인들의 삶을 되돌아봄으로서 ‘항구적 평화’의 중요성을 미래세대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글]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하고자 한 몸 바쳐 나라를 지켜낸 제주 호국영웅을 기리는 명예도로가 있다. 우리가 자유롭게 이 땅을 거닐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분들의 희생 덕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길 위로 그 분들의 넋이 고이 잠들어 있다. 

제주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인 강원도 고성, 철원, 양구, 평안남도 자개리 등 곳곳서 치열한 전투 끝에 산화한 호국영웅 고태문, 강승우, 김문성, 한규택 용사. 이들이 전장으로 나가기 전까지 나고 자랐던 고향에 2015년 고태문·강승우·한규택로가, 2019년엔 김문성로가 지정됐다.

혼을 불사르고 국가를 위해 기꺼이 산화한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호국영웅의 발자취가 담긴 명예도로를 찾아 뜻을 기리고 그들의 자손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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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신산공원에 설치된 호국영웅 △고태문 육군 대위 △강승우 육군 중위 △김문성 해병 중위 △한규택 해병 하사를 기리는 동상. ⓒ제주의소리

# 명예도로 위에서 찾는 아버지의 발자취

故 고태문 대위의 유일한 혈육인 고옥희(70) 씨는 세 살 때 아버지인 고 대위가 강원도 고성 351고지 전투에서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다. 핏덩이 같은 자식을 눈에 제대로 담지도 못한 채 고 대위는 그렇게 전사한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딴 명예도로가 생기고 고옥희 씨는 “아버지의 위대함을 존경하고 나 역시 조국에 이바지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고태문 대위의 딸로 태어나 행복하고 호국영웅 아버지 덕분에 삶의 보람을 많이 느낀다. 마음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담고 산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참전 용사분들이 힘들게 살고 있는데 정부서 많은 도움을 줬으면 한다. 봉사 중 참전용사 댁 밥솥을 열어보니 10일 넘은 밥이 곰팡이가 가득한 채로 있더라”라며 “심지어 반찬으로 소금을 먹고 계셨다. 얼마 안 되는 연금으로 다른 도움을 못 받고 있어 힘든 삶을 가까스로 이어가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 씨 남편 윤두호(70, 제주불교방송 사장) 씨는 “건군 60주년 당시 명장으로 선정되는 등 호국영웅 장인어른 덕분에 늘 자부심을 안고 산다”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호국정신을 심어주고 참전용사들의 공적을 기리고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일일이 모아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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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고태문 대위의 유일한 피붙이 고옥희 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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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강승우 중위의 아들 강응봉 씨. ⓒ제주의소리

故 강승우 중위의 아들 강응봉(70) 씨 역시 세 살 때 아버지가 그 유명한 백마고지 전투에서 산화했다. 제주도의 시작을 알리는 시흥리 바다서 뛰놀던 어린 자식을 남겨둔 채 떠나간 것. 강응봉 씨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돌아가신 뒤에 많이 전해 들었다고 했다. 

강응봉 씨는 “동네 어른들이 아버지를 상당히 존경했다. 돌아가시니 안타까운 마음에 나를 주위에서 많이 아끼고 챙겨주셨다”라며 “내가 어렸을적 아버지의 훈장을 가족들이 받을 당시 모슬포 공군부대서 주둔하던 미군이 조부모와 나를 데리러 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고 회상했다.

이어 명예도로에 대해 “아버지가 꿈을 안고 뛰놀던 이곳에서 다시 뵙게 돼 덧없는 영광과 영관을 받게 돼 감사하다. 돌아오셔서 감사하다”며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은 당시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겠나. 나와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아버지의 영광을 내가 누리고 있다 생각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계셨던 시흥리를 호국안보마을로 지정해 뜻을 기리고 호국영웅들의 뜻을 기려줬으면 한다”며 “더불어 최근 충혼묘지를 만들고 있는데 역사관이 없다. 역사관을 지어 전장서 산화한 그들을 기억하는 공간이 생겼으면 한다. 둘레길이나 공원 등 쉼터를 조성해 참배와 더불어 많은 사람이 찾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키도 했다.

# 고태문로,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故 고태문 육군대위. ⓒ제주의소리
故 고태문 육군 대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호국영웅 故 고태문 대위(1929.01~1952.11.10)가 살았던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엔 해안도로를 따라 ‘고태문로’가 조성돼 있다. 한동리 1694번지에서부터 8-12번지까지 2.4km 구간이다. 

고 대위는 한국전쟁이 벌어진 1950년 10월 육군 소위로 임관해 강원도 양구 펀치볼 전투에 참전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 중대장이던 고 대위는 1952년 11월 10일 강원도 고성 351고지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고지를 사수하며 중대원을 철수시키고 적을 저지하다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진지를 고수하라’는 명령을 남기며 자신을 희생해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으로 고 대위는 1952년 1월 화랑무공훈장, 10월 21일 충무무공훈장을 수훈했다. 같은 해 11월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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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고태문 육군 대위 명예도로를 알리는 표지석. ⓒ제주의소리

# 강승우로,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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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강승우 육군 중위. ⓒ제주의소리

호국영웅 故 강승우 중위(1930.11~1952.10.12)의 명예도로 ‘강승우로’는 용사의 고향인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에 조성됐다. 시흥리 1270-6번지부터 210번지까지 1.6km에 달하는 구간이다.

강 중위는 1951년 12월 육군 소위로 임관해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인 1952년 10월 12일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 전투에서 수류탄을 무장한 채 부하 소대원(오규봉, 안영권 일병)과 함께 TNT와 박격포탄, 수류탄을 집어 들어 육탄 돌진해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산화했다. 

‘단 한치의 땅도 물러설 수 없다’고 외친 그의 희생 덕분에 육군은 백마고지 탈환에 성공,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이런 강 중위의 희생을 높이 사 미국은 1953년 5월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은성무공훈장에 강 중위를 추서했다. 이어 한국서 을지무공훈장, 1계급 특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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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강승우 육군 중위 명예도로를 알리는 표지석. ⓒ제주의소리

# 김문성로, 서귀포시 신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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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문성 해병대 중위. ⓒ제주의소리

호국영웅 故 김문성 중위(1930.08~1951.06.08)를 기린 명예도로 ‘김문성로’는 최근인 지난해야 지정됐다. 서귀포시 신효동 241-4번지부터 하효동 750-8번지에 이르는 남선동산로 750m다. 최근 지정된 바람에 표지석이 없어 오는 10월 제주보훈청서 세울 예정이다.

김 중위는 1950년 8월 해병간부후보 3기로 입대해 이듬해 3월 소위로 임관했다. 이어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강원도 양구군 도솔산 지구전투에서 소대원을 이끌다 적탄에 전사했다. 솔선수범의 자세로 선두에 이끌다 전사한 김 중위를 본 소대원들은 격분해 총돌격을 감행, 도솔산 탈환에 성공했다. 

미군도 성공하지 못했던 난공불락 요새인 도솔산 목표 탈환에 기여하며 무적해병의 신화를 만든 김 중위의 희생을 기려 정부는 2012년 12월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수훈했다. 그의 모교인 제주고등학교(전 제주농업중학교)엔 그의 뜻을 기리는 추념비와 공원이 만들어졌다.

표지석이 아직 설치되지 않은 서귀포시 신효동 故 김문성 해병대 중위 명예도로 '김문성로'. 오는 10월 공사를 마무리하고 제막식이 열릴 예정이다.

# 한규택로,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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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규택 해병대 하사. ⓒ제주의소리

호국영웅 故 한규택 하사(1930.04~1950.11.20) 명예도로 ‘한규택로’는 그가 살았던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 있다. 상귀리 385-5번지서부터 하귀2리 1908-2번지인 하귀초등학교까지 1.3km 구간이 그를 기리는 도로다. 

한 하사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해병대 3기로 입대해 그해 11월 20일 평안남도 자개리 전투 중 적 기관총을 파괴하다 가슴에 적탄을 맞고 장렬히 산화했다. 그는 전투 당시 왼 어깨 관통상을 입고도 ‘아직 나에게는 오른팔이 있다’고 외치며 적 기관총 2정을 파괴하고 다른 기관총을 파괴하려는 순간 전사한 것이다.

해병 정신으로 무장한 그가 몸을 아끼지 않고 희생한 덕분에 철수 작전서 희생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는 평이 따른다. 한 상병은 이 전투로 1995년 지금의 하사인 삼등병조로 1계급 특진 추서되고 2006년 6월 충무무공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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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 있는 故 한규택 해병대 하사 명예도로 '한규택로'를 알리는 표지석. 그는 '나에게는 아직 오른 팔이 있다'는 말과 함께 적진으로 뛰어들어 장렬히 전사했다. ⓒ제주의소리

호국영웅 명예도로 부여사업에 대해 강만희 제주보훈청장은 “명예도로 부여 사업은 전쟁기념관에서 지정하는 이달의 호국영웅 중 제주 출신으로 선정된 네 분에 대한 희생정신과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진됐다”며 “제주 출신 호국영웅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이름과 업적을 기억하고 알림으로써 전쟁을 겪지 못한 젊은 세대에 애국정신을 함양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전장으로 뛰어들어 꽃다운 나이 산화한 네 명의 호국영웅들은 명예도로 지정과 더불어 전쟁기념사업회가 선정하는 호국영웅 100인에도 선정됐다. 2012년엔 제주시 신산공원과 각 모교에도 흉상이 설립되는 등 그 희생의 뜻을 기리고 있다.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무심결에 지나가는 길 위, 호국영웅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표지석은 점점 사람들의 시선서 멀어지고 있다. 우리가 관심갖고 그들을 기리지 않는다면 몸을 바친 호국영웅들의 희생이 빛바랜 추억으로 잊힐 수 있다.

우리가 이 땅 위에 발 딛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조국을 위해 혼을 불사른 선대의 희생 덕분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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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고태문 대위의 어린 시절(사진 왼쪽)과 초상화.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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