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표류하는 제주학생인권조례](상) 순기능 묻히고 학습권-교권침해 등 '찬반 공방' 격화

지난 9월15일 오전 제주도의회 정문 앞에서 조례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제정연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9월15일 오전 제주도의회 정문 앞에서 조례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제정연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학생들의 보편적 인권이 학교 생활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인권 조례안(제주학생인권조례)'을 놓고 찬반 갈등이 뜨겁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의 기능과 내용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는 외면한채 표피적 찬반 논란만 반복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제주학생인권조례는 지난 3월 제주도의회에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달라는 1002명의 청원 서명부가 제출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제주도의회 고은실 의원(정의당)이 대표발의했고, 22명의 의원이 이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는 곧 장외전 양상으로 번졌다. 제387회 임시회를 앞두고 찬반 양 측은 하루가 멀다하고 성명-논평-보도자료 등을 쏟아내며 혼탁 양상을 띄고 있다. 학생인권이 진영 논리에 소비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 역시 조례 상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오는 25일까지 진행되는 임시회 회기 중 다뤄질지 여부는 교육현장의 주요 관심사가 됐다.

◇ 5개 지역 도입된 학생인권조례...논란 문항 조정한 제주

제주학생인권조례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 △폭력과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정보의 권리 △양심·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자치와 참여의 권리 △복지에 관한 권리 △징계 등 절차에서의 권리 △소수 학생의 권리 △인권교육 및 인권실천계획 등에 관한 사항 △학생인권상담 및 인권침해의 구제에 관한 사항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타 시도에서 일찍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기반으로 한다.

현재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은 경기도를 비롯해 광주, 서울, 전북, 충남 등 총 5곳이다. 경기도 2010년, 광주 2011년, 서울 2012년, 전북 2013년으로, 올해 6월 조례가 통과된 충남을 제외하면 꽤 오랜기간 동안 교육지형에 뿌리내려 왔다.

각 지역의 학생인권조례는 대동소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제주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학생인권조례 제정의 경우 새로운 시도가 아님은 물론, 이미 시기적으로도 늦은 셈이다.

제주의 경우 논란이 우려되는 핵심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타 시도의 선례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일부 조정했다. 종교계에서 학교 내 동성애 조장을 이유로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제주에는 빠졌다.

학생의 인권 침해에 대한 상담과 구제 및 인권교육 담당하게 될 학생인권옹호관도 복수를 임명토록 한 타 시도와 달리 제주의 경우 한 명만을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 "교권 침해-학습권 저하-동성애 조장" 5424명 서명한 반대 청원

반대 단체들이 주장하는 핵심 쟁점은 '교권 침해', '학습권 저하', '동성애 조장' 등이다. 최근 제주도의회에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5424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이 제출됐다.

조례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성적 지향' 문구가 빠져있지만, 조례안의 문구가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준용하고 있는 만큼 동성애를 옹호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구 자체에서는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도 조례 문항을 근거로 한 상위법이 성적지향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8월 31일 오후 제주도의회 앞에서 열린 제주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기자회견. ⓒ제주의소리
지난 8월 31일 오후 제주도의회 앞에서 열린 제주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기자회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학생들에게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 정책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아직 미성숙하고 분별력이 약한 미성년자들에게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청소년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교원이 지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로까지 번지고 있다. 학생이 반발할 것에 위축돼 교원들이 제대로 된 지도관리에 임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대 단체들은 학생에게 과도한 권리를 부여해 학생통제가 어렵고, 교사들이 학생을 제재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를 것으로 우려했다. 그 근거로 학생인권조례가 도입된 전후로 서울, 경기 등의 최근 교권침해 현황을 제시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교권침해 건수를 살펴보면 서울의 경우 2009년 430건에서 2013년 1318건, 경기도의 경우 2009년 131건에서 2013년 1291건으로 증가했다. 반대 단체들은 교권침해 중에서도 교원에 대한 폭언, 욕설, 수업방해 등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건수가 96%를 차지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전국적으로 기초학력 미달 사례가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역에서 가장 높다는 점도 학습권 저하의 근거로 들었다. 각 시도교육청별 중고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2013년은 서울 1위, 경기 2위, 전북 3위였고, 2014년에도 서울 1위, 전북 2위, 경기 4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권침해 건수 증가나 기초학력 미달사례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는 직접적 상관 관계의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학생인권조례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제주교육학부모연대 신혜정 대표는 "제주 교육현장에서 마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것처럼 부르짖고 있지만,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을 상대로 할 때 얼마나 조심스러워하는지 모른다. 이미 지금도 통제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는데 학생인권조례까지 통과된 이후에는 학교 현장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질지는 불 보듯 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학습권 저하? 근거 없어...동성애 조장? 확대해석"

학생인권조례 찬성 진영의 입장은 다르다. 먼저 두발 복장 등이 자유화되면 생활지도가 안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이미 학교 현장에서 학생 참여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실질적인 기준이 마련되고 있음을 주장했다. 법령 또한 학교규칙의 제·개정 시 학교장 의견을 충분히 반영토록 했다고 반박했다.

수업방해 시 학생이 지도에 불응할 경우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라도 대안적 지도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뉴얼에 따른 단계적 분리 지도, 학부모 면담, 맞춤형 대안교육기관 위탁 등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찬성 측의 경우 애초에 학생인권과 교권은 상충되는 지점이 없다고 판단했다. 교권침해는 시스템으로 다뤄야 할 사안이지 학생인권을 억압해서 회복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반대 측이 제시한 교권침해 데이터에 대해서도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침해의 상관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교권침해 건수가 서울과 경기도에서 증가한 것과 같이 강원도와 같은 비조례 지역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실제 강원지역 교권침해 건수는 2009년 46건에서  2013년 281건으로 증가했다. 서울보다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즉, 교권침해 사례가 증가하는 것은 사회적 흐름에 의한 것일 뿐,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악영향으로 판단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동성애가 조장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조례에 대한 과대해석이라고 맞섰다. 찬성 측은 이미 논란이 일 것을 우려해 조례 상에 문구를 삭제해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학습권 저하에 지적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자료를 제시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기 전후의 대학수학능력시험 평균성적에 따르면 2011학년도 서울·광주·경기·전북 등 조례지역 평균 수능 점수는 언어 101.7점, 수리가 100.8점, 수리나 101.2점, 외국어 101.6점으로, 비조례지역 평균 점수인 언어 100.9점, 수리가 99.4점, 수리나 100.2점, 외국어 100.3점 보다 모두 높았다.

2017년에도 조례도입 지역 평균 수능 점수는 언어 99.4점, 수리가 99.8점, 수리나 99.6점, 외국어 99점으로, 비조례지역 평균 점수인 언어 97.8점, 수리가 96.9점, 수리나 99.3점, 외국어 97.1점보다 모두 높았다. 오히려 조례를 도입한 지역의 평균점수가 더 높았다. 또한 평균 점수 차이가 도입 초기인 2011년보다 도입후 6년이나 지난 2017년에는 평균점수가 더 높아진 결과가 나왔다.

사실상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한 지역에서 시행 전에 비해 성적이 낮아졌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 없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결국 학생인권조례 도입과 학습권 저하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 쟁점에 가려진 조례 순기능...반복되는 학생권 침해

무엇보다 첨예한 쟁점에만 몰두한 나머지 조례의 순기능이 가려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제주학생인권조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했지만, 실제 학교생활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소한 사례'들에 대해서도 집중했다.

한 예로 조례 제5조에는 '학생은 정규교과 시간 이외 교육활동을 자유롭게 선택해 학습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학교장 등은 학생에게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종례 이후 실시되는 정규교과 이외의 교육활동을 강요해서는 아니 되며, 정규교과 이외의 교육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고 덧붙였다. 상식적이고 당연한 문구다.

다만,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아직도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강요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강제해서는 안된다는 상식이 애초에 학교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었던 사안이다. 

학생들을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잘못 인식하는 해묵은 정서가 반영됐던 터다. '학생의 의사에 반해 정규교육과정 이외의 교육활동을 강요함으로써 학생의 휴식을 취할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휴식을 취할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 등도 궤를 같이 한다.

소지품 검사, 두발규제, 명찰 착용여부, 복장규정 등의 내용도 조례 문항에 포함됐다. 시시콜콜하다고까지 볼 수 있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피해 사례들이다.

제주학생인권조례는 이미 상위법에 보장돼 있는 내용들을 보완하는 수준의 조례로, 조례가 통과된다고 해서 당장 일선 학교 현장이 급변할 지는 미지수다. 이미 조례가 통과된 타 지역의 선례를 봐도 그렇다.

조례를 대표발의한 고은실 의원은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당사자들이 청원을 한 것이다. 이미 학교에는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조례가 있고 학생자치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인권보장이 되지 않고는 무의미하다. 당연한 시대적 흐름에 맞춰가는 것"이라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고 의원은 "최초 조례 제정해달라는 청원이 들어와 채택을 했고, 의원 발의를 통해 입법예고됐다. 이제와서 반대 청원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안건을 다루지 않는 것은 의회의 자기모순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공동발의한 의원들이 22명이다. 의원의 입법발의의 영역을 넘나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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