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89. 산기슭에도 사람이 살고, 물기슭에도 사람이 산다

* 산썹 : 산기슭 두메 산골
* 물썹 : 물기슭, 바닷가, 해변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요소다. 특히 주(住)는 사람이 삶을 부려 생활하는 주거(住居)로, 삼시세끼 먹고 철철이 입어 사람으로서 체면을 꾸리는 옷에 조금도 덜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입으며 산다 해도 집이 없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노릇이다. 여건이 되지 않으면 비바람과 눈보라는 막고 살 수 있는 ‘집’이라는 건축물은 기본이다. 그게 움막이라 해도 몸을 쉴 수 있는 구조물은 있어야 한다. 그것의 크고 작고 또는 살기에 편하고 편하지 않고는 다음 문제다.

제주에는 예전에 산촌에 살다 바닷가로 내려오는 취락 이동이 현저했던 것 같다. 이유는 물이었다. 그것도 먹는 물, 식수. 한라산 기슭에서 바다로 내린 지세가 매우 경사가 가팔라 큰비가 내려도 금세 지하로 스미거나 바닷가로 흘러내린다. 제주처럼 배수가 잘되는 지역이 없다는 말엔 이렇게 확실한 지형적인 근거가 있다.

예전이라고 집터를 구하기 쉬웠겠는가. 산골에 살다 낯선 바닷가에 내려와 집을 짓자니 터가 없어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자랐던 세화리엔 일가족이 사는 집들 몇 채가 바닷가에 그냥 잇대어 있었다. 새카만 바다 돌을 깎아 터를 닦았단 흔적이 그래도 남아 있었다. 

사철 물결 소리에 휩싸였던 그 집, 이건 결코 낭만이 아니다.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초저녁부터 물이 마당까지 차올라 가족이 이웃으로 대피해야 했다. 비단 백중날만이 아니었다. 일 년 열두 잘 쳐들어오는 바닷물과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다. 그 집 막내아들이 나하고 같은 반이었는데, 용케도 학교에 잘 다녔다. 다 큰 후, 고향에 간 길에 바닷가를 거닐며 기억 속의 그 집을 찾았더니 없었다. 불편한 집에 더 이상 머물겠는가.

산에 터 잡은 사람 두메산골에 집을 지어 삶을 차렸고, 바닷가를 찾은 사람은 바닷물에 들어오는 터에도 집을 올려 살았던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지 않은가. 산기슭이든 물기슭이든 살아야겠다는 의욕을 가지면 어찌어찌 살 수 있었다는 얘기다.

환경이 열악하다고 삶을 멈출 수는 없다.

‘산썹에도 사름이 살곡, 물썹에도 사름이 산다.’

이 말을 몇 번 중얼거리는데, 제주의 마을들이 바닷가를 빙 돌아 이뤄진 게 눈앞에 생생하다. 물이 귀하니 바다 쪽으로 내려온 것인데.

옛날 우물에 물이 얼마나 귀했는가. 가뭄이 들었다 하면 바닥이 나곤 했다. 그러면 동네 허벅이며 대바지는 우물 앞에 줄을 섰지 않았는가. 물 받은 차례를 기다리던 진풍경이었다. 쫄쫄쫄쫄 솟아 나오던 그 물, 물 한 허벅 채워 오려면 해가 중천에 솟아 있었으니….

60년대 수도가 설치되어 물이 하늘을 향해 콸콸 솟구쳤던 일이 생각난다. 얼마나 감격했던가.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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