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심규호 제주문화포럼 이사장

어느 화창한 휴일 몇 몇 (사)제주문화포럼 회원들이 모여 익숙하지만 딱히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 힘든 곳으로 향했다. 첫 번째는 제주 삼성혈, 그리고 두 번째는 제주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지였다. 

<시민이 새로 쓰는 관광안내판>.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지원을 받아 사단법인 제주문화포럼이 제주 시내 대표 관광지 두 곳을 선정하여 실시한 일종의 탐구활동이다. 어느 곳에 살든 자신이 사는 곳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일은 주민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 수밖에 없으니 그러하고, 함께 사는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향유하되 응당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그러하며, 개인의 삶이 전체 삶의 수준에 연동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간단히 말해 한 사회의 문화수준은 개인의 문화수준에 달린 것이며, 개인의 문화수준은 전체 주민의 문화수준을 제고시키거나 또는 저하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제주 삼성혈과 제주목 관아지의 안내판이 중요 탐구 대상이었는데, 여기서는 독립해서 다루지 않고 전체적으로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기로 한다.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이른바 관광안내판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였다. 사실 이는 고민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제주 삼성혈이든 제주목 관아지든 찾아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자. 두 곳의 관광안내판은 크게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네 가지 나랏말로 되어 있다. 각기 자신에게 맞는 언어로 된 안내판을 읽도록 되어 있는 셈이다. 언어만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똑같다. 다시 말해 한국인이 안내판을 통해 알고 싶은 것을 일본인이나 중국인, 그리고 영어권의 사람들도 똑같이 알고 싶을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글이란 독자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고, 목적에 따라 문체가 다르며, 소개 대상에 따라 내용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본 건물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4칸, 가구는 2고주 7량 구조, 공포는 외1출목 이익공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면적은 155.82㎡(47.13평)이다.”(제주목관아 홍화각 안내판) 일반적으로 정면이 5칸이고 측면이 4칸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무슨 고주, 공포, 이익공 등에 이르면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한자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중문판에는 해당 내용이 빠져 있다. 아이가 이를 보았다면 아마도 아버지에게 물어볼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아비가 알 턱이 있겠는가? 졸지에 아비는 무식한 티를 낸 셈이고, 어쩌면 버럭 화를 냈을 지도 모른다. 왜 모르는 걸 물어보니! 

말인 즉 안내판은 누구나 읽어도, 최소한 기본 교육을 받은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적혀 있어야 한다. 만약 어려운 낱말이 있다면 자세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이는 외국어 안내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삼성혈이라고 하면 제주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Samseonghyeol’이라고 하면 제아무리 영어를 잘 아는 이라도 전혀 알 수 없다. 다행히 괄호 안에 ‘Caves of the Three Clans’라고 적혀 있으니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Caves’이다. ‘Clan’이야 씨족이나 도당(徒黨)의 뜻이니 그렇다고 할지라도 ‘Cave’는 일반적으로 동굴이니 ‘혈(穴)’, 즉 구멍과 맞지 않는다. 굳이 번역하려면 ‘Holes’가 맞지 않을까? 그것도 ‘Holy Holes’라고 하면 더 좋겠다. 그나마 이 경우는 설명이 붙어 있지만 다른 경우는 의역(意譯) 없이 음역만 한 것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JeGiGo’, ‘SuJikSa’, ‘Huangsugi’, ‘Banuhsa’ 등은 무슨 말일까? 이는 제주목 관아를 소개하는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안내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알다시피 한국어 문장은 순수 한글만이 아니라 한자가 많이 섞여 있다. 한자는 사실 한국인이 보아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그저 음역만 해놓으면 이런 형태가 된다.
 
“as well as research of the literature-including Tamnasunryeokdo, The Comprehensive Bibliography of Tamanbangyeong, and……” '탐라순력도'는 대충 안다고 할지라도 '탐라방영총람'이라고 하면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Comprehensive Bibliography”라고 하여 ‘총람(總覽)’의 뜻을 풀이해준 부분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탐라방영’도 의역을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여하간 영어로 음역하면 그저 외계어일 뿐이다. 그러니 영어에서는 굳이 이를 쓸 필요가 없다. 굳이 쓰려면 의역을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같은 한자(비록 간체자이기는 하지만)를 쓰는 중문 안내판은 오히려 편리하다. 그런데 중문판의 경우 문제가 따로 있다. 

중국어는 한자로 이루어져 있어 자칫 한국식 한자 나열로 인해 문장이 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중국어를 배운 한국인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济州牧官衙是朝鲜时代统治济州地方的中心地,分布在包括观德亭在内周边一带,据推测这里在耽罗国时代已经有了星主厅等主要官衙设施。官衙设旅在1434年(世宗16年)被一场大火全部化为灰烬,第二年1435年建筑物的整体框架被重新建起,朝鲜时代一直对它进行增建和改筑。是,济州牧官衙在日本帝国主义统治时期被大量毁坏坼除,现在除了观德亭以外,已经看不到其他建筑物的痕迹了。” 

몇 가지 틀린 글자(设旅-设施, 是-但是,坼除-拆除)가 없는 것은 아니나 중국어를 배운 한국인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인들의 경우 이렇게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주목 관아를 관람하고 인터넷에 사진과 소개의 글을 남긴 중국인은 이렇게 썼다. 

“济州牧官衙,英文名:Mok Office,韩文名:제주목관아。位于韩国济州特别自治道济州市三徒2洞的济州牧官衙是朝鲜时代(1392年至1910年)济州岛的政治及行政中心。它被韩国政府于1993年3月31日指定为第380号史迹。与观德亭(第322号史迹)(上右图)被认为是济州岛上最重要的历史遗迹,也是最受瞩目的历史遗迹。济州牧官衙曾在1434年因大火被烧毁,后被重建,1910年8月至1945年8月15日日本占领济州岛,对其再次造成了大面积的损毁,除了牧衙外的观德亭,牧衙中的建筑基本被毁坏殆尽。直到1991年至1998年期间,经过了4次发掘和复原工作终于获得了足够的资料,同时参考着相关遗物和文献经过反复研究考证终于在2002年12月济州牧官衙得以复原。”
 
영문명을 ‘Mok Office’라고 쓴 것이 웃기기는 하지만 중국인이 쓴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충실하다. 이에 비해 중문 번역안내문은 어색하다. 그렇다면 굳이 어색하게 번역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한국어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자. 안내문은 관람객이 보든 안 보든 관람 대상의 또 다른 얼굴이다. 못생겼든 잘생겼든 반듯한 것이 중요하다. 제주목 관아지는 안내판을 전체적으로 통일시켜 새롭게 단장해서 산뜻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한국어 문장이다. 앞에서 인용한 제주목 관아의 내용을 포함해 몇 가지를 살펴보자.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 관아는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이미 탐라국 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분포’는 널리 퍼져 있다는 말이니 관아가 널리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 어색하다. 그냥 자리하고 있다거나 위치하고 있다고 하면 된다. 성주청은 星主, 즉 별나라 주인인 탐라국의 국왕이 사는 곳이니 관아가 아니라 대궐인 셈이다.) 

“청심당(淸心堂)은 목사가 마음을 맑게 하여 정사를 본다는 의미의 건물이다. 1704년에 이희태 목사가 창건하였다. 그러나 1726년에 군기청이 불타자 이 건물을 이건(移建)하여 세병헌(洗兵軒)으로 삼았다. 본래 이 건물 주변에는 꽃나무가 울창하였는데, 사방(四方)으로 대나무를 심고 그 가운데는 흰 모래를 깔았다고 한다.”
(청심당이 마음을 맑게 하는 집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정사를 보는 곳인지, 세병(洗兵, 두보의 시 「세병마행洗兵馬行」에 나오는 ‘挽河洗兵’에서 따온 말), 즉 병기를 씻으며 평화를 다짐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다. 또한 꽃나무가 울창했다는데, 왜 굳이 대나무를 심고 심지어 흰 모래를 깔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참고로 세병헌 또는 세병관은 무관의 집무실이다.)

“제주목 관아는 정치와 행정, 문화를 아우르는 복합공간으로서 기능은 물론 경노, 입신양명의 실현 등 민관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열린 광장으로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제주목 관아가 언제 문화를 아우르는 ‘복합공간’이 되었는지? 과연 민간인들이 쉽게 드나들며 제주목과 열띤 토론을 벌이는 ‘열린 광장’이었는지 알 수 없다.) 

“내아(內衙)는 일반적으로 지방 수령의 처첩이 거처하는 내당을 가리킨다. 제주목의 경우 목사의 처첩들이 와서 거처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간혹 부임한 목사의 친인척이 유람을 하기 위해 방문하거나 자제들이 안부를 묻기 위해 찾아왔을 때 거처하였다.” 
(내아는 수령의 가족들이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그런데 굳이 ‘처첩’이라고 한 까닭이 무엇일까? 보아하니 그리 큰 것 같지도 않던데, 처첩이 한 방에서 같이 생활한다는 뜻인가? 그냥 “가족들이 거처하는 곳이나 제주목은 가족들이 따라오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인척이 방문했을 경우 사용했다.” 정도로 써도 무방하다.) 

“삼성혈-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삼신인이 이곳에서 태어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오곡의 종자와 가축을 가지고 온 벽랑국 삼공주를 맞이하면서부터 농경생활이 비롯되었으며, 탐라왕국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삼성혈이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라면 애월읍에 있는 빌레못 동굴유적지(중기구석기, 기원전 10만년-4만년)나 삼양동 선사 유적지(기원전 3세기 이전 청동기 시대유적)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수렵생활을 하면서 가축은 기르지 않았을까?)

한국어 안내판의 문제는 단순히 문장이 어색하다는 것 외에도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미 학계에서 규명되거나 검증된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꼭 알려주었으면 하는 것은 빠져 있는 대신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될 것은 적혀 있다. 한국어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번역문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그러니 한국어 안내판을 시정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겠는가?
 
세 번째는 한국어 외에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있는 안내판은 있지만 시각이나 청각 장애우를 위한 안내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큰 문제이다.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아울러 제주의 것이니 제주말도 함께 써주는 것은 어떨지 고민해도 좋을 듯하다. 특히 삼성혈의 경우 육지와 다른 탐라왕국과 관련이 있으니 탐라어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네 번째, 안내판을 만드는 것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함이다. 그렇다고 보다 친절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안내문은 그것을 보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만든 사람이거나 주인 또는 관리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주인 또는 관리자는 관람객의 처지에서 보고 느끼고 적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친절일 것이다. 

탐구활동을 하면서 지적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일단 이것으로 접고 특별히 제안하고 싶은 몇 가지를 첨언하고자 한다. 

첫째, 제주목 관아지나 제주 삼성혈이나 관람객이 요구하는 바, 즉 보고 싶거나 알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제주목 관아지에서는 옛날 제주의 최고 정치중심지가 어떠했는지를 알고 싶을 것이고, 새롭게 복원했다고 하니 어떻게 복원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도 알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어떨까? 삼성혈에서는 고, 양, 부 삼성의 유래와 신화의 상관성, 교과서에도 나오는 난생설화와 달리 ‘혈’에서 나온 까닭(또는 ‘동(洞)’이 아니라 ‘혈’인 까닭), 탐라왕국에 대한 이야기, 남아 있는 한문 유물에 대한 상세한 해석 등이 궁금할 것이다. 관람객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해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둘째, 관광지는 주로 외지 사람들(외국사람을 포함해서)이 찾아와 구경하는 곳이다. 그들에게 안내판은 생소한 유적, 유물 등을 통해 현지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시작이 어긋나면 끄트머리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첫걸음을 제대로 떼야 하는 이유이다. 외국에 나갔을 때 한글로 된 안내판을 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유려한 한국어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지라도 한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오자(誤字)가 많거나 문장 자체가 심히 틀린 경우 실소(失笑)하거나 심하면 화가 나기도 한다. 이왕할거면 잘 하지! 그 마음이나 이 마음이나 어찌 다르겠는가? 

심규호 제주문화포럼 이사장(전 제주국제대 총장)
심규호 제주문화포럼 이사장(전 제주국제대 총장)

셋째, 유적지는 교육의 현장이다. 특히 옛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제주 삼성혈이나 제주목 관아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많은 어린 학생들이 그곳에서 역사를 배우고, 옛날을 상상하며, 자부심을 느끼거나 행복에 젖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옛 사람들의 흔적, 예를 들어 그들이 남긴 시문 등을 번역해서 볼 수 있도록 해주면 어떨까? 제주에는 많지는 않지만 곳곳마다 옛 사람들이 남긴 시문이 적지 않다. 문제는 그들의 시문이 책이나 논문이 도서관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꺼내 햇볕을 보여주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말이 길었다. 글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음을 하고자 한다. 

1990년대 초반 어느 인쇄소에 갔다가 우연히 제주를 소개하는 팸플릿을 보았다. 영문 가운데 ‘하트 룸’이란 말이 눈에 띄어 한글을 살펴보았더니 ‘심방’이었다.

하! 그렇구나. 이렇게 번역될 수도 있구나. 번역이 이처럼 어려운 것이구나.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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