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르포] 코로나19 시국 고립된 제주 장애인-노인들...'코로나 블루' 우려 현실로

제주시내 모 장애인 복지시설 입구에 내걸린 '외부인 출입금지' 안내문. 

올해 초 느닷없이 들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는 우리 모두에게서 수 많은 일상을 앗아갔다.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려야 하는 방역수칙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 됐고, 이에 더해 사람과의 만남 자체를 금기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앞둔 대한민국의 서글픈 모습이다.

더욱 불편한 것은 장애인·노약자 등 소위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이들이 마주하게 된 기막힌 현실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있던 이들은 물리적으로까지 철저하게 고립되면서 힘겨운 명절 연휴를 앞두고 있다.

추석 명절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찾은 제주시내 한 장애인 복지시설.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이 곳은 코로나19가 발발한 올해 2월부터 사실상 외부와 단절됐다. 

진입로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시설 내 외부인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큼직하게 걸려있었다. 건물 입구에도 '외부인의 원내 출입을 통제한다. 건물 내부로 진입하지 말고 절차를 거쳐달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관계자의 협조에 의해 먼 발치에서 건너본 시설 내부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간혹 바깥 공기를 쐬는 이용자들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실내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방역지침에 의해 가족이나 지인의 발걸음도 거의 끊겼다. 가족모임도 가급적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봉사활동은 언감생심이다.

시설 내부를 청소하거나 입소자들을 목욕시켜주는 등의 노력봉사는 물론, 이미용봉사·의료수선과 같은 전문봉사, 동아리 활동 등의 프로그램 봉사까지 모두 일시에 중단됐다. 일주일에 한번 외출 삼아 다녀오곤 했던 종교활동 역시 반년째 끊겼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찾은 제주시내 모 장애인 복지시설 내 텅 빈 자원봉사자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한적한 제주시내 모 장애인 복지시설. 

봉사활동은 단순히 노동력을 요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입소자들과 봉사자 간의 정서적인 교감이 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 누군가에게는 손 한번 마주잡으며 서로를 격려의 말을 주고받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었지만, 그마저 모두 단절된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용자들은 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나가고 싶다'는 이들을 말리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됐지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이 시설의 호소다.

금전적인 후원 역시 얼어붙기는 마찬가지다. 얇아진 주머니 사정에 의해 매달 정기적으로 이뤄지던 후원도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지난해에 비해 줄어든 후원 규모는 20~30%. 시설 관계자는 오히려 "아직까지 70% 이상의 후원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며 애써 웃어보였다.

명절이 되면 지역 단체·기업 등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곤 했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요원해졌다. 이전 같았으면 '도움이 필요하다'며 넌지시 요청이라도 해봤겠지만, 시국이 시국이라 이마저도 망설여지는 요즘이다.

시설 관계자는 "그래도 명절이 되면 입소자들이 한 번씩 집에 다녀오면서 재충전의 기회로 삼곤 했지만, 올해는 그것도 못하게 됐다. 몇몇 부모님들도 자녀를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는데, 외부에 다녀오면 격리를 시켜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시설 종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명절 연휴에도 어디 가지말고 집에만 있다가 바로 출근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신경써야 할 일들이 훨씬 많아져 힘들어하고 있지만, 잘 견뎌내주고 있는 모습"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노인들 역시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자다.

코로나19로 인해 고립되면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제주시내 홀로 사는 노인 가구. 
코로나19로 인해 고립되면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제주시내 홀로 사는 노인 가구. 

제주시 조천읍에 거주하는 고모(82) 할머니는 올해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 내외의 제주 방문을 만류했다. 굳이 찾아오겠다는 것을 한사코 말렸지만, 내심 섭섭한 마음이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 할머니는 "명절 때마다 내려오지는 못하고 보통 한 해에 설이나 추석 중 한 번은 찾아오곤 했다. 작년 설에 왔다가 올해 설에는 오지 못해서 추석에는 보는가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라며 "육지에서 내려온다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보는 눈이 좋지 않다. 아쉽지만 이번엔 참는 것이 맞다"고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제주지역의 홀로 사는 노인가구는 줄지 않고 있다. 제주시의 경우 2017년 주민등록상 독거노인 가구수는 17348명, 2019년 17663명으로 늘었고, 실제 독거노인 가구수는 2017년 7880명, 2019년 7648명으로 집계됐다.

서귀포시는 주민등록상 독거노인은 2017년 8406명에서 2019년 9659명, 실제 독거노인 수는 2017년 3830명에서 2019년 4716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홀로 사는 노인은 가족, 친구, 이웃 등 사회적 관계망과의 교류가 단절되고 사회적 역할 상실에 따른 고립감으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인해 홀로 사는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대폭 제한된 상태다.

홀로 사는 노인을 돌보는 복지센터 관계자는 "추석이면 육지에 나가있는 가족들이나 자녀분들이나 손자·손녀도 만날 수 있는 기회인데,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권고를 해서 많이들 아쉬워하신다. 코로나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이해를 하시면서도 섭섭한 마음을 내비치시곤 한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고립되면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제주시내 홀로 사는 노인 가구. 

센터 차원에서 주 1회 어르신을 방문하고 주 2회 이상 전화통화를 하는 서비스는 유지해 왔다. 개중에는 '이 시기에 꼭 찾아와야겠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주위를 꾸준히 둘러봐줘야 할 심각성이 있는 대상자들이 많았다는 것이 센터의 판단이었다.

이들 역시 최소한의 돌봄만 이뤄지고 있을 뿐, 정상적인 상황에서 누릴 수 있었던 야외 나들이나 체험 프로그램 등이 일절 중단되면서 어르신들의 고립감이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센터 관계자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혼자 지내시는 날이 많다보니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이 커졌다. 이런 부분들로 인해 우울감을 호소하는 일이 현장을 다니다보면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체 프로그램으로 야채·식물 키우기, 뜨개질 등을 하도록 권유하고 있지만, 정서적인 공허함은 채워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이 추석 때 뭐라도 할 수 있도록 사회자원을 꾸준히 발굴하고 있다. 제수용품이나 송편, 생필품 같은 것들도 지원했고, 추석 연휴 기간에도 고위험군이나 가족들이 없는 분들은 생활지원사 분들이 방문할 것"이라며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어려운 시기인만큼 전화를 통해서라도 가족들이 안부를 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제주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로 모두가 어렵겠지만, 장애인 노약자 등의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아직도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내려는 도움의 손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명절을 통해서라도 이들을 위한 꾸준한 관심을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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