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미 시인이 생애 첫 시집 《허당녀 염탐 보고서》(국학자료원 새미)를 펴냈다.

뜻 깊은 첫 결과물에서 시인은 60여편의 작품을 꾹꾹 눌러 담았다. 수거함을 가득 채운 빈 병들을 보며 “젊은 남자의 애절함”, “어느 가장의 못다한 푸념”, “할머니의 손맛”을 떠올리고, 하얀 목련꽃에서는 새 신부의 수줍음을 상상한다.

김정미는 자신과 주변의 일상을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으로부터 느끼는 잔잔한 감정의 파도에서는 긴 여운도 느껴진다. 

씹지 마세요
김정미

치과에 갔다
밤새 쑤셔대던 어금니
신경은 차단시키면 그만이지만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인지라
씹어대는
그 어떤 힘에도 밀려나지 않게
단단히 심지를 박고 홈을 메워야 했어

시궁창으로부터 해방이라며
오십 대 여인이 씌웠다고 말할 때
어떤 아저씨는 박았다고 말하고
어떤 할아버지는
심으러 왔다고 말했어

입안에도 먹고 살기 위한 밭이 있어
힘없는 이 갈아 엎는 작업
한창이라며
찢어지지 않을 만큼
입 벌리고 있어야 작업이 종료 된대요

작업 끝 막판은
주의사항에 귀 기울여야 해요

오늘은 제발 씹지 마세요
적소에
겨우 살려놨거든요

단소리 
김정미

네, 라는 대답
아끼지 마라
우는 아기 달래 듯
맛있는 것 듬뿍듬뿍 사다드려라
시어른께
이 두 가지만 게을리 하지 마라

그래야
널 시집보낸 이 어미
밤잠에 시달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마른 헛기침 소리는
잠든 내 눈과 귀를 깨우며
실눈 벌겋게 부풀린다

이제는
자식의 표정만으로도
귀동냥이 충분하다는 어머니
어머니의 잔소리 더 늘었다

얘야, 
나이 들면 힘들다
얘야, 
아프지 마라

작품 해설을 쓴 양영길 문학평론가는 “김정미 시인의 시에는 긴장미가 있다. 과감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상황 전개가 극적이라 할 만큼 생동감이 있다. 매사에 적극적인 경험이 시인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일련의 탄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시인은 일종의 희극적 분노를 유쾌한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소개한다.

시인은 자기소개 글에서 “덜컥 어미를 잃었다. 덜컥 첫 시집을 내고 말았다. 단단해지기 위해서”라는 짧지만 의미심장한 소감을 남겼다.

김정미는 2017년 격월간지 '문학광장'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현재 돌과바람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국학자료원 새미, 143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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