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진가 강정효 새 사진집 ‘폭낭-제주의 마을 지킴이’ 발간

기술 발전에 힘입어 누구나 손쉽게 고화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덕분에 ‘사진작가’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감이나 세간의 인식·평가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전문가를 구분 짓는 문턱이 점차 허물지는 과정에서, 제주의 사진가 강정효는 본인 사진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중요한 역할을 맡아 잠시 멈출지라도 전시·발간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모습과 무심코 사용되는 사진의 출처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자세를 보면 그가 본인 결과물에 얼마 큰 애착을 지니고 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강정효의 자신감, 자부심의 원천은 그가 손에 쥔 카메라 앵글이 제주 역사, 자연 그리고 문화를 고집스럽게 지켜보고 있어서다. 제주4.3, 한라산, 돌담, 거욱대, 무속 같은 소재가 누군가에게는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때로는 외면하거나 불편할 지라도 그는 특유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기자생활을 접고 뒤늦게 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에서 관광개발을 공부했습니다. 그 당시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관광에 부정적인 사람이 왜 관광개발을 전공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했습니다. 관광으로부터 관광을 보호하기 위해 관광개발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제주를 지키고 그 가치를 보호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 강정효 《제주, 아름다움 너머》 가운데 일부

제주민예총 이사장,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상임공동대표 같은 만만치 않은 역할을 맡고 제주4.3 진상규명, 한라산 케이블카 개발계획, 백록담 남벽 등산로 개설을 비롯한 굵직굵직한 사안과 각종 기록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탄탄한 지식과 경험의 밑바탕을 쌓아놨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발간한 새 사진집 《폭낭-제주의 마을 지킴이》(한그루)은 제주 마을 구석구석 세워져 있는 팽나무를 주목한 책이다. 1995년부터 2020년까지 25년 시간 동안 섬 전역을 둘러보며 촬영한 팽나무 사진을 모았다.

무엇보다 저자는 친숙한 피사체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에 주목한다. 마을 사랑방 역할을 대신한 ‘댓돌’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제주도민들과 호흡해온 무속으로서 ‘신목(神木)’, 아픈 역사의 상처를 묵묵히 지켜본 ‘4.3의 기억’으로 구분했다.

제공=한그루. 

“어린 시절 나의 주된 놀이터는 폭낭 아래”라는 반가운 기억을 소환하듯 아담한 올레와 함께 어우러진 폭낭 풍경은 정겹게 다가온다. 대를 이은 염원들이 켜켜이 쌓인 신목은 나무뿐만 아니라 영험함이 물씬 풍기는 무구와 고유한 풍경까지 함께 살펴보게 된다.   

한쪽이 잘려나가도 나머지 줄기가 생명력을 이어가는 금악리 웃동네(2017)와 가시리 안좌동(2020), 남은 건 오직 드높은 나무뿐인 잃어버린 마을 세화리 다랑쉬(2012)와 영남동(2013), 꼿꼿하게 서있는 무성한 대나무와 폭낭이 상처를 가리고 있는 와흘리 종남마을(2008)과 해안당 리생이(2020) 등. 피와 눈물, 울음·총소리로 가득찼던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하는 폭낭은 아무런 말이 없다. 

강정효가 폭낭을 통해 말하고 싶은 문화(신목), 공동체(댓돌), 역사(4.3) 모두 2020년 오늘 날 개발과 자본의 논리에 쓸려나가거나 잊히는 존재들이다. 책 말미 설명을 통해 “마을 공동체의 상징인 폭낭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수명을 다해 쓰러지는 나무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개발바람에 의해 사라지는 나무를 볼 때는 더더욱 그렇다. 더디더라도 이웃과 더불어 사는, 나아가 자연까지도 삶의 일부로 여겼던 그런 사회가 그립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폭낭으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한 물리적 회귀가 아니다. 상징적인 존재를 통해 우리에게 멀어진 제주다움을 기억하고 되찾자는 당부에 가깝다. 

제공=한그루. ⓒ제주의소리
동복리 본향당, 2008. 제공=한그루. ⓒ제주의소리
제공=한그루. ⓒ제주의소리
어음리 빌레못, 2012. 제공=한그루. ⓒ제주의소리
제공=한그루. ⓒ제주의소리
북촌리 당팟, 2020. 제공=한그루. ⓒ제주의소리

《폭낭-제주의 마을 지킴이》는 208쪽에 실린 모든 사진이 흑백이다. 나름의 운치를 느끼면서 동시에 피사체의 형상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20여 년 전 사진을 보며 구도나 감각을 비교하는 것도 소소한 읽을거리다. 

“대나무 마디로 만든 총에 열매를 넣어 ‘팽’ 소리가 나서 팽나무로 불리게 됐다는 어원 보다는, 폭이 열리는 나무이기에 폭낭으로 부르는 제주의 표기법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얘기다. 폭낭은 우리나라 남부지방과 제주도에 많이 자란다. 때문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제주에서 부르는 이름, 즉 폭낭이 표준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는 저자의 제안을 갈무리로 덧붙인다.

강정효는 1965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기자, 사진가, 산악인, 제주대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사)제주민예총 이사장, (사)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상임공동대표(이사장)를 역임했다.

16회의 사진개인전을 열었고, 저서로 《제주는 지금》(1991), 《섬땅의 연가》(1996), 《화산섬 돌 이야기》(2000), 《한라산》(2003), 《제주 거욱대》(2008), 《대지예술 제주》(2011), 《바람이 쌓은 제주돌담》(2015), 《할로영산 보롬웃도》(2015), 《한라산 이야기》(2016), 《제주 아름다움 너머)(2020) 등을 펴냈다.

공동 작업으로 《한라산 등반개발사》(2006), 《일본군진지동굴사진집》(2006), 《정상의 사나이 고상돈》(2008), 《뼈와 굿》(2008), 《제주신당조사보고서Ⅰ·Ⅱ》(2008, 2009), 《제주의 돌담》(2009), 《제주세계자연유산의 가치를 빛낸 선각자들》(2009), 《제주도서연감》(2010), 《제주4·3문학지도Ⅰ·Ⅱ》(2011, 2012), 《제주큰굿》(2011, 2012, 2017), 《4·3으로 떠난 땅 4·3으로 되밟다》(2013),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관광 도입방안Ⅰ·Ⅱ》(2013, 2014) 등 제주의 가치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208쪽, 한그루,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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