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6) 제주시 애월읍 보배책방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산길을 간다, 말없이
호올로 산길을 간다.

해는 져서 새 소리 그치고
짐숭의 발자취 그윽이 들리는

산길을 간다, 말없이
밤에 호올로 산길을 간다. (후략)

- 양주동 시 ‘산길’ 일부 -

으레 큰길 혹은 마을 안에 있을 거로 생각했던 책방은 어디에 있을까. 장수물을 지나고, 마을 중심지에 다다르기도 전 내비게이션은 좌회전하란다. 인가가 별로 없다.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만의 상상을 앞세우며 달리는데 어디선가 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바리톤 윤치호의 ‘산길’이란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나도 몰래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으로 까딱까딱 운전대를 두드리며 같이 흥얼거린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입구 세움 간판.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장전, 부모님께선 장밧이라고 불렀다. 긴 밭이라는 뜻으로 한자를 차용하여 표기한 것이 장전(長田)이다. 고려 시대 대몽항쟁 군사들과 제주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며 마을이 형성되었다. 어릴 적, 장전리로 시집간 외사촌 언니를 찾아 종종 놀러 가던 곳이라 익숙하기도 했다. 

“3보배의 발견”
누구 하나 찾지 않을 것 같은 외딴곳, 양주동 님의 시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책방도 외롭지 않을까. 책들조차 울고 있을 것만 같다. 외진 곳에 있어서만은 아니다. 현재 동네 책방을 꾸려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이런 염려를 안고 책방에 들어서는데, “정보배입니다.” 인사하는 책방지기의 이름 뒤로 또르랑 또르랑 구르는 목소리와 또랑또랑 빛나는 눈동자가 따랐다. 책방지기의 이름과 목소리, 눈, 3보배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주저하며 찾았던 나의 기분이 밝아졌다. 전등을 켜지 않아도 되는 천장은 시야까지 훤히 밝혀 주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책방지기 정보배 씨는 하가리에서 1년 동안 책방을 했었다. 문제는 계약 기간을 마치면서다. 장소도 장소지만 임대료가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아이가 집에 있다 보니 뭘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이런 책방지기가 안타까웠는지, 티 룸으로 쓰던 공간을 사용해 보겠느냐는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올 6월부터 이곳에 다시 문을 열었다. 비록 외진 곳이지만 부담 없는 월세에 독립된 공간, 시간도 자유로워서 좋다. 하지만 아이가 문제다. 아직은 어린 데다가 학교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염려와 달리 판매대에 꽂힌 책들은 당당했다. 언제고 손님 맞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책방 안을 둘러보는 순간, 왜인지는 모르겠다. 퍼뜩 1920년대 신경향파가 떠올랐다. 맨 먼저 조지오웰의 ‘1984’가 먼저 눈에 띄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안. 천정이 뚫려 있어 전등을 켜지 않아도 환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가치를 지지하는 글을 써왔다. 《동물농장》의 성공에 힘입어 조지 오웰은 정치적‧예술적 목적을 융합한 새로운 소설을 썼다. 1948년에 탈고하면서 뒷자리를 바꾸어 《1984》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며 유작이자 대표작이 된 《1984》는 사회 비판을 담은 소설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적‧사회적인 예언서로도 읽힌다.

“고민”
책방지기 정보배 씨는 출판사에서 20년 넘게 인문교양서 편집기획자로 일했다. 자연히 그쪽 책들을 더 많이 읽게 되었다. 인문교양서들을 중심으로 셀렉하게 된 이유다.

책방이 작다 보니 다양한 주제를 갖춰 놓지는 못했다. 그래도 장르는 다 있다. 판매를 위해서 팔리는 책도 갖다 놔야 했다. 그러나 오래도록 인문교양서 편집기획자로 일해 왔던 책방지기 입장에선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좋은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책이란 주관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인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동네 책방의 한 대표가 찾아왔다. 그가 책방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문학책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충고도 받아들일 겸, 재오픈 하면서 책방지기는 사업자의 마인드로 나가보고자 했다. 그렇게 소위 잘나간다는 책, 즉 ‘문학동네’ 책들을 진열해 놓았다.

독자층의 80%가 문학이고 보면, 문학책이 없어서는 안 되기도 했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실패 경험이 거의 없다. 실패 경험조차도 문학작품에서 등장인물을 통해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야기 속에는 항상 고난과 실패를 겪는 인물이 나온다. 책 속에서 우리는 인물을 통해 실패하고, 일어서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다양하게 경험한다. 여기서 재미와 감동은 물론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력도 얻는다.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는 문학이 필수다.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굳이 ‘문학동네’ 책을 갖다 놔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안 일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올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실렸던 작가의 작품이 문제가 된 것이다. 불쾌한 사건이었다. 출판사가 독자나 책 파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방지기가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서도 굳이 팔아보겠다고 갖다 놨더니 이런 사달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책방지기도 꼭 보고 싶은 문학책이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책을 팔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이 움츠러들었다. 쉬운 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책방지기의 말을 듣다 보니 왜였을까. 느닷없이 조선 건국의 최고 공신인 정도전이 생각났다. 권문세족으로 인하여 썩을 대로 썩었던 고려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의 핵심은 ‘맹자’였다. 맹자는 군주보다 백성을 우선시했다. 맹자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정도전은,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왕도 바뀔 수 있다며 관료 정치를 주장했다. 백성을 챙기지 못한 왕은 군주의 자격이 없다고 본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상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이는 많은 깨우침을 준다. 어떤 책을 읽었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에겐 근원적으로 잘못되어도 잘못된 것인 줄 모르는 것들이 많다. 권력이나 명예 쪽으로 달려야 성공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사실이다. 고대사에서부터 현대사까지, 장난질 같은 찌라시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발목잡기로 나도는 거짓 뉴스를 골라낼 수 있는 능력 또한 부족하다. 과거엔 대학생들도 시위를 많이 했다. 제도의 모순에 대한 변화를 요구함이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기득권층이 되면 도로아미타불인 경우도 허다하다. 청렴결백을 추구하던 사림이 조선을 혼란하게 만든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런 세상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책, 바로 인문학 교양서가 아닐까.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벽에 걸린 립살리스가 하얀 꽃을 피우며 책방지기를 응원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이라는 자영업”
정보배 씨가 출판사에 근무할 때, ‘큐레이션을 위주로 하는 책방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인들은 아서라, 손사래 쳤다. 책을 팔았을 때 마진이란 게 얼만지 잘 알기 때문이다. 동네 책방이나 큐레이션을 하는 책방에 대해서 보편적일 수가 없던 때였다. 반대하는 게 당연했다.

제주에 내려올 때도 책만 파는 책방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책방을 해도, 그 공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했다. 정보배 씨에겐 어떤 일을 해도 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방 겸 일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종일 노동하고도 운영비 등을 건질 수 있는 책방이 과연 얼마나 될까. 카페를 겸하지 않는 서점이라면 더더욱 힘들다. 온종일 책방을 지키고 있어도 최저 임금을 벌기가 힘들다. 그야말로 동네 책방이 지속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니, 위험하다. 자본이 있고 취향을 즐기는 거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생업과 함께 가치적인 일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뛰어들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유통 구조상 책만 팔며 살아가기란 무리란 뜻이다. 물론 대형 서점이라면 희망은 있다. 규모의 경제학으로 가면 어느 정도 벌 수 있다. 카페가 유명하고, 구색 맞추기로 책을 갖다 놔도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 않고 동네 책방으로 돈을 번다? 이는 생각하기 힘들다. 책만 팔아서는 세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수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정보배 씨는 책방만을 하게 되었다. 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시도조차 못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처음 하가리 주제넘은 서점 자리에서 시작할 땐 세가 없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안 일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고향도 서울도 아닌 제주”
제주에 정착 후 정보배 씨는 마을 도서관에서 3년 가까이 사서로 자원봉사를 해왔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 활동했지만 쉽지 않았다. 살아온 환경의 차이가 사이에 끼어들기 때문이다. 가끔은 억울한 일이 있어도 대꾸를 못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대화상대로 받아들여 주질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리적 오류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그게 아니라고 반박했을 때, 왜 아닌지가 아니라 “마을회관 짓는데 너희들이 돈 10원 보탠 적 있어?” 식이다. 소통의 길을 찾기가 힘들다. 

정보배 씨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제주 시골 마을로 온 게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딸의 학교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힘들다. 때로는 좀 더 화해 가능한 시골 마을로 떠나고도 싶다. 하지만 그 또한 쉬운 게 아니다. 모든 게 환경결정론에 따를 수는 없다. 그래도 동네 책방이 하나둘 늘어나다 보면 의식의 변화도 생겨날 테고, 맹목적인 밀어붙임 또한 조금씩 사라지지 않을까. 책이 파고드는 힘은 크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책방지기로서는 더 없는 보람이다.

책방지기의 바람은, 공공성을 인정하여 운영비라도 지원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동네 책방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고객들이 왔을 때 큐레이션 해 줄 수 있는 이들은 나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큐레이션 하는 책들은 더 나아가 우리 삶을 큐레이션 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책방지기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하는 의문들이 진행 중인 것이다. 

책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책을 기획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은 서울이 훨씬 많다. 하지만 서울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즐기기는 좋지만, 늘 떠돌아다니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고향이 아닌 까닭이다. 제주로 왔지만, 이곳은 정보배 씨에게 서울도 고향도 아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구석에 놓인 난로가 책방 분위기를 멋스럽게 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서른일곱에 처음 만난 제주, 제주는 외국에서 본 그 어느 곳보다 좋았다. 그때 이미 정보배 씨는 제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굳혔다. 낭만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밑그림은 있었다. 프리랜서로 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도시적인, 소비하기 위해 되풀이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건 생각뿐이었다.

그 후 10년, 남편이 제주에 직장을 마련하며 내려왔다. 외벌이로 살자고 했지만, 녹록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 그동안 해마다 제주에 왔었고, 현지인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처는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부딪치는 건 달랐다.

어느 순간 제주도도 돈벌이의 장소, 기회의 장소로 변했다. 그러다 보니 녹록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래도 언젠가 정보배 씨가 꿈꾸는 세상이 올 것이라 믿는다. 비록 주제가 무겁다고 할지라도, 인문학 분야의 책이 고전으로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많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시대와 사회 분위기가 한몫하는 것이다.

지난 7월과 8월, ‘제주책방예술제 책섬’ 행사가 있었다. 이때 책방지기는 어르신 그림책 저자 여덟 분의 북 토크를 준비했다. 작년 봄부터 초겨울까지, 어르신들은 매주 경로당에서 설문대어린이도서관과 함께 작업했다. 그 결과 12월에 그림책이 출간되었고, 어르신 그림책 학교 졸업식도 거행했다. 책방지기는 마을 도서관 사서들과 함께 어르신 저자들의 북 콘서트를 계획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하지 못했다. 안타까웠던 차에 책방예술제 사업을 지원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소통의 부재 때문이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고객이 구매한 책을 건네는 책방지기 정보배 씨.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잘못 끼워진 첫 단추”
소통의 부재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움직일수록 시골 사람들에겐 나대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었다. 직함조차 없이 일하는 건 오해를 불러오기 충분했다. 이는 제주만이 아닌 시골의 보편적인 문화일 것이다. 그 옛날 한창 안방을 달구던 MBC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만 봐도 그렇다. 드라마 속 인물들을 보면 항상 토닥토닥하면서 부대끼고 화해하는 게 삶이다. 물론 제주만의 독자적으로 형성된 문화가 있는 건 사실이다. 동‧식물 자체가 희귀종이 많은 이유와 같은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정보배 씨는 고향을 떠나 제주에 와서 경험한 시골이 전부였다. 개개인이 만났을 땐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발톱을 드러낼 일도 없다. 하지만 마을 이름을 사용할 땐 달랐다. 모든 건 마을 정책으로 봤어야 했다.

이질적인 요소도 있을 것이다. 제주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불안의 요소를 안고 사는 사람도 많다. 일부 돈 많은 사람이 제주의 땅을 차지하면서 육지 사람들에 대한 눈빛이 곱지 않은 면도 있다. 아메리카나 호주의 원주민들이 서구 열강에 의해 무너진 것처럼 알게 모르게 걱정이며 불신도 생겼을 것이다.

그래도 정보배 씨에게 다행인 건, 독서모임이나 책방 모임 구성원 절반은 도민이라는 사실이다. 이주민들만 모였으면 공허했을 것이다. 독서모임이나 책방 모임에서는 ‘맞다, 틀리다.’를 이야기하기 전에 구성원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듣게 된다. 책을 계기로 소통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지난날들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때론 위안을 받기도 한다. 새로운 길을 찾기도 한다. 책이란 매개체를 두고 정보배 씨는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다.

스무 살 때, 고향이 마산인 정보배 씨는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서울이 낯설었던 만큼 제주는 낯설지 않다. 살 만큼 살았고 사람도 만날 만큼 만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도 대처하며 살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좀 더 귀 기울여 듣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했다. 접촉하지 않으면 갈등도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시간 들여가며 장소를 마련하고 연락하는 이유, 접촉하는 기회를 늘리고 싶어서다. 좋은 바이러스를 주고받고 싶은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한구석을 장식하고 있는 소품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한구석을 장식하고 있는 소품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기분 좋은 경험들”
보배책방엔 독립출판물이나 예쁘고 말랑말랑한 책은 별로 없다. 그래도 아이들 책은 많다. 작년엔 책방이 학교 근처라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아이들은 낯설어하면서도 책방 분위기를 익혀갔다. 책방이 주는 이미지만으로도 도움 된다는 사실, 골라준 책을 읽고 재미있었다는 아이들을 마주하면 기분이 좋았다. 

올여름 ‘책섬 오프닝’ 때, 책방지기는 단골손님 모녀를 모셨다. 그때 단골손님은 책방이 근처에 있어 좋은 점을, 딸은 책방지기가 소개한 책 중에서 읽은 걸 소개했다. 또 하나는 읽고 싶은 책을 라디오처럼 신청해서 읽는 거였다. 이때 책방지기 딸은 ‘빨간 머리 앤’을 맛깔스럽게 읽어냈다. 그 모습이 ‘KBS 제주 뉴스’를 통해 노출되기도 했다. 동안의 아픔을 잊을 수 있는 기분 좋은 경험들이었다.

책방지기랑 이야기하다 보니 유독 눈에 익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였다. 지난 3월, 코로나19로 한 달 동안 휴강하면서 6학년 이상 아이들과 최승필의 ‘공부머리 독서법’ 읽기를 진행했다. 이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읽기 도전자를 모았다. 600쪽에 가까운 분량, 아홉 명이 도전했다.

하루 5쪽 분량을 정해서 내가 발문을 만들기도 하고, 아이들이 문제를 발췌하기도 했다. 꾸준함의 힘, 시작하니까 되었다. 물론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고 포기한 아이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거의 읽었다. 현재 세 아이는 1회 완독에 성공했다. 덕분에 나도 읽을 수 있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앞에 놓인 두 개의 의자. 가을 햇살을 즐기기에 딱 좋은 날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진짜 괜찮은 만화”
여섯째 중 막내인 책방지기는 언니들이 결혼하고 오빠가 입대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방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였다. 처음으로 생긴 방,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 설렘을 모를 것이다. 실없이 히죽히죽 웃게 되고, 자꾸만 책상 앞에 앉고 싶어진다. 잠도 오지 않는다. 책방지기도 그랬다. 설렘을 안고 책상 정리를 하다 보면 10시가 되었다. 그때부터 공부하리라 맘먹고 책상 앞에 앉으면 엄마는 자라고 하신다. 이런저런 핑계로 공부하진 못했다. 그래도 만화는 열심히 읽었다. 나름 좋다는 대학에도 진학했다. 

보편적으로 우리는 만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책방지기의 견해는 다르다. 책방지기는 만화 평론가가 꿈일 정도로 어릴 때 만화를 많이 읽었다. 중고등학교 때도 용돈을 받으면 무조건 순정만화 잡지를 샀다. 책방지기의 엄마는 지금도 그때 잡지를 모두 다락에 쌓아 두셨다. 엄마한테 책은 다 귀중한 거였다. 그 영향이었을까, 정보배 씨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만화책을 사 모았다. 

책방지기가 말하는 만화의 종류는 미국에서 등장한 그래픽노블에서부터 다양했다. 한국은 물론 일본엔 문학작품 수준을 뛰어넘는 만화가 많다고도 했다. ‘만화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고 소개해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게 책방지기의 생각이다. 대부분 만화를 읽지 않고 자란 사람이 ‘만화는 무조건 나쁘다.’고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땐, 만화는 읽다 들키면 불량 학생으로 치부 받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학습만화가 대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장전리 건나물 연못에 핀 백련.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위기철 작가의 장편소설 ‘아홉 살 인생’을 떠올리면 난 얼굴이 붉어진다. 지금껏 꼭꼭 숨기고 꺼내지 않던 그 시절이 소설의 분위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숙제를 안 해갔다. 그때 선생님은 아랫도리를 발가벗기고 운동장을 돌게 했다. 화장실에 가서 코에 똥을 묻히게 하고는 운동장을 돌게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고 정신병자였다. 교사가 잘못되었음에도 잘못인 줄 모르고 있었다. 그땐, 숙제를 안 한 내가 무조건 잘못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오늘날까지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책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방을 나와 건나물 연못으로 갔다. 여름이 떠나가는 자리, 백련으로 가득했던 연못에도 가을이 흐른다. 인간과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파헤칠 수 있는 인문학, 잘 팔린다는 책보다는 ‘너무 안 읽히니까, 좋은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는 책방지기의 말이 이명처럼 귓가에 맴돈다. 

“보배책방은”
쓸쓸하고 외로우신가요? 책을 읽고 싶어도 고르지 못하고 계신가요? 산길을 떠올리는 그곳, 보배책방을 찾아보세요.

찾아가는 길 : 제주시 애월읍 장유길 42. 
오픈 시간 : 월~금 오전 11시~오후 4시, 토요일 11시~오후 6시, 목요일과 일요일 휴무. 
함께하는 길 : blog.naver.com/bobaebooks, www.instagram.com/bobae_books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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