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38) fine 훌륭한, 뛰어난

fine [fain] ɑ. 훌륭한, 뛰어난; 좋은, 굉장한, 멋진
‘유종의 미’를 튼내며
(‘유종의 미’를 떠올리며)

fine의 fin은 ‘끝(=end/border)’이란 뜻을 지닌다. 이 fin에서 나온 낱말로는 final ‘마지막의’, infinite ‘끝없는’, finish ‘끝내다’, refined ‘세련된’, define ‘규정하다’ 등이 있다. fine의 어원적 의미는 ‘끝이 잘 마무리된’이다. 우리말에 ‘유종(有終)의 미’라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영어의 fine도 모든 일에서의 깔끔한 마무리를 강조하고 있다.

나는 배웠다. 어떤 기생충보다 무섭고 무서운 기생충은 ‘대충’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대충이었다. 손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두기도 대충, 생각도 대충... 이번 사태에도 너무 안이했다. 이제는 나 스스로 면역주치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환경문제나 생태계의 파괴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또다시 찾아올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환경지킴이가 되어야 한다. 나는 확실히 배웠다. 공생과 공존이 상생(相生)의 길이라는 것을.  

-송길원의 ‘나는 배웠다’ 중에서-

환곡(還穀)의 폐단이 극에 달했던 조선 후기에 서유망(1766-1813)이라는 어사(御使)가 있었다. 전라도 암행어사로 임명된 서유망이 보성군 관내로 들어서자 당시 군수였던 권사억을 원망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환곡을 받아들일 때는 본래 곡식(grain)으로 받아야 하는데도 보성군에서는 만석에 가까운 곡식을 모두 돈으로 바꾸어 내게 했고, 그로 인해 백성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어 백성들이 곡식으로 내게 해달라고 호소문(letter of plea)을 써서 관아로 올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보성군수 권사억은 백성들의 고통과 호소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호소문을 쓴 백성들을 잡아들여 곤장을 때려 옥에 가두는 등 모진 형벌을 내렸고 그들로부터 사또를 모함하였다는 내용의 거짓 진술서(statement)까지 받아둔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서유망은 즉시 보성관아에 출두해 권사억의 죄를 다스렸다. 그리고는 창고를 조사해보니 그나마 비상용(emergency use)으로 쌓아두는 양곡들도 다른 고을보다 품질이 형편없이 거칠고 안 좋았다. “쌀에 웬 흙이 이렇게 많이 섞여있단 말이냐? 여봐라. 쌀 열석을 뽑아서 지금 당장 되질을 해 보거라.” 서유망이 무작위로 쌀 열석을 골라 되질을 시켜 헤아려보니 1석의 곡식이 겨우 6두(斗), 7두에 불과했다. “태반이 빈껍데기 아니냐? 안 되겠다. 여봐라, 이것들을 키로 까불어 보아라.” 서유망은 다시 창고지기에게 키질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빈껍데기를 날려 보내고 보니 남은 것은 채 절반도 되지 않았다. 먹을 수 있는 알곡이 절반도 안 되었던 것이다. 장부상으로는 보성군 내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곡식이 총 2만 석에 가까웠지만 이처럼 일일이 키질을 해보면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얼마나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 많은 곡식을 일일이 조사하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일, 서유망은 창고 앞에 서서 고민에 빠져들었다. 암행어사로서 이 정도 조사하고 적발했으면 뒷일은 상부기관에 맡기고 가도 될 일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물어물 넘어가기라도 하면 그 해로움이 바로 백성들에게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서유망은 우선 보성군수 권사억을 그 자리에서 파면(dismissal)시키고 즉시 다른 고을로 떠났다. 그리고는 인근 고을의 사또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 보성관아 창고 안의 모든 곡식을 모조리 키로 까불어서 그 결과를 보고하게 했다. 일주일 쯤 뒤 그 결과를 보고 받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2만 석이 넘는 곡식 중에 1/3이 썩어있거나 빈껍데기였다. 이렇게 된 이유인즉, 보성군수가 창고 관리를 엉터리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밑의 관리들이 농간을 부려 걷어 들인 쌀가마니에서 쌀은 반쯤 빼돌리고 대신 흙이나 겨를 채워 넣어 가마니를 부풀리는 눈속임을 한 것이었다. “자기가 직접 겨를 채워 넣었다고 창고지기가 자백을 하더라 이 말이지요?” 서유망은 보고서를 올린 인근 고을의 사또에게 재차 확인을 했다. “네. 그러하옵니다. 창고지기가 그렇게 빼돌린 쌀은 수령 이하 아전들에게 돌아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서유망은 이 사건을 마무리 짓고 당사자들을 엄벌에 처하는 한편 조사과정을 상세히 덧붙여 조정에 그 실태를 알렸다.

국민은 패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 행정을 펼친 서유망 어사와 같은 관료다운 관료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유종의 미는 '끝이 좋아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 '끝까지 좋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사진=Pixabay.

문제가 있는 사또에게 죄를 묻고 파면시키는 것은 암행어사의 중요한 임무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봉적(temporary) 조치에 불과할 수 있다. 이미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뒷수습(settlement)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번 출두(appearance)하고 나면 그만인 여느 암행어사들과 달리 서유망은 그 고을을 떠난 뒤에도 문제가 제대로 마무리될 때까지 계속 점검하며 결과를 보고하게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인근 고을의 사또들은 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백성들은 ‘유종의 미’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암행어사’ 중에서 요약 발췌) 

지금 우리 국민은 동일한 유형의 성폭력(sexual violence) 사건이나 안전사고(safety accident) 등이 되풀이될 때마다 서유망 어사와 같은 관료다운 관료를 그리워하고 있다. 어물쩍 대충 처리하고 넘어가는 편의적 행정(administration)이 아니라, 끝까지 철저하게 조사하여 다시는 그와 같은 폐해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fundamentally) 처방하는 상생의 행정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종의 미’는 “끝이 좋아야 한다.”를 넘어서서 “끝까지 좋아야 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게 fine이 함축하고 있는 진정한 “훌륭함”이기 때문이다.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김재원 교수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