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환경 침해’ 적극 해석…제주도, 깊이 새겨야

유럽이나 미국의 주거지역에서는 웬만하면 고층 아파트를 짓지 않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른바 ‘고층 아파트의 사회적 해악’을 다룬 글이다. 고층 아파트가 저층 아파트 보다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게 글의 요지 중 하나였다. 

즉 고층 거주자들이 ‘상대적으로’ 이웃과의 교류가 적고, 남을 도와주려는 의지나 빈도도 적다는 것이다. 

입증된 팩트임을 강조하려 함인지 선진국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지만, 정서적인 공감에 머문 걸 보면 식견 부족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는 돈을 좇는 사업자들의 욕망을 언급한 대목에 더 눈길이 갔다. 고층 아파트가 분양이 잘 된다며 이왕이면 높게 짓고 보자는 우리네 현실을 꼬집었다.  

더 나아가 글쓴이는 ‘사회 공동선의 와해’를 걱정하는 통찰을 드러냈다. 경관의 사유화는 그 밑의 문제로 뒀다. 

경중을 가리려 한 건 아니겠지만, 경관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제주도에서 만큼은 사회적 해악을 따지자면 경관의 사유화를 능가할 게 없다고 본다. 더구나 그게 최고의 해안 절경을 가리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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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중문관광단지 부영호텔 조감도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부영그룹 측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중문관광단지 내 부영호텔 건축허가 관련 소송 2건에 대해 대법원이 모두 제주도의 손을 들어주면서 소송은 일단락됐다. ⓒ제주의소리

조감도만 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주상절리로 유명한 서귀포 지삿개 해안을 앞에 두고 빙 둘러선 4동의 호텔은 ‘공공자원’을 대놓고 위협하는 듯 했다. 호텔에서 해안까지는 불과 100~150m. 호텔의 높이는 지상 8~9층으로 계획됐다.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약 1km의 해안을 막아설 판이었다. 

어떤 찬사도 아깝지 않을 주상절리 일대는 200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주상절리는 화산폭발에 의해 분출된 용암이 바닷가로 흘러와 물과 만나 급격하게 수축하면서 생성된 육각형 또는 사각형 형태의 기둥을 말한다. 이곳은 기둥 하나의 높이가 30~40m에 달하며, 그 기둥들이 만든 해안의 길이가 1km에 이른다고 하니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천만다행이다. ‘당분간은’ ‘누구나’ 이곳의 경관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부영그룹 측이 호텔 4개동에 대한 제주도의 건축허가 신청 반려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최근 대법원이 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반려 처분 당시 제주도는 환경영향평가 변경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 과정에서는 공공선의 관점에서 꽤 의미있는 메시지가 나왔다. 재판부는 제주의 지질학적 특성과 도민들의 인식변화로 인해 환경적 가치에 대한 보호가 강조되고 있다며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됐더라도 제주도는 재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입법 취지는 환경공익에 대한 보호와 함께 지역 주민들이 환경 침해를 받지 않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개별적 이익에 대한 보호까지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행정당국을 뜨끔하게 할 정도의 전향적인 내용이었다. 바야흐로 경관 향유도 일종의 천부적 권리나 다름없는 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재삿개 해안으로선 대법원의 기각 판결로 한숨 돌리게 됐지만, 경관 사유화 시도는 제주 곳곳에서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 이 참에 제주도가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돌이켜보면, 이번 분쟁의 빌미는 애초 제주도가 제공했다. 중문관광단지 2단계 지역의 건축물 높이를 최대 20m(5층)에서 35m(9층)로 완화해 준 것은 제주도였다. 개발에 목을 매던 19년 전 일이었으나, 문제 의식이라곤 없었다.    

“제주의 자연을 무분별하게 개발하려는 시도에 대해 제주도는 국내외 자본을 가리지 않고 엄정히 대처하겠다”

최종 승소 소식이 알려진 직후 원희룡 지사는 의기양양하게 ‘인허가 원칙 정립’을 선언했다. 이틀 후에는 송악산이나 부영 같은 경관 사유화 논란 등에 대해 큰 틀에서 원칙을 세우고 발표하겠다고 했다.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한 도정의 입장 정리도 시사했다. 기대하겠다.

한편으로는 우려도 있다. 어느 도정 할 것 없이 개발 및 보전과 관련한 도백의 공언이 구두선에 그친 사례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실효성 있는 후속 대책이 나와야 한다. 지삿개 해안의 경우 환경단체가 주문한 문화재보호구역 확대 추진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부영 측의 입장에서는 사업 구상이 완전히 틀어지긴 했어도, 계획 수정 후 다시 건축허가를 신청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둔감하다는 평을 들어온 법원이 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제주도는 곱씹어봐야 한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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