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제주 더불어-놀다 연극제

제주연극협회가 개최한 <제5회 제주 더불어-놀다 연극제>가 20일부터 25일까지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위기 속에 다사다난한 일정을 소화했다. 애초 ‘비대면·녹화 중계’ 방식을 선택했으나, 보건 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완화 조치로 인해, 선착순 50명에 한해 대면 공연을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참여 극단도 일부 조정되는 등 우여곡절이 제법 있었다.

이번 연극제는 2편의 창작 초연과 4편의 재현 작품으로 진행했다. 창작은 예술공간 오이의 <지랄 발광>과 퍼포먼스단 몸짓의 <혜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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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지랄 발광'을 연기한 현대영(왼쪽), 전혁준. ⓒ제주의소리

전혁준 작·연출의 <지랄 발광>은 작은 오해로 시작해 두 인물이 극단(極端)으로 치닫는 갈등을 보여준다. 알고 보면 두 사람 모두 되는 일 없이 한없이 꼬이기만 하는 비참한 인생을 사는 소시민. 팽팽하게 이어지는 갈등 끝자락, 오해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작품은 훈훈한 마무리로 정리된다. 한 시간 넘게 무대 위를 오가며 괴성을 지르는 두 남자의 ‘지랄 발광’은 삶이 나를 흔들어 놓는 고통 속에도 “나를 잃지 않는” 의지를 강조한다. <지랄 발광>의 끝매듭은 코로나19 속 분노와 우울함을 함께 겪는 이들을 위로하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동시에 어떤 이들에게는 다소 허무한 해피엔딩이라는 기시감을 선사해줄 지도 모른다.

한연경 작, 강종임 연출의 <혜린이>는 7080세대들이 크게 공감할 만 한 작품이다. 고교시절 끈끈한 우정을 계속 이어오는 노처녀들이, 오해로 끊어졌던 우정을 극적으로 다시 복구한다. ‘혜린이’는 진정한 우정을 갈구했지만 부모의 강압으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 입고 살아간다. 그런 옛 친구를 그때 그 시절처럼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은 잔잔한 여운을 선사한다. 하지만 여고, 기억상실 등 너무나 익숙한 구성·장면과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선곡 등은 몰입을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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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혜린이' 출연진. 맨 왼쪽 아랫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종임, 고지선, 김병택, 이윤주, 홍진숙, 진정아. ⓒ제주의소리

극단 파수꾼은 음악 모노드라마 <Back To Zero>, 극단 파노가리는 2인극 <동업>, 극단 가람은 심청전을 각색한 <신뺑파전>, 극단 정낭은 노부부 이야기 <3월의 눈>을 각각 공연했다. 모든 작품은 유튜브 채널 ‘제주도연극협회’에서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 선정

올해 <제주 더불어-놀다 연극제>는 창작 초연이 두 작품 포함되면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다만, 재현 가운데 몇몇은 선정 취지를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망감까지 선사했다.

정낭의 <3월의 눈>과 파노가리의 <동업>은 지난해 연말 개최한 <제28회 소극장 연극 축제>에서 공연했던 작품이다. 십분 양보해 1년 전 연극 행사에서 선보인 것을 다시 들고 올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연출, 배우, 제작진, 무대 구성에 연출의 변마저 모두 거의 동일한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답을 내리기 어렵다.

특히 정낭은 2018년 더불어-놀다 연극제, 지난해 소극장 연극 축제까지 3년 연속 제주연극협회 주최 행사에 같은 작품을 들고 왔다. 더욱이 다른 창작 활동은 전혀 없이 연극협회 행사에만 <3월의 눈>을 공연하는 모양새다. 정낭과 연극협회, 대체 어느 쪽이 더 문제인가.

파노가리 역시 의아하기는 마찬가지. 파노가리는 지난 9월 새 창작극 <개구리 왕국>을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녹화영상으로 진행한 바 있다. 낡은 무대 걸개마저 똑같이 걸고 1년 전의 <동업>을 다시 올리는 대신, 초연임에도 관객과 만나지 못한 <개구리 왕국>을 선택하는 편이 관객을 위한 자세가 아닌가. 2년 만에 연출을 바꾼 파수꾼이나 모처럼 레파토리에 변화를 준 가람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제주 더불어-놀자 연극제>는 제주시 예산을 받아 진행하는 제주연극협회 행사다. 제주 극단들에게 공연 기회와 비용을 제공하는 역할은, 특히나 어려운 코로나19 시국에서 무시할 수 없겠다. 그러나 손수 극장을 찾아가는 제주도민들에게 더 나은 결과물을 소개하는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불성실한 작품과 안일한 태도로 도민들에게 과연 제주연극의 발전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주도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제주 연극 발전에 앞장설 수 있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이번 더불어-놀다 연극제 자료집 인사말에서 제주연극협회 이상용 회장이 밝힌 말이다. 

이제 연말이면 소극장 연극 축제를 앞두고 있다. 제주연극협회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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