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 모교 서귀포여중에 기부 '감동'...클린하우스 공공근로 등 갖은 일로 장학금 마련

“매일 기도했어요. 내가 전 재산과 다름없는 돈을 내놓을 테니 이 만큼은 하고 죽게 해달라고. 내가 암에 걸리거나 이 세상에 없다면 기부조차 할 수 없으니, (기부를) 다 마치면 그때는 아파도 된다고. 어린 시절 고독하고 힘들었던 가슴앓이를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일 조금씩 돈을 모아왔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가난과 고난을 후배들은 겪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지난 10여년간 갖은 일을 하며 모은 5000만 원을 자신이 졸업한 모교 서귀포여중(3회 졸업생)에 기부한 이유순(71) 할머니. 

이 할머니는 26일 모교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교정에 내걸린 '이유순 (3회)선배님 장학금 5000만원 쾌척 - 선배님의 고귀한 사랑, 후배들이 잘 이어가겠습니다'라는 펼침막 앞에서 후배들을 향해 한손을 들어 'V'자를 그리고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클린하우스 지킴이, 서귀진성터 잔디 관리, 동사무소 공공근로 등 지난 2010년 이후 힘든 일을 해오며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기부를 위해 돈을 모아왔다. 정작 본인은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이 할머니는 서귀포가 고향으로, 서귀포와 사랑에 빠져 70평생을 독신으로 살고 있다. 더군다나 시를 쓰는 향토시인이다. 1989년 '서귀포문학' 창간호로 등단해 시를 써온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지어질 정도로 고단한 삶을 살아온 그녀다. 이 할머니는 서귀여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학비가 없어 부산에서 식모살이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그 당시에도 당장 기거할 집이 없어 친구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며 잠자리를 얻어 지내는 등 10대의 어린 나이에 이미 스스로 굴곡진 삶을 헤쳐나가야 했다. 

현재 서귀포시 천지동 클린하우스 지킴이로 근무하고 있는 이 할머니. 공공근로를 통해 일년에 500만원 씩 10년을 꼬박꼬박 모아 5000만원의 장학금을 모교인 서귀포여중에 전달하고 나니 큰 짐을 덜어낸 듯 홀가분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부 당일인 26일 늦은 오후 이유순 할머니는 내내 밝은 목소리로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나눴다. 

자신의 모교 서귀포여중에 장학금 5000만 원을 기부한 이유순 씨. 서귀포여중 3회 졸업생인 이유순 씨는 10년간 모은 돈을 후배를 위해 쾌척했다. ⓒ제주의소리
클린하우스 공공근로 등을 통해 10년간 모은 5000만원을 자신의 모교 서귀포여중에 아낌없이 쾌척한 이유순(71) 할머니. 서귀포여중 3회 졸업생인 이유순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학업을 제대로 잇지 못했던 자신의 떠올리며 후배들은 자신의 꿈을 잘 펼칠수 있도록 작은 정성이라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언제부턴가 삶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매일 술과 담배에 의존하고 살았죠. 그러다가 교복 입은 후배들을 보고 예전 10대 때의 제가 생각나면서 이건 아니구나 싶어서 좋아하던 술 담배를 모두 끊고 비장한 각오로 기부를 생각하게 됐죠.”

중학교 졸업 당시 상급 학교에 진학할 학비가 부족해 부산으로 넘어가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돈을 벌어온 이 할머니. 그렇게 힘들게 번 돈도 친언니의 결혼에 보탰다.

그 바람에 입학금만 겨우 마련해 1년 후 제주로 돌아와 학비 면제가 가능한 투포환 선수로 전국학도체전에 참여하며 제주여고에 진학했다. 그러나 발랄해야 할 여고 생활은 부끄러움의 연속이었다.

교복 살 돈이 없어 졸업생들이 입다 버린 교복을 주워 입고, 언니가 입던 옷이 교복과 비슷해 그 옷을 입고 등교해야 했다가 교복 착용 문제로 선생님께 혼이 날 때면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동창이 옆 교실에서 보고 있어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그 와중에도 제주시에서의 삶을 위해 친구 집에 얹혀살며 빨래, 식사준비 등 모든 집안일을 해주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학비 면제 유지 조건을 지키지 못해 학교를 떠나게 된 그는 신부님과 수녀님이 계신 신성여고를 찾아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다시 신성여고에 입학한 이 할머니는 그때의 삶에 대해 ‘가장 고독하고 어려웠던 가슴앓이’라고 회고했다. 

힘든 삶 속에서도 굳세게 살아온 이 할머니는 자신과 같은 삶을 후배들만큼은 이어가지 않도록 굳은 마음을 갖게 됐다.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품팔이’로만 살아온 고된 삶 속에서도 나를 버리는 아픔을 딛고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이 할머니의 기부는 서귀여중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010년경 자신이 다녔던 신성여고에서 성물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1300만 원을 기부하고, 2년마다 국민연금을 모아 학생들을 위해 책을 구입해 약 4300권의 책을 전달했다.

그 선행이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진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힘든 시절을 견뎌온 기억을 떠올려 다시 서귀포여중에 5000만 원을 기부하게 된 것. 

ⓒ제주의소리
'사랑은 나를 버리는 아픔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마더 테레사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겨 성인의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이유순 씨. ⓒ제주의소리

“10년 전부터 후배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검질도 매고 잔디 관리도 하고 클린하우스 관리도 하면서 모은 돈을 기부했죠.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마더 테레사의 명언이 있어요. ‘사랑은 나를 버리는 아픔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이죠.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제가 그들의 희망이 되듯 그들 역시 제가 살아갈 수 있는 희망입니다.”

이유순 할머니는 기부를 위해 찾은 서귀포여중 교정에서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했다. 학교 측에서 감사의 의미를 담아 교정의 잘 보이는 곳에 현수막을 커다랗게 준비한 것. ‘선배님의 고귀한 사랑 후배들이 잘 이어가겠습니다’라고 적힌 글은 그녀에게 큰 보람이 됐다. 

이 할머니는 “행복한 날이었다. 현수막을 보고 교장을 찾아가 기부와 더불어 유일한 한 가지 약속을 당부했다. 1년에 한 번씩 장학금을 지급할 때는 내 손으로 지급하게 해달라고. 사랑하는 후배들을 계속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남은 생을 살고 싶어 그런 조건을 걸었다”고 말했다. 

매해 후배를 만나기 위해 어떻게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품고 싶었단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모으는 돈 역시 미련 없이 후배들을 위해 내놓겠다는 다짐과 함께. 

교실에서 나오는 재학생들과 대화를 하며 이유순 씨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들과 같은 후배가 있어서 행복했다. 너희를 꼭 만나야 하는 그리움 하나로 그 모든 일이 힘들지 않았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내 희망이다”라고 했단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주어진 삶의 기회가 계속 닿는다면 지금처럼 돈을 모아 기부하고 싶다. 후배들을 만나러 간다는 희망 하나로 열심히 살겠다”면서 “부족한 기부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나를 보며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그게 내 자랑이자 긍지다”라고 밝혔다.

마침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책 ‘제주올레여행 놀멍 쉬멍 걸으멍’에 이유순 할머니에 대한 글이 있다. '날품 팔아 시 쓰는 유순 언니'편이다. 서 이사장은 유순 언니(이유순 님)를 ‘사람을 좋아해 퍼주기 좋아하고 섬세하고 서정적인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섬세함을 바탕으로 이유순 할머니는 오늘도 시를 써 내려가고 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와도 같은 이유순 할머니의 선행이 쌀쌀해진 늦가을 제주를 덥히고 있다. 그의 바람이 건강하고 오랫동안 제주 전역에 불어갈 수 있길 바라본다. 시 쓰며 나누는 삶을 사는 그녀는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다.  

연산홍
이유순

진달래 화전 덩이로 핀
천지연 가는 길목
봄바람 일어도
내 평생 너의 처마저고리
입은 적 없네

밤바람은 시샘으로
너의 가슴 후비지만
향기는 새벽별 타고
님 계신 서편에
초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연산홍아
삶이 일장춘몽이라
손바닥 거울 들고 
꽃잎을 따다
토닥토닥 순이 얼굴에
분을 바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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