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동일 사건 기소 어려워...형사소송법상 무죄는 재심청구 대상 아니

대법원도 고유정의 의붓아들 사건을 무죄로 판단했다. 확정 판결에 따라 새로운 핵심 증거가 나오더라도 국내 형사법 체계상 고유정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해졌다.

대법원 제1부(주심 대법관 이기택)는 살인 및 사체손괴, 은닉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고유정의 상고심에서 검찰과 피고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의 형을 5일 확정했다.

전 남편 살인 사건은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이 인정된다며 유죄로 판단했지만 의붓아들 살인 혐의는 사망원인의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봤다.

대법원 확정 판결로 여섯 살 배기의 한 맺힌 죽음은 사실상 미제로 남게 됐다. 제3의 인물 등장시 재수사는 가능하지만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고유정은 처벌 할 수 없다.

국내 형사법 체계에 따라 유죄, 무죄의 실체 판결이나 면소판결이 확정된 경우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시 심리나 판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된다.

때문에 새로운 증거가 나오더라도 검사가 같은 사건에 대해 다시 기소를 할 수 없다. 기소중지나 불기소(무혐의) 처분은 재수사가 가능하지만 이미 기소된 사건은 상황이 다르다.

재심도 불가능하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재심이유)에 따라 유죄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될 때 청구할 수 있다.

법률상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만 청구가 가능할 뿐, 고유정처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불이익을 위한 청구는 현행 법률상 불가능하다.

고유정은 전 남편 강모(38)씨에 대한 범행에 대해서는 우발적 사건을 내세웠지만 살인과 사체손괴, 사체은닉 혐의는 모두 인정했다. 반면 의붓아들 살인죄는 혐의 자체를 부인해 왔다.

제주에서 생활하던 의붓아들은 2019년 2월28일 아빠인 홍모(39)씨와 청주집으로 향했다. 3월1일 어린이집 예비소집 참석후 단둘이 잠에 들었지만 이튿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청주 상당경찰서는 홍씨를 의심하고 조사를 벌였다. 석 달 뒤인 그해 5월25일 제주에 내려온 고유정은 펜션에서 전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했다.

상당경찰서는 그 이후인 2019년 6월3일 홍씨를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 열흘 뒤에는 과실치사로 혐의를 다시 바꿨지만 정작 9월30일 고유정에 살인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의붓아들 살인 재판의 쟁점은 간접증거였다. 당시 범행 현장에서 아이와 함께 있었던 사람은 고유정과 홍씨 둘 뿐이었다. 고유정은 감기 기운을 이유로 홀로 다른 방에서 잠을 청했다.

검찰은 사건 당일인 2019년 3월2일 오전 4~6시 사이 고유정이 잠에서 깬 후 남편과 의붓아들이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피해자를 질식사 시켰다고 판단했다.

이를 입증할 핵심증거로 안방의 컴퓨터 사용 내역을 내세웠다. 고유정은 시종일관 자신은 방에서 잠을 자면서 밤사이 문 밖으로 나선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범행 추정시간 직전인 2019년 3월2일 오전 2시35분부터 1분간 고유정이 안방에 있던 데스크탑 컴퓨터를 이용해 제주~완도 배편 블로그에 접속한 기록이 있다며 맞섰다.

고유정이 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남편과 의붓아들이 자고 있는 방을 반드시 지나쳐야 한다. 당시 두 사람이 자고 있는 방의 출입문은 일부가 열려 있는 상태였다.

법정에서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한 제주지방경찰청 소속 디지털분석관은 애초 상당경찰서에서 진행한 디지털포렌식 결과가 실제 날짜와 시간과는 차이가 있다고 진술했다.

제주 경찰에서 추가로 분석한 결과 2019년 3월2일 오전 2시35분은 고유정의 접속 시간이 아닌 블로그 운영자의 글 작성 시간이었다. 고유정의 실제 검색은 그해 5월16일 이뤄졌다.

의붓아들의 사망추정시간에 고유정이 깨어 있었다는 유력한 간접정황을 수사기관 스스로 뒤집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국 재판부는 정확한 사망시각 추정이 어렵고 디지털포렌식 결과의 증명력이 번복된 점 등에 비춰 검사가 제출한 간접증거만으로 고유정을 범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고의에 의한 압박 행위가 아닌 함께 잠을 자던 아버지에 의해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간접증거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설령 피해자가 고의에 의한 압박으로 사망했더라도 압박행위를 피고인이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사망원인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의붓아들의 친부인 홍씨는 확정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대법원에서 실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주리라 기대했던 바람이 무너져 내린 참담함을 감출 수 없다”며 심경을 전했다.

홍씨측은 “인생의 꽃봉오리도 피우지 못한 채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아들이 하늘에서 나마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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