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96. 아기 기르기와 농사는 마음대로 안된다

* 질룸광 : 지르는 것과, 기르기와 (질루다 : 기르다)
* 용신 : 농사(農事), 농사는
* 마옴 : 마음

아기를 낳아 놓기만 하면 쑥쑥 잘 자라면 얼마나 좋으랴. 배탈이다, 감기다 탈도 많은 게 어린아이가 아닌가. 잘 먹여야 하고 잘 입혀야 한다. 학교도 보내야 한다. 행여 심성이 좋아 환경에 잘 적응하고 변화에 순응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는 부모를 속 썩이는 게 자식이기도 하다. 나쁜 짓을 하며 탈선이 심할 때는 가슴에 한을 남기기도 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아이 키우는 일이다.

밭 갈고 씨 뿌려 가꿀 때부터 땀 흘리며 갖은 애를 쓰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농사짓는 일이다. 이제는 농약을 뿌려 검질(잡초)를 없애지만, 예전에는 한 번도 아니라 두 불 세 불까지 김매기를 해야 했다. 농작물이 잘 자라 이삭이 누렇게 익어 갈 무렵, 밭을 돌아보며 풍작이라 만족해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태풍이라도 휩쓸고 지나면 한순간에 농사를 망치고 만다. 하늘이 무정도 하시지,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농사는 하늘이 한다고 했다.

‘애기 질룸광 용신 마옴 양 안 뒌다.’

아이 기르는 일과 농사의 어려움을 되새긴 것인데, 자식 키움과 농사를 함께 묶어 놓은 것이 흥미롭다. 둘 다 쉽지 않다는 것인데, 이는 오랜 삶을 통한 지혜의 축적에서 얻어진 경험칙이다. 아이를 키워 보니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대꼈던 것이 어떻게나 농사와 흡사한지 반복해 겪었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이면서 한쪽으로는 푸념에 가까운 육성으로도 들린다. 옛날 농경시대에 선인들의 당면과제가 두 가지였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진은 1968년에 찍은 밭에서 아기에게 젖을 주는 엄마 모습. 출처=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농사가 어려운 것만큼 자식 키우는 일, 둘 다 어렵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 아닌가. 사진은 1968년에 찍은 밭에서 아기에게 젖을 주는 엄마 모습. 출처=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우선은 호구책(糊口策)이었다. 살아가려면 입에 풀칠을 해야 하니 농사짓는 일처럼 중요한 게 없다. 비만 오지 않으면 밭에 살면서 농작물을 정성껏 가꾸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 했으니, 발이 닳도록 밭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노력하고 애쓴 만큼 수확을 할 수 없는 게 농사다. 비바람에 고비를 넘겼는가 하다 보면 또 가뭄에 농작물이 타들어 가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농사다.

다음은 자식 교육 문제다. 선인들, 어떻게든 대학까지 보내서 좋은 직장을 가져서 농부의 신세를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농사에 매진하며 살았다. 아이를 훌륭히 키우기 위해 교육에 온갖 정성을 다 쏟아 붓는 건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될 때까지 겪어야 하는 난관이 한둘인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농사가 어려운 것만큼 자식 키우는 일, 둘 다 어렵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추론하거니, ‘애기 질룸광 용신 마옴 양 안 뒌다’이다. 농사란 말을 제주 사투리로 ‘용시’라 하던 시절이 문득 생각난다.

“올린 태풍이 어선 용시가 잘 뒛주게.(올핸 태풍이 없어 농사가 잘 됐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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