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98. 부지깽이까지 나선다

* 부지깽이 : 아궁이에 불 땔 때 잘 타도록 들쑤시는 막대기
* 나산다 : 나선다

아무리 사정이 힘들고 바쁘더라도 일에는 차례가 있고 또 그 일을 할 사람이 따로 있다. 아무나 나선다고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든, 또 누가 하든 되는 게 아님은 정한 이치다. 바늘 허리 매어 못 쓴다는 말은 그것을 빗대어 한 우리 속담이다.

한데 실은 그걸 몰라서 그러겠는가. 그렇지 않으니 어려움이 따른다. 경황이 없다고 한다. 형편이 안되고 그럴 겨를이 없다 함이다. 밥 먹을 조를(겨를)이 없다, 눈코 뜰 새 없다는 말이 그냥 해 본 게 아님은 요즘 제주의 감귤 철 농가 형편을 보면 알 만하다. 정말이지, 말할 수 없게 바쁜 나날이다.

나는 감귤을 재배해 본 경험이 없어 말로만 듣지만, 감귤 수확에 바쁜 농민들은 그야말로 한 순간, 단 한시가 아까울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닌, 겨울 석 달 부대껴야 한다.

지난 11월 17일 고권일 수필가의 ‘해연풍’(제주일보)을 읽고 실감했다. 감귤 수확하느라 숨이 찬 그의 거친 숨결이 바로 귓전으로 전해 왔다. 평생 교직에 있다 정년 퇴임한 분인데 말년에 감귤 농사하는 부인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생생한데, 그가 말하는 감귤 농가의, 비켜갈 수 없는 현실이 여간 안타깝지 않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다. 힘든 시간 참아내니, 마침내 수확의 시간이다. 일용할 양식인 돈과 바꿀 수 있다는 환금(換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농심(農心)의 바다에서 넘실거린다.
타이벡 감귤, 노지 황금향 그리고 하우스 재배 레드향과 한라봉, 천혜향.

한 해의 결실인 이놈들이 둥지를 떠나는 새들처럼, 이 달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비 농눤’을 떠난다.

당연히 앞으로 두 달 남짓 수확철이, 일 년 중 가장 바쁜 농번기가 된다. 마을 안길들에 인적 끊어지고, 부지깽이들도 나서서 일손을 돕는다.

정지(부엌)에서 솥 아궁이 불을 잘 붙게 한 구실 하는 게 부지깽이인데, 감귤 따 들이는 일에 나서다니. 얼마나 바빴으면 부지깽이까지 나섰겠는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정지(부엌)에서 솥 아궁이 불을 잘 붙게 한 구실 하는 게 부지깽이인데, 감귤 따 들이는 일에 나서다니. 얼마나 바빴으면 부지깽이까지 나섰겠는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이 막히고, 해마다 전국에서 몰려왔던 인력들도 발길을 망설이고 있다는 풍문이다. 아내가 그동안 수눌음을 해서 최소한의 동네 인력은 확보했다지만, 수확을 마무리하기에는 절대 부족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쩌겠는가. 서툰 농부인 나도, 신들메를 고쳐 매고, 허리띠 바싹 졸라맬 수밖에 없다.

‘부지깽이들도 나서서 일손을 돕는다’고 했다.

정지(부엌)에서 솥 아궁이 불을 잘 붙게 한 구실 하는 게 부지깽이인데, 감귤 따 들이는 일에 나서다니. 얼마나 바빴으면 부지깽이까지 나섰겠는가. ‘부지깽이꺼지 나섬져’는 요즘 감귤 수확에 정신없이 바쁜 우리 제주 감귤 농가의 모습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감귤 수확까지 힘들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저것 다 비대면인 세상에 감귤 따는 작업인들 대면으로 되겠는가. 인력이 딸려 동동 발 굴리는 농민들이 안타깝다. 감귤은 제주의 생명산업인데….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