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일제잔재 청산 연구 최종보고회 "식민 잔재 청산은 학교내 수평 논의 우선" 제언

23일 제주대 인문대학 2호관에서 열린 '제주도교육청 일제강점기 식민잔재 청산 연구용역 최종보고회'. ⓒ제주의소리

욱일문, 친일파 작사작곡 교가, 주번, 조회, 종례, 구령대, 조회대, 훈시…. 다수의 일선 학교 교가, 교표, 교목·교화, 교훈, 학교용어 등에서 일제의 잔재가 여전히 제주 교육현장에 남아있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됐다.

일선 학교들이 일재잔재 조사를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뚜렷한 가운데 이런 분위기 역시 수평적인 논의 구조가 부족하다는 반증으로 시간을 두고 방향 전환에 대한 진지한 고민 후 식민 잔재를 청산하자는 것이 연구진의 제언이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는 23일 오후 3시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2호관에서 '제주도교육청 일제강점기 식민잔재 청산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일제강점기식민잔재청산위원회 위원을 비롯해 일선 학교 관리자, 업무 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석해 일제강점기 잔재 연구자료 공유하고, 전문가와 학교현장 의견 수렴했다. 특히 도출된 결과를 토대로 향후 교육적 활용 방안 등이 논의됐다.

용역을 수행한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양정필 교수)은 크게 교가, 교표, 교목·교화, 교훈, 학교용어 등에서 식민잔재 사례를 분석했다.

먼저 제주도내 초‧중‧고 총 191개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제 시대에 주로 사용됐던 욱일문 도안을 교표로 활용한 학교는 6개교, 월계수 도안이 사용된 학교는 34개교로 파악됐다.

제주도내 일부 학교 교표에 도안된 일본가문 육광문(사진 왼쪽), 일본왕실 국화문과 일장기(가운데), 욱일기. 출처=제주대 산학협력단
제주도내 일부 학교 교표에 도안된 일본가문 육광문(사진 왼쪽), 일본왕실 국화문과 일장기(가운데), 욱일기. 출처=제주대 산학협력단

욱일문은 일본 왕실의 국화문장과 일장기가 결합해 만들어진 것으로, 한가운데 태양을 상징하는 원이 있고, 그 원에서 빛이 퍼져나가는 형상을 뜻한다. 일본의 육군기, 해군기, 해군군함기 등에서 사용된 문양이다. 월계수 도안은 일제시기 군 관련 배지에 사용돼 왔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 작곡가·작사가가 만든 교가를 사용한 학교도 2곳으로 조사됐고, 일본음계로 된 교가, 일본 창가집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던 7.5조 율격을 갖춘 교가도 대다수 발견됐다. 일제시대 때 집중적으로 식재된 일본산 가이즈카 향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도 35개교로 분석됐다. 

교육현장에서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를 정리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당번, 학급, 주번, 수학여행, 운동장, 학예회, 조회, 종례, 교단 등이 대표적인 용어다.

연구진은 조회와 종례는 군대식 대열을 이뤄 집단훈련을 받는 일본식 문화에서 비롯된 용어로 봤다. 학생은 학급 별로 열을 맞춰 부동자세로 서 있고, 그 앞에는 학생 대표인 급장이 자리 잡는 등 조회 의식 속에는 이데올로기적인 의례가 포함됐다고 분석했다.

구령대·조회대 등의 단어는 높은 연단에서 교장이 훈시를 하고 학생들이 아래에 줄서서 듣는 모습은 일제 군국주의의 잔재로 봤다. 주번 제도는 일제강점기의 간호 당번 제도에서 유래한 것이고, 수학여행 등은 일본에 조선인 학생들을 보내 일본 문화를 익혀 민족 정신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행해진 활동으로 평했다.

연구진은 "조사를 진행하며 느낀 점은 많은 학교 행정담당자와 교사들이 이 조사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있는 학교에 식민 잔재가 있다고 지적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하고, 지적을 받으면 마치 문책을 당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대한민국 교육 체계는 일본 제국주의가 정착시킨 근대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여 틀을 굳혔다. 교육청이 상급 기관이고, 학교 내에서는 교장, 교감, 평교사 사이에 엄격한 위계가 존재했다, 식민 잔재 청산도 위로부터의 지시와 명령에 의서 진행됐을 것"이라며 "시대가 달라져 교육계에도 변화가 일어난 만큼 식민 잔재 청산 운동은 이제 수평적 논의 구조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구진은 "식민잔재 청산이라는 것이 당장 나무를 베어내고, 교표를 뜯어 고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둔 채 청산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역사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학교 구성원 사이에서 어떤 방향으로 바꿀 것인지를 이야기하며 함께 미래를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참여 폭을 넓힐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보고회 과정에서는 친일 잔재가 남아있다는 결과를 받아든 일부 학교 관계자로부터 반발의 목소리도 표출됐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이날 보고된 연구결과를 토대로 각 학교와 내부 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결정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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