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심규호 제주문화포럼 이사장

혹여 “유감(遺憾) 있냐?”라고 묻지 말아주시기 바란다. 사전적 정의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인 ‘유감(遺憾)’이 아니라 나름 느끼는 바가 있다는 뜻에서 ‘유감(有感)’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제주 신천지미술관이란 조각공원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신천지미술관 꼭대기에 가면 제주 시인들의 시를 새겨놓은 시비(詩碑)가 여럿 서 있었다. 간혹 내가 아는 시인의 시를 보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석상(石上)의 시를 읽는 맛은 지상(紙上)의 그것과 영 다르다. 석상의 시는 그냥 시가 아니라 장구(長久)함의 시이고, 오랜 풍파를 견뎌낸 결정(結晶)의 시이며, 장중하게 우뚝 선 단 한 편의 시이기 때문이다. 그 앞에 서면 오래 머뭇거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종이의 무게가 어찌 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으랴. 
 
시란 본디 사람의 정성(情性)을 토로하는 것인지라 육성으로 듣는 것이 으뜸이고, 눈으로 보고 따라 읽으며 탄사를 연발하는 것이 버금이며, 눈으로 보되 가슴으로 되새김질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물론 그냥 보기만 해도 아니 되는 것은 아니다. 뜬금없이 ‘시’ 운운한 까닭은 이러하다. 

어딘가 걷고 싶을 때 주로 가는 길이 있다. 사라봉 또는 별도봉 초입에서 시작하여 이름도 예쁜 베리오름(별도봉) 허리를 에두르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왼쪽은 바다, 오른쪽은 오름. 갈 때마다 잊지 않고 되뇐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길이 있나! 문득 베리오름 등성이가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놀던 게임에 나오는 줌비니 동산인 듯 어디선가 줌비니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오름 아래로 내려가면 사라졌으되 결코 잊을 수 없는 곤을마을이다. ‘잃어버린 마을터’ 표석을 다시 읽는다. 

베릿내(별도천, 화북천)를 건너 곤을길을 따라 가면 금산마을이다. 바닷길을 따라 마을을 돌아가면 포구이다. 포구 옆에 바다를 바라보는 소년과 그림 그리는 소녀 동상이 있는 빨간 등대가 보인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이 바로 ‘시가 있는 등대길’이다. 화북 포구를 처음 오는 이라면 틀림없이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사진출처=제주시청 공식 블로그.
제주시 화북일동 화북포구에는 '詩가 있는 등대길'이 있다. 사진출처=제주시청 공식 블로그.

화북은 북쪽에서 바다 건너 내려올 때 가장 가까운 곳인지라 목사(牧使)까지 나서서 등짐을 지고 돌을 날라 개축할 정도로 제주의 으뜸가는 포구였다. 포구는 바다로 나가는 곳이자 또한 들어오는 곳이니 무엇인들, 누구인들 이리로 들고나지 않았겠는가? 하여 해신사가 있고, 환해장성이 있으며, 누군가의 치적을 알리는 공덕비가 줄지어 서 있으며, 지금의 해군기지에 해당하는 수전소(水戰所)가 있으니 축성하여 진성(鎭城)이 있다. 그러니 참으로 당당한 곳이다. 그곳에 ‘시가 있는 등대길’이 있다. 그러니 어찌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10년 제주문화예술 기획사업 공공미술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화북 포구를 개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목사,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자자한 노봉 김정(재임 1735~1737년)이 공사에 앞서 천지신명에게 올린 「화북포시역시고유문(禾北浦始役時告由文)」의 번역문과 더불어 그의 7언절구 「화북진(禾北鎭)」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몇 분의 시조시인들의 아름다운 시와 초등학생들의 웃음을 짓게 하는 시를 새긴 타일이 한 쪽 벽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시인들의 시야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의 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제 ‘유감’을 말할 차례다. 

탄성이 멈칫 한 곳은 제목을 알 수 없는 시커먼 돌에 새겨진 장문의 문장이다. 해서(楷書)라면 모를까 초서체(草書體)로 휘갈긴 데다 별도의 제목이나 표시가 없으니 쉽게 알 수 없다. 분명 중요한 글인 듯한데, 하여 자세히 쳐다본다.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오라, 알겠다!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가 틀림없다. 웬일이신가? 어찌하여 추방당해 강이며 연못 사이를 떠돌며 서글픈 노래를 읊조리시던 이가 초췌한 안색, 늙어 구부정한 모습으로 이곳까지 오셨는가? 그 옛날 화북포구가 유배인들이 거쳐 지나가는 곳이라 들리셨는가? 묵묵부답이다.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뜻일 터이다. 그러면 멱라수(汨羅水)에 던진 육신이 바다 건너 제주까지 흘러오신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언제 때 일인데, 굳이 여기까지 오셨단 말인가? 물론 나름 유명한 유배인들을 상기시키려는 까닭이 있을 수 있다. 

화북에서 유배문화제를 개최하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유배인을 등장시켜 ‘공북(拱北)’이니 ‘연북(戀北)’이란 말을 떠올리며 북극성을 향하는 뭇별들 마냥 임금을 향한 마음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까? 

언젠가 새로 단장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러면 어떨까? 

시가 꼭 오언절구이거나 칠언율시일 필요가 없듯이 속내를 잘 표현하기만 했다면 화북 어르신네들의 짧은 말을 시어로 다듬어 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바다가 삶의 현장인 그분들의 말 몇 마디야말로 진정한 시가 아닐까? 

집안에 걸어놓은 멋진 그림도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 덤덤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매년 한 번씩 바꿔 거는 것도 좋다. 마찬가지로 돈이야 조금 들겠지만 진정 ‘시가 있는 등대길’을 아름다운 문화자산으로 만들 생각이라면 나누어서 바꿔보아도 좋을 듯하다.

당당한 화북이 굳이 화북에만 머무를 필요가 있을까? 시도 화북에 국한하지 말고 제주의 것을 넉넉히 담아보면 어떨까? 화북의 인심이 그러한 것처럼. 

심규호 제주문화포럼 이사장
심규호 제주문화포럼 이사장

옛 시를 번역해 써놓을 것이라면 보다 예쁜 한글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짧은 옛 한시에는 읊은 이의 의도가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특히 그러하다. 예컨대 김정의 시 「화북진」의 경우가 그러하다. ‘획연장소(劃然長嘯)’는 한시는 물론이고 소식(蘇軾)이 「후적벽부(後赤壁賦)」에도 나오는 구절인데, ‘획연’의 의성어이고, ‘장소’는 길게 휘파람 분다는 뜻도 있으되 길게 소리친다는 의미도 된다. ‘天涯’는 ‘해각(海角)’과 마찬가지로 아득 멀리 떨어진 곳을 말한다. ‘천애’는 공간이고 ‘종고(從古)’는 시간이니 ‘천애’를 풀이해야 ‘종고’가 산다. 서툰 솜씨로 풀이해보면 이러하다. “휘익 길게 휘파람 불며 성 위에 서니 / 만 리 푸른 바다 광활하여 흐르지 않는 듯 / 북쪽 바라보니 장안(서울)은 어디쯤인가? / 하늘가 아득한 이곳은 예로부터 쫓겨난 신하 시름 깊은 곳.”

이외에 김정 목사의 「고유문」도 더 좋은 번역본이 있으니 다음에 새길 때는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하다. ‘시가 있는 등대길’이 화북뿐만 아니라 우리 제주의 명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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