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39) 제주노동기본권의 현실 ③

‘너는 나다’...전태일이 떠난 지 50년이 흘렀지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년 전 서울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산화한 청년 전태일을 기억한다. 2020년 11월 13일은 청년 전태일이 산화한지 50주기가 되는 날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제주지역 노동자의 삶은 어떠할까?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3회에 걸쳐 제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현황을 돌아보고자 한다.

① 관광산업의 어두운 이면 – 관광서비스 노동자 
② 띵동 !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 택배노동자와 과로사 
③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사장 맘대로 해고” 가능할까?

TV드라마를 보면 ‘당신 지금부터 해고야’, ‘내일부터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등의 즉시 해고통보를 받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그렇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장 맘대로 해고’가 금지되어있다. 사업주는 사회 통념상 고개가 끄덕거려질 만한 해고 사유에 있는 경우에 한하여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수 있다. 또한 해고일 30일 전 사전 서면 통보해야 하는 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30일 전 통보하지 않으면 30일분의 임금만큼 해고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고용이 노동자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담소에는 부당해고에 대한 상담문의가 많다. 출근하다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경우, 대표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가 해고당하는 경우, 부당한 업무 관행을 문제 제기했다가 해고당하는 경우,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해고당하는 등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다양한 내용의 상담이 주를 이룬다. 상당수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절차가 지켜지지도 않았다. 

가장 갑갑한 경우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을 때이다. 상담을 30분 이상 진행하며 부당하고 억울한 해고라는 점에 내담자와 함께 공감하며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아야 함을 강조하다가 최종적으로 근무했던 회사의 상시 고용 노동자 수가 5인 미만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있다.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노동자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권리를 찾기 위한 제도적인 방패막이 사라지면서 서로 난감해진다.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일부 조항만을 적용하고 있다. 사장이‘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하면서 해고예고수당(1달치 급여)만 지급하면 된다. 노동자는 억울한 해고를 당했더라도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법원을 통해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의 생계를 이어가는 형편에서 어려운 일이다. 사실상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사장맘대로 해고’가 용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많다 보니 노동법과 관련된 내용을 상담할 때는 일반적으로  노동자 수가 몇 명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상담을 진행한다. 법률전문가로서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에게 법률적인 구제를 안내할 수 있는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사업장 규모를 먼저 확인하다 보니 내담자의 억울한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하고 상담이 종료되는 경우들도 있다. 방금 해고를 통보받아 분하고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수화기를 들어 상담 전화를 한 내담자들에게 일단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상담을 시작한다. 하지만 본인이 5인 미만 사업장이라 법적인 구제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분함의 대상이 사업주가 아닌 근로기준법으로 전환되면서 수화기를 놓게 된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으셔야 한다는 나의 목소리에도 힘이 빠진다. 

도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노동자 규모는?

2018년 12월 31일 기준 제주특별자치도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도내 5인 미만 사업장은 51,464개로 전체의 81.9%를 차지한다. 그리고 5인 미만 사업장의 종사자 수는 92,986명으로 전체의 33.6%로 집계되고 있다. 2018년 기준 제주에서 일하는 27만 명의 노동자 중 9만여 명의 노동자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속하여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제주에서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3~4명은 근로기준법에서 배제되어있는 노동자이다. 공교롭게도 그 규모는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의 비율과 비슷한 수치이다. 제도적으로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경우와 5인 이상 사업장이라도 사실상 근로기준법이 준수되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의 규모는 절반 이상까지 확대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노동정책 기본계획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도내의 99.1% 사업장이 50인 미만의 사업장에 속한다고 보고하고 있고 영세중소기업이 절대다수인 상황은 제주도 전체가 노동권의 사각지대 영역이 되면서 전체적인 고용의 질을 하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노총 제주본부가 25일 오전 10시 제주도청 앞에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작은사업장 노동자 권리찾기 대행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제주의소리
민주노총 제주본부는 지난 5월 25일 오전 10시 제주도청 앞에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작은사업장 노동자 권리찾기 대행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도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대한 해결방안 시급해   

50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1953년 노동법이 제정되었을 당시 영세사업주의 부담을 경감한다는 이유로 영세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제외가 시행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간에 법이 개정되면서 주휴수당, 휴게, 해고예고수당 등 일부 내용이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근로시간제한, 해고제한 및 휴업수당 등 주요한 내용은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경우 ‘사장 말이 곧 근로기준법’이기 때문에 동등한 근로계약관계가 아닌 일방적인 계약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방적인 관계에 의해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근로기준법상 괴롭힘 신고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근로기준법 확대적용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올해 전태일 50주기를 맞으면서 민주노총은 “전태일 3법” 제정을 요구하며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첫 번째 법으로 내걸었다. 지난 9월 국민 100,000명이 청원에 동의하여 현재 국회 상임위에 법안이 제출되어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근로기준법 확대적용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고용노동부가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의 확대적용을 검토하는 연구를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영세사업주의 부담이 있으니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1953년의 논리는 시대착오적이다. 2020년인 현재 영세사업주의 부담에 대한 부분은 해당 법과 정책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제외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취약한 노동자가 적용제외 되면서 근로 기준의 최저기준을 정하여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도 맞지않다. 

도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노동인권의 침해를 받은 노동자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전국 최고의 비정규직 비율, 전국 최저의 임금수준이라는 제주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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