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세이레 연극 ‘자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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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세이레 연극 '자청비' 출연진.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민자, 양순덕, 김이영, 설승혜, 오현수 배우. ⓒ제주의소리

제주 설화 속 자청비는 농경·오곡의 신으로 불린다. 능력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개척해가는 능동적인 모습은 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제주도립무용단의 창작 무용극 ‘자청비’, 배우 한은주의 모노드라마 ‘자청비’, 재경 제주 연극인들이 모인 극단 ‘괸당들’의 연극 ‘2020 자청비’ 등 최근 몇 년 사이 자청비 설화 작품들이 제주 안팎에서 공연됐다. 

여기에 추가할 극단 세이레의 ‘너른 세상을 가슴에 품은 자청비’(자청비)는 지난 2012년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다. 당시 제9회 고마나루 향토연극제에서 대상, 희곡상,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린 ‘자청비’는 굿판 느낌에 가까운 원작 무대를 다소 차분하게 바꾸고, 안무와 퍼포먼스를 새롭게 추가했다.

문도령과 사랑에 빠진 자청비의 남장, 함께 공부하면서 벌어졌던 물그릇-오줌 누기 에피소드, 정수남의 욕심과 그에 대응하는 자청비, 칼날 위를 건너는 시험까지…. 작품은 자청비 설화 이야기를 어느 정도 충실하게 따라간다. 

주인공 격인 자청비(배우 설승혜)와 문도령(오현수)은 당연히 중요한 역할이지만, 이 작품은 얘기꾼 3명(양순덕, 김이영, 정민자)의 비중이 주역 두 사람 이상으로 크다. 

세 사람이 나누는 수다는 자청비·문도령의 연기만으로 그리기 어려운 빈 공간을 채우고, 세 사람의 연기는 하인, 나무, 학생 그리고 정수남까지 역할을 넘나드는 약방의 감초다. 세 사람의 몸짓은 안무부터 검술 동작까지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얘기꾼 역할이 있고 없고를 상상해볼 때 극의 성격를 규정한다고 과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 ‘멕베스’ 속 세 마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한재준의 한국 전통악기 연주는 화룡점정을 찍는다.

작품은 문도령을 제외하면 모든 인물의 대사가 제주어로 채워졌다. 다만, 무대 언어로 전환하면서 서술어를 제주어 위주로 풀어내고 나머지 주어·목적어는 표준어 비중을 높인 일종의 ‘현대적 제주어’로 가공했기에 제주어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겠다. 툭툭 등장하는 고유한 단어들은 마치 별미처럼 유쾌하게 관객을 자극한다. 설사 뜻을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제주말 특유의 억양과 그 속의 감정 자체를 연극을 즐기는 재미로 여겨도 충분하다. 그렇기에 관객이 제주어 대사를 더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느꼈다.

앞서 언급했지만 얘기꾼들은 대사만큼이나 여러 움직임으로 역할을 수행한다. 때문에 세 배우가 얼마나 리드미컬한 에너지를 보여주는지에 따라 작품 전체의 느낌과 완성도까지 좌우되리라 본다. 

그토록 원하던 문도령과의 혼인을 앞에 두고 자청비는 서슬 퍼런 칼날과 뜨거운 숯을 이겨낸다. 작품에서는 길다란 천을 이용한 역동적인 밀고 당김을 통해 시련의 극복을 표현했다.

작품을 쓰고 연출한 정민자는 이번 ‘자청비’에 대해 “극단을 삼년 동안 힘겹게 끌고 오면서 다시 재기를 꿈꾸는 우리의 각오”라고 밝혔다. 자청비에 투영한 극단 세이레의 의지가 2021년 꽃피우길 바란다.

연극 ‘자청비’는 27일부터 29일까지 오후 7시30분 소극장 세이레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관람료는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8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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