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81. 제임스 팰런, 김미선 역, ‘괴물의 심연’, 더 퀘스트, 2015.

제임스 팰런, 김미선 역, ‘괴물의 심연’, 더 퀘스트, 2015. 출처=알라딘.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것도 연쇄 살인사건이. 곧이어 살인자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다음 뉴스에서 그는 이내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 사이코패스(psychopath)로 판명된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너무 흔하다. 언젠가부터 언론 보도에서뿐만 아니라 영화와 TV 드라마, 소설에서까지 무시무시한 사이코패스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이코패스 주인공이 등장하고 우리는 그 인물에 열광하기까지 한다.

사이코패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들에게 불리는 공통된 이름이다. 각종 매체에서 그려진 것처럼 우리는 사이코패스는 곧 살인자이며, 그들은 주로 감옥에 수감 되어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이코패스의 일면일 뿐이다. 사이코패스는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하거나 놀랍게도 성공적(?)으로 우리 사회의 꼭대기에서 활보하고 있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 그토록 갑질이나 폭력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고백이 진실하다면, 아마 '괴물의 심연'이란 책 역시 그런 ‘성공한’ 사이코패스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쓴 제임스 팰런은 성공한 신경과학자이자 의대 교수로 온화한 가정에서 자랐고,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많은 친구를 둔 사람이라고 한다. 아니, 그런 그가 사이코패스라니? 

영화나 책에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부정확한 묘사가 넘치지만, 저자가 어느 정도 합당하고 좋아하는 사례는 ‘양들의 침묵’과 ‘한니발’에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이다. 

렉터는 공감을 모르고, 말솜씨와 매력으로 사람들을 농락하고, 자신의 끔찍하고 사악한 행동에 양심의 가책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게 특징이다. 한마디로, 그는 많은 이들이 고전적 사이코패스로 여길 만한 인물이고 헤어 진단표 점수 또한 아마 높을 것이다. (25쪽)

캐나다의 저명한 사이코패스 연구자 로버트 헤어가 제시한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CL)는 사이코패스 진단 도구로 가장 유명하다. 그 진단표에도 한니발 렉터라는 캐릭터는 높은 점수를 얻어 사이코패스로 진단될 것이라는 말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해서는 심리학자조차 그 개념에 관해 회의적으로 생각할 정도로 논쟁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인 공감의 부재’, 즉 공감 제로의 인간 유형이라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면 어째서 사이코패스 인물이 나타날까?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도 아직도 확실한 대답을 내리기 어렵다. 유전과 양육 모두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쪽이 적절할 것이다. 제임스 팰런은 나름대로 세 가지 요인을 제시하며 이를 세 다리 의자로 설명한다. 

세 개의 다리란,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신체적 학대나 성적 학대였다. (128쪽)

유전적 요인과 뇌 기능 저하와 같은 생물학적인 원인과 성장 환경과 양육 방식이 사이코패스를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저자는 뇌과학자로서 생물학적 원인으로 사이코패스를 이해하려고 했다. 뇌 사진을 스캔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는 신경과학자로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이코패스의 뇌와 전사유전자를 지니고 있음에도 어째서 그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저자는 자기 자신이야말로 자신의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신념을 깨뜨리는 반증 사례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특정한 뇌 손상이나 기능 상실이 사이코패시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조건일지는 몰라도 충분한 조건은 아님을 시사해주었다”(111~112쪽)고 하며 자신의 발견에 의미를 부여한다. 

살인자의 족보 아래서 태어나 사이코패스의 유전자와 뇌를 가졌더라도 좋은 가정환경과 교육은 오히려 성공적인 삶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가 타인에 인지적 공감은 할 줄 알아도 정서적 공감(이른바 ‘뜨거운 공감’)을 하지 못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고 규범을 지키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반사회적인 성향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부정적 특징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에게도 장점들이 많다. 사이코패스는 공포가 없고 창의적이어서 그러한 장점을 살린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언변이 뛰어나 설득력이 있고, 남을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권력 지향적 성향 때문에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기업가, 변호사나 전세계 대통령 가운데 사이코패스가 많은 이유이다.) 사이코패스는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에 면역력이 최고 효율로 작동한다. 

또 다른 사례로 저자 제임스 팰런은 하룻밤에 네 시간 정도 자는 습관을 고쳐서 다섯 시간을 잔다고 고백한다. 사이코패스가 적게 자는 이유는 어쩌면 ‘타고난 전사’로 태어난 그들의 쓸모 때문은 아닐까 싶다. 사람마다, 특히 나이에 따라 수면의 주기가 다른 것은 ‘불침번 가설’로 설명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침잠이 많은 청소년들과 아침잠이 없는 노인들이 한 가족이면 외부에 위협을 방어하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식으로, 한 집단 안에서 공포와 죄책감 없어서 전사로 적합한 누군가가 자는 일이 적다면 그건 공동체에 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 역시 신경과학이나 심리학에 무지한, 평범한 한 독자의 가설적 상상에 불과하다. 또, 이 가설이 일리가 있더라도 사이코패스의 모든 행동 특성들이 집단 전체에 이롭다고 보기엔 어려울 수 있다. (저자는 사이코패시가 2% 비율로 나타나는 이유를 인류에게 유리하게 진화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특정한 자연 현상이나 사실이 당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한다. 

그럼에도 타고난 사이코패스 역시 좋은 양육과 교육을 통해 한 공동체에 이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제임스 팰런의 주장에는 귀 기울이고 싶은 점이 있다. 그는 아직 전두엽 발달이 왕성한 상태에 있는 열여덟 살 청년을 전쟁터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병사들이 스물둘이나 스물셋이 되기 전에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123쪽)는 것. 사이코패스의 유전적, 생물학적 특징이 있어도 우리 사회가 어떻게 키우고 가르치느냐에 따라 그들은 용맹한 군인이나 대담한 기업가, 냉철한 외과의사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 점에서 저자의 아래와 같은 인식에는 우려할 만한 점이 있다.

나는, 가자지구에서 로스앤젤레스 동부에 이르기까지 폭력이 만성이 된 지역에서는 여자들이 보호를 받고자 나쁜 남자들과 짝을 지음으로써 공격적 유전자를 퍼뜨리고 폭력성을 높이는 고리를 되풀이하기 때문에 사이코패시 연관 유전자가 집중되는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사변적이긴 하지만 고려하고 더 연구해야 할 중요한 발상이다. (14~15쪽)

조심스러운 가설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저자가 언급한 지역들에서 폭력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규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생물학적 원인으로 쉽게 돌릴 수 있겠지만, 그 전에 해당 지역의 사회적, 역사적 조건이 폭력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점검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이코패스의 유전자와 뇌를 하고 태어났지만 성공적인 과학자가 된 저자 자신을 보아도 그렇지 않을까? 

* 이 책은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라는 제목으로 올해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 노대원 교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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